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잉고잉 박리라 Jun 30. 2023

직업이 뭔가요?

병원에 도착하니 엄마는 1인실을 배정받아있었다. 감염병실 중 1인실이 비어 이리로 배정했다는 것이었다. 이번엔 운이 좋았다.

온종일 고생한 아빠와 사촌언니를 돌려보내고 엄마 옆 보호자 침대에 누웠지만, 밤새 잠은 잘 수 없었다. 엄마가 30분 이상 통잠을 자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가래가 너무 많았다. 조금 비좁았지만 엄마 침대에 함께 누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피로도 달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옛날 사진도 함께 보며 깊은 밤과 새벽 시간을 보냈다.

아침이 되자 자신을 수간호사 선생님이라고 소개한 분이 오시더니 엄마를 잘 돌보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내게 뜻밖의 질문을 건넸다. 그녀는 내게 '혹시 간호 사세요?'하고 물어보았는데 나는 속으로는 살짝 당황했지만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 더 묻지 않았지만 어쩐지 나를 의료계종사자로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하튼 엄마는 점차 안정되어 갔고 나는 새로이 간병인을 구해두고 저쪽 병원 퇴원 수속과 짐정리를 하러 나섰다.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친정집 소파에 넋을 놓고 앉아있는데 아빠 또한 내게 그 수간호사 선생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해 빵 터져서는 깔깔대고 말았다. 담당 교수님이 아빠에게 따님이 의사시냐고 물어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빠에게 뭐라고 답변했냐고 여쭤보니, 아니라고 했다고 하셨다. 그랬더니 담당 교수님이 그럼 간호사시냐고 물으시기에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만 이야기했다 셨다. 아빠 생각엔 내가 너무 똑 부러지게 엄마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교수님이 내가 의사인 줄 안 것 같다셨다. 음, 담당 교수님이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은 의외였지만 내 생각엔 어제 있었던 전화통화에서 몇 가지 구체적인 질문 때문에 담당 교수님이 그런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했다. 간병일기도 브런치에 쓰고 있지만 메모장에 특이사항을 날짜별로 꼼꼼히 기록한 덕에 대학병원 교수님께 의사냐는 질문도 받아보고 수간호사 선생님께는 간호사냐는 질문도 받아보다니. 어쩐지 내가 엄마의 상태에 대해 그래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휴가를 내고 밤을 꼴딱 지새우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몹시도 졸리고 피곤했지만 엄마가 3차 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되어 무척이나 마음이 놓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입원기간이 지난번처럼 길지 않을 테니 곧 다시 전원 갈 병원을 알아봐 두어야겠지만 한 주정도는 또 마음 편히 보내겠구나 싶어 좋았다고 하면 나 엄마한테 많이 미안해해야 하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예정된 응급실 행이었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