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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Jan 04. 2023

(D+84) 엄마와 딸의 콧줄 전쟁

엄마는 어제저녁부터 콧줄을 고정해 둔 코스티커가 불편한지 자꾸만 그쪽으로 손을 가져가 스티커를 떼려 했다. 콧줄을 빼낸 날엔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 새것으로 다시 끼워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꽤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보였다.


그런데도 엄마는 늘 콧줄을 뽑아버리고 싶어 했는데, 엄마와 병원생활을 하며 함께 지내보니 엄마가 콧줄을 빼고 싶어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듯했다. 우선 코를 통해 식도를 타고 위까지 고무 호수가 들어가 있으니 거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도 했고 한두 주 전에 있었던 일이 지금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런 걸 봐서는 단기 기억력도 장기 기억력도 불완전한 것 같았다. 나의 추측이지만 엄마는 자신이 콧줄로만 음식을 먹을 수 있단 걸 잊어버린 같았다.

콧줄을 다시 끼울 때마다 엄마가 힘들어했던 것도 있지만 엄마의 몸에 무언가를 자꾸 넣었다 뺐다 하는 것이 좋을 리가 없을 터였다. 그럼에도 힘들게 끼운 콧줄을 손쓸 틈 없이 확 빼버린 전력이 꽤 되는 엄마이기에 나는 엄마의 손을 풀어놓고 있을 때면 늘 엄마를 감시했는데 엄마의 손이 얼굴 근처로만 올라가도 바짝 긴장한 체 엄마를 지켜보곤 했다. 엄마가 콧줄을 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여지없이 엄마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고 손이 콧줄을 잡는 모양새를 취하면 쏜살같이 달려가 엄마의 손을 제지하였기에 엄마는 내가 지켜보고 있을 때에는 차마 콧줄을 빼려는 일을 시도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뭔가 뽀시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벌떡 일어나 엄마를 보니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잠을 잘 때 끼워두는 벙어리장갑은 어떻게 벗은 건지 이미 보이질 않고 엄마의 손에는 콧줄이 돌돌 말린 체 쥐어져 있었다.


아우!!!!! 순간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모두 주무시는 새벽이기도 했고 아무런 일도 없었단 듯 해맑은 엄마 얼굴을 바라보니 뭐라고 하기도 좀 그랬다. 이미 빼버린 콧줄, 어차피 내일아침 식사 때 다시 끼면 되겠지 싶어 편하게 주무시라 말씀드리고 나도 다시 누웠는데, 엄마는 정말 편해진 모양인지 금세 잠이 드셨고 곧 가지런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좀 전에 올라온 욱하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좀처럼 시간이 지나도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이런 패턴이면 하루 한 번은 콧줄을 뽑을 기세인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걱정스러웠다. 장갑을 끼워놓거나 손 억제대를 자주 사용하면 엄마의 인지가 그만큼 빨리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밤새도록 엄마 앞에 앉아 콧줄을 빼는지 안 빼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잠은 자야 제대로 엄마를 돌볼 수 있을 테니까.


초록창과 뇌질환 카페를 오가며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 "콧줄 못 빼게 하는 법" 같은 걸 검색해보다가 결국 손 억제대를 밤에만 써보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고 쇼핑몰에서 주문을 하고 나서아 내 고민은 끝이 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석연찮았다. 내가 엄마 옆에 있어도 콧줄을 빼는 걸 막을 수가 없구나, 결국 손 억제대를 내 손으로 구매해 채우는구나 싶어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배우자 분을 돌보는 맞은편 침상의 어르신은 매 끼니마다 엄마의 콧줄 식사부터 챙기는 내게 엄마의 인지가 돌아오면 곧 괜찮아질 거라며  위로해 주셨는데, 어르신의  배우자분께서도 콧줄을 하고 계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배우자분 또한 인지가 안 좋으셨는지를 여쭤보니 그랬다는 말씀이 돌아왔다 어르신 말씀으로는 배우자분께서 어느 순간 인지가 돌아왔는데, 인지가 돌아오고 난 뒤 물어보니 발병 후 몇 개월은 아예 기억을 못 하시는 상태였다고 했다. 그래서 어르신이 발병 초반 배우자분을 간병하며 고생 고생한걸 하나도 모른다며 서운해하셨다. 그래도 인지가 돌아오면서 재활의 의지도 아주 강해지고 회복의 속도도 빨라지셨다고 했다.


앞집의 어르신은 배우자분(어머니)과 이 재활병원에 오신 지는 5개월가량 되셨다는 데, 처음에는 콧줄을 하고 계셨지만 지금은 제거를 한 상태였다. 그리고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꾸준한 재활을 통해 편미비이시지만 지팡이를 짚고 걸으실 수도 있는 상태였다. 처음 앞집 어머니를 뵈었을 때는 우리 엄마가 저만큼만 되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앞집 어머니의 이야기를 어르신께 들으니 우리 엄마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차차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재활이란 것이 마음 같진 않지만 꾸준히 시간을 쌓고 노력을 쌓다 보면 안 되던 것이 되는 그런 마법 같은 것인가 보다 싶었다. 엄마도 계속 연하치료를 받고 계시고 일주일 사이에도 인지 역시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아야겠다. 캄캄한 새벽, 앞집 어르신의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을 달래고 다시 잠을 청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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