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출발했던 탓에 자정이 넘어 친정집에 도착했기에 몹시도 피곤했다. 이번주는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아이들과 함께 타고 오기만 했는데도 일주일치의 피로가 고스란히 쌓였는지 아침 일찍 맞춰둔 알람에도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 7시부터 간호사실로부터의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에 언제 도착하느냐는 전화였는데 내가 빨리 병원으로 와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오늘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좀 그랬지만 일주일간 지켜본 결과 생각이상으로 나는 지금 이 병원이 마음에 들었다. 이유는 단 하나. 간호사 선생님과의 긴밀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 병원의 문화 혹은 시스템인지 아니면 몇몇 간호사들의 소통 역량인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하겠으나 여하튼 엄마를 맡겨둔 체 서울에 올라와 있는 내게는 병원에 대한 신뢰감을 크게 높여주는 요소 중 하나였다. 이번 주에 있었던 예를 하나 들자면 이런 것이었다. 엄마가 현재 하고 있는 목관은 한두 달에 한 번 주기적으로 교체가 필요한데 이 목관을 오늘 교체해도 되는지를 물어보는 전화가 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간호사 선생님께 목관 교체 일정을 미뤄 달라고 말할 수 있었다. 엄마가 과거 목관 교체 때 피도 많이 나고 산소포화도도 떨어졌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병원에서는 보호자에게 목관 교체 여부 등에 대해 문의하지 않는다. 환자의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의료진들의 스케줄에 맞추어 교체한다. 그래서 24시간 상주 간병인을 쓰는 보호자들의 경우는 목관 교체 사실조차 모른 체 지나가는 것이 대부분이니 내게는 이 병원이 조금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나는 젖은 솜뭉치처럼 축축 쳐지는 몸에다 카페인 충전부터 하고는 아직도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아침을 주는 둥 마는 둥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일주일 내내 외출을 하고 싶다던 간병인 여사님부터 집에 보내드리고 찬찬히 뜯어본 엄마는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아 보였지만 썩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다. 미열이 계속 있는 데다 가래도 무척 많았고 조금 쳐지는 느낌이었다. 조금 더 꼼꼼히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자꾸 아쉬운 점만 보였다. 기저귀를 채워 둔 것이며 깔개 매트와 침대 시트 상태며 모두 깔끔한 것이 없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와상 환자인 엄마는 식사 때마다 침대 매트리스를 세워 앉은 자세에서 피딩을 하는데 그때 주로 몸이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상황을 봐서 엄마가 좀 아래로 내려와 있으면(발이 침대 식탁에 닿으면) 위로 들어서 올려주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손발과 세수만큼은 꼭 하루 한 번씩 하도록 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그것 역시 잘해주셨는지 의문스러웠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당장 응급실에 뱃줄 시술을 하러 보낼 것만 같던 간호사 선생님은 내가 오자 엄마가 하고 있는 뱃줄이 너무 작아 현재 시술이 가능한 2차 병원도 없는 것 같다며 3차 병원까지 알아보시는 듯하시더니 내내 소식 없이 시간이 흘렀고 결국 다음 주 월요일이나 되어서 응급실에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사실 월요일이 되어 다시 오늘처럼 병원에다 전화를 돌려보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알 수 있는 것은 없을 듯싶었다.
엄마의 뇌전증 약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몹시 걱정하신 선생님은 주말 동안 콧줄을 다시 꼽고라도 약을 드리는 것이 안전하다고 하시기에 결국 다시 콧줄도 꼽고 영양수액도 달았다. 원래 있던 목관에다 콧줄에 소변줄, 산소줄까지 달고 주무시는 엄마를 보니 너무 안쓰러운 데다 다음 주 뱃줄문제 때문에 응급실까지 다녀와야 하니 걱정이 밀려왔다. 어찌해야 고민이 많았는데 내내 주무시기만 하던 엄마가 일어나셨다.
휠체어를 태워 엄마와 산책을 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엄마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보여 환의를 갈아입히고 침대 정리와 기저귀 정리부터 깔끔히 마친 다음 엄마 옆에 누워서 아이들 사진을 보여드리고 옆에 앉아 함께 사진도 찍고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깨어 있는 엄마와 온종일 시간을 보내며 가래소리가 심해질 때마다 바로바로 석션을 해주다 보니 아슬아슬한 산소포화도도 서서히 올라왔다. 엄마와의 시간은 너무도 쏜살같이 흘렀고 다음 주 응급실 문제는 여전히 찜찜함을 남겼지만 그래도 엄마 얼굴을 보고 나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