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고민하던 끝에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무급휴직이었기 때문에 복직 후 휴가가 많지 않았다. 대신 사촌언니에게 월요일에 응급실에 가 달라는 부탁 해 두었다.
아침 8시부터 간호실로부터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뱃줄 시술을 할 병원을 못 찾겠던 모양인지 내게 외래진료 예약이라도 해 두라는 전화였다. 가장 빠른 예약일은 2주 뒤였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어쨌든 뱃줄이 빠진 부위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다시 끼는 작업은 꼭 필요한 것이기에 여러 경로를 통해 응급실 내원이 가능한지를 타진하는 듯했는데 오전 11시가 다 되어서야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오후에 방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시간에 맞추어 사촌언니와 아빠, 간병인 여사님이 해 주어야 할 것들을 전달드려 놓았는데 다시 간호사실에서 전화가 와서는 엄마 피검사 수치에서 염증 수치가 너무 치솟아있다며 이 부분도 큰 병원에 가는 김에 확인을 한 번 해 보고 오면 좋겠다고 했다. 뭔가 느낌이 쎄 했다. 원인 미상의 염증수치가 솟구쳤다니.
어째 되었건 나는 서울에 있으니 사촌언니에게 문자로 의사에게 꼭 확인해 달라고 해야 할 엄마 상태 중 중요한 부분들만 날짜별로 요약해 문자로 보냈는데 곧 전화벨이 울렸다. 응급의학의였다. 뱃줄만 재 시술하면 된다고 해서 받았는데 이게 뭐냐는 거였다. 원래는 그럴 계획이었으나 오늘 오전 피검사 결과 염증수치가 높다는 것이 이제 나왔고 그간 전해질불균형 문제, 고 나트륨혈증으로 일주일 물과 수액치료를 했으나 잘 잡히지 않았던 이력을 이야기하고는 꼼꼼히 검사도 해보고 원인도 찾아달라는 말에 조금 새초롬하게 알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조영제 넣고 복부 CT촬영을 진행할 예정인데 과거 경험에 대해 물으려 또 다른 의사의 전화가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을 외과 주치의로 소개한 의사는 본인이 엄마의 주치의가 되었다면서 엄마가 맹장이 터졌고 그게 복막염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오늘 바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수술해 줄 교수님이 내려오시면 전화를 드릴 테니 그때 상세한 것은 물어보라며 그는 전화를 끊었다.
또 30분가량 흘렀을까. 사촌언니의 전화로 담당교수의 전화가 왔고 나는 엄마의 현 상태에 대해 가장 우려스러웠던 것들에 대해 문의했다. 현재 엄마의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데 수술이 가능할 정도인지, 수술을 하게 되면 션트수술(뇌척수액을 배로 내보내는) 이력이 있는데 가능한지에 대해서. 담당교수는 망설이는 듯하더니 엄마 컨디션이 몹시 좋지 않은 데다 내 말처럼 션트수술도 되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항생제 치료로 염증을 잡으면서 지켜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는 복막염까지 진행되었다면 수술을 하지만 엄마는 수술을 했다가는 전체 컨디션이 더 안 좋아질 수도, 못 깨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답변에 전신마취 리스크 때문이냐 되묻는 나의 질문에 교수는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럼 항생제 투여하면서 경과관찰은 얼마 정도 생각하시냐고 했더니 최소 일주일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최종 결정은 보호자의 몫이고 이럴 때는 빠른 결정이 필요한 법. 아빠는 수술을 강행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나는 교수님 의견대로 항생제 치료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까지 갔으니 무척 고통스러웠을 텐데 말 한마디 못하고 엄마가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입원이 결정되었으니 아무래도 퇴근 후 바로 대구로 내려가야 할 듯싶었다. 아빠도 언니도 간병경험이 없으니 내일 새로운 간병인을 구할 때까진 내가 엄마 옆에 있어야 했고 저쪽 병원으로 가 퇴원 수속도 하고 서류도 떼고 짐도 챙겨다 놓아야 했다. 퇴근 후 부랴부랴 정리해서 대구로 내려가는 길, 복용약을 묻고 엄마의 경과를 묻는 이쪽저쪽 병원 간호사들로부터 또다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내가 없어도 응급실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준비를 해 둔다고 해 두었는데 예상치 못한 엄마의 복막염 이벤트로 오늘은 사무실에 있는 동안 온종일 진동벨이 울려댔다. 어느 정도 사태가 일단락되고 나니 회사에서의 나름 한다고 해도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내 전화를 받으러 복도로 나가는 내 모습을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신경이 쓰였다. 그냥 아끼지 말고 휴가를 쓸 것을. 대구로 내려가는데 날씨조차 변덕스러워 종잡을 수가 없었다. 고속도로의 어느 구간은 폭우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가 또 어느 구간은 금세 마른 바닥이 나타났다. 변덕 서러운 날씨가 꼭 나의 오늘 하루 같이 느껴졌다. 지나간 일 자꾸 되새김질하지 말아야지. 가뜩이나 복잡한 일들을 스스로 더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대신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생기면 과감히 휴가를 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