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할 수 있고 지금은 할 수 없는 이유

결국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by 유메이

나는 장거리 이동에 거침이 없었다. 대학교와 집은 환승을 2번 하고도 마을버스를 타고 편도 1시간 이상을 가야 도착할 만큼 멀었다. 새벽에는 영어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서 또다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학원을 1주일에 3번씩 다녔다. 방학에는 과외 학생을 만나기 위해 왕복 4시간을 이동하기도 했다.


운전을 못했던 나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먼 거리를 떠나기 전에는 한참 동안 읽어도 끝이 나지 않을 만큼 두꺼운 책과 좋아하는 노래가 가득 담긴 MP3 플레이어를 반드시 챙겼다. 체 게바라 평전이나 움베르트 에코는 긴 지하철 여행 동안 나와 함께해 주었다. 대림역과 구로 디지털단지를 지날 때면 잠시나마 반가운 하늘도 만날 수 있었다. 각자의 역할을 위해 지하철에 몸을 실은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나를 채우며 오가는 시간은 언제나 소중했다. 그때의 나에게 물리적 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취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보다 내가 하고 싶은 업무인지가 더 중요했다. 미련하게도 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는 아예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첫 직장을 집에서 편도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곳으로 다니게 되었다. 주변의 걱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지하철과 셔틀을 타고 사무실에 도착하는 생활을 지속했다. 워라밸 따위는 개나 주던 라떼 시절이라 야근과 특근도 많았지만 책과 음악이 함께하니 이동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데미안이나 위대한 개츠비와 같은 고전도 마음껏 읽고 아이팟으로 음악도 실컷 들었다. 돌아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책과 음악을 접했던 시기가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어느덧 직장 경력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장거리를 뛰어넘고 선택했던 업무는 막상 해보니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4년이나 다녔다니..) 두 번의 이직과 두 번의 육아휴직. 아직도 마음은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그날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근 10년 동안 세상도, 나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복직 이후 부서 이동이 결정되었다. 신규 발령 부서는 집에서 무려 1시간이나 떨어져 있었다. 몇 년 전부터 꿈꾸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대감보다 걱정과 우려가 더 컸다. 더 이상 나에게 업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갓 복직한 나에게 선택권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코로나로 많은 것이 유연하게 변해 있었다. 지금은 재택근무를 최대한 활용하며 새로운 일을 즐겁게 배워 나가는 중이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꽉 찬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낯설지만 정겹다. 수년을 다녔던 길이라 그런지 신기하게도 몸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상향인지 하향인지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다리가 이끄는 곳을 향해 걸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변할 때마다 즐겨 듣던 노래를 들으니 몇 년 전 그날로 돌아간 것만 같다.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이유는 뭘까.

반대로 그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결국 모든 건 내 마음이 정한 일이었다. 거리가 멀어도 업무 때문에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것도 나였고, 거리가 멀기 때문에 업무가 좋아도 회사를 다니기 힘들거라 걱정한 것도 나였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도 나였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나였다.


나는 여전히 이동 중에 책을 읽고 노래를 듣는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책과 글을 좋아하고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면에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 업무는 10년 전 그날과는 확연히 달랐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 어제의 내가 하지 못한 일을 오늘의 내가 해낸 것처럼, 오늘의 내가 하지 못한 일을 내일의 내가 해나갈 수 있길 바란다. 물론 할 수 있을 일들 중에서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는 일도 생기겠지만 어제를 아쉬워하지 않고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야겠다. 그렇게 계속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짜 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겠지-


대체 어디를 걷고 있나.
그곳이 다른 사람의 길이 아닌가.
그래서 어쩐지 걷기
힘들지는 않은가.

나의 길을 걸어라.
그러면 멀리까지 갈 수 있다.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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