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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Sep 07. 2023

코로나만 남긴 외래진료

한창 휴가철이지만 엄마가 병원에 계시니 어김없이 여름휴가를 대신해 온 가족이 친정으로 내려와 시끌벅적한 주말을 보냈다. 주 2회 재활을 시작하며 엄마가 조금씩 호전세를 보이고 있었고 그런 엄마를 보머 나는 다음병원은 꼭 재활의학과로 엄마를 모셔야겠다고 다짐했다. 게다가 사실 확인이 필요하지만 카더라 통신으론 vre가 있어도 오전 오후 재활실에 가서 재활이 가능하다는 대학병원을 알게 되어 그쪽 재활의학과로의 전원에 욕심이 났다. 마침 광복절이 화요일이기에 월요일은 휴가를 써두고는 콕 집어 그날로 진료 예약을 잡아두었었다.


조금씩 호전되고는 있다지만 너무 체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의 엄마가 힘들어하진 않을지, 가래를 뽑지 않은 채로 약 3시간가량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덤덤한 척 그 시간을 맞이했다. 주말부터 어딘가 골골대는 남편이 혹시나 코로나라도 걸렸을까 자가검사에 음성이 나왔음에도 혼자서 엄마 진료를 모시고 다녀오기로 했다. 뭐 사설구급차를 타고 오가는 것이니 불안은 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늘 빗나가는 법.


진료를 보러 가는 구급차 안에서 엄마는 미친 듯이 기침을 해댔고 그럴 때마다 가래가 끓어 넘쳐 밖으로까지 새어 나왔다. 석션기가 구비되어 있었지만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가래를 뽑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고작 20분 남짓한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혼이 빠져나갈 듯 정신이 없어서 온몸에 힘이 바싹 들어가고 등골이 서늘했다. 이송요원(구급차)분들도 불안해 보였던 모양인지 베드(환자침상)를 빌려오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엄마를 휠체어에 앉혀 달라고 했다. 누워있는 것보다 앉아있는 것이 가래는 덜할 것이고 진료를 보는 것도 이동하는 것도 나 혼자서는 베드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병원 안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보다 더 심해지면 응급실로라도 뛰어가면 되지 싶은 마음으로 덤덤해지려 마음을 가라앉혔다.


병원에 도착해 휠체어에 엄마를 앉히자 다행히도 가래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혹시 몰라 가져온 새 갑 티슈 한 통을 가래를 닦아내느라 다 썼다지만, 여분의 두루마리 휴지가 있었기에 좀 더 버텨볼 수 있을 듯싶어 초진 접수와 영상자료 등록을 하고 나니 엄마는 무척 지쳐 보이는 와중에도 오랜만의 외출로 사람 구경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진료의를 만나 그간의 병력을 아뢰고 보호자로서 환자 케어와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할 자세가 되어있음을 어필했으나 뭔가 뚜렷한 답을 받지 못해 못내 아쉬웠으나 오래지 않아 전화를 주시겠단 말에 일단 엄마를 모시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진료를 멀쩡히 보았단 게 거짓말이었던 것 마냥 엄만 다시 사설구급차 안에서 기침을 해 댔고 또다시 가래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힘들었지만 병원에 도착해서 가래를 뽑는 게 나을 것 같아 휴지로 닦아내기만 하고 버텼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남편은 자가키트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나는 증상도 없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은 데다 자가키트도 음성이기에 가슴을 쓸어내렸으나 혹시 몰라 다음날은 엄마를 보러 면회도 가지 않고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날 오후 본인을 레지던트라 밝힌 한 의사로부터 전화가 왔고 그는 내게 복막염 치료나 다른 내과적 치료가 우선이라며 입원 거절의 의사를 밝혀왔다. 어쩌면 조금 무리한다 싶을 만큼 힘들게 엄마를 모시고 진료까지 본 것이 무색하게 결과가 따라오지 않으니 속상했지만, 어차피 거절당해 본 것이 한두 번도 아니니 쿨하게 알겠다고 답변한 뒤 그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다.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며.


궁금했다. 왜 우리 엄마는 입원장을 내어주기 어려운지 그렇다면 다음엔 어느 과로 전원을 하는 게 좋은지 그냥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들을 물어보았는데, 그의 얘기를 종합해 보았을 때 최종 거절 결정의 원인은 엄마가 여러 가지 큰 이벤트가 발생했었고 앞으로도 발생할 소지가 큰데 대부분의 치료를 ㅇㅇ병원에서 받았기 때문에 그런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ㅇㅇ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은데 이 병원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 진작 알았으면 다시 한번 ㅇㅇ병원 재활의학과에 대리진료를 보러 가는 거였는데... 되든 안되든 경과도 말씀드리고 재입원을 위해 대기도 좀 걸어두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더 그들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후회스러웠다.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어렵지 않게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행동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속상한 마음도 잠시, 연속으로 아이들이 확진되며 마음이 뒤숭숭하고 정신이 없는 가운데 간호사실로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엄마도 확진이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나는 사무실 복도에서 그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엄마가 확진이라고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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