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계절

서로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기를-

by 유메이

힘든 일은 한 번에 온다는 말이 있다. 살다 보면 때때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듦이 몰아쳐 올 때가 있는데 내게는 10월 한 달이 그랬다. 회사, 집, 나 자신.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던 시간들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났던 실망스러운 사건들과 그 속에서 자신의 실리만을 챙기려 했던 더욱 실망스러운 사람들. 연이은 아이들의 아픔.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어제보다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나의 하루. 그런 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자괴감. 안 좋은 감정이 또다시 안 좋은 감정을 낳으며 조금씩 내 안에서 커져가고 있었다. 실리마린과 비타민, 정신 승리로 근근이 버텨가던 하루는 아이들이 고열로 심하게 앓으며 일상이 뒤흔들리게 되자 결국 폭발해버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며칠 휴가를 썼지만 회사 일보다 아이들 케어와 집안일이 훨씬 더 많아서 도통 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40도가 넘는 고열로 힘들어했고, 나는 이 모든 일들이 감당이 되지 않아 힘들어했다. 상황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탓일까, 그들의 탓일까, 날씨 탓일까, 코로나 탓일까-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져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원치 않게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힘든 일들의 원인과 이유를 스스로에게 자꾸 되묻고는 했다.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지만 지금 나는 힘든 일을 겪고 있다고, 그래서 조금 힘들다고 나 자신에게만큼은 털어놓고 싶었다.




밤새 끙끙 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나의 작은 바람이 이루어진 걸까. 아이들의 감기는 나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한동안 꽤 아팠지만 아이들은 다행히도 나아졌다. 매일 유지해오던 새벽 루틴이 일 년 만에 중단되었다. 새벽 기상도, 독서도, 경제적 자유를 위해 틈틈이 도전하고 있는 파이프라인 관리도 다 멈춰버렸다. 내 의지로 멈추게 된 것은 아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쉬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촘촘하게 바빴던 날들 속으로 오랜만에 평온함이 찾아왔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잠도 푹 자며 지내니 컨디션도 금방 좋아졌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힘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뭐라도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의 여유까지 생겼다. 멈추고 나니 뛰어다닐 때는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선물처럼 우연히 작은 위로와 용기를 만났다. 바로 유튜브 추천 뮤직에서 흘러나온 적재의 ‘우연을 믿어요’였다.


복잡하게 고민하지 말고
우연을 믿어요
언제나처럼 해왔던 대로
우연을 믿어요

어쩌면 우린 익숙해져 버린 걸지도 몰라
It's all right
아무 걱정 말아요

우연을 믿어요
담담히 걸어요
그대가 꿈에 그리던 길을
그 길을 걸어요

- 우연을 믿어요, 적재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연을 믿고 걸으라고, 아무 걱정 말고 꿈에 그리던 그 길을 담담히 걸으면 된다고 말해주는 목소리에 마음속 답답함이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 번 흘러나온 눈물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소리 내어 펑펑 울었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후련했다. 눈이 녹아내리듯 내 안의 답답함이 다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지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였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가을의 끝자락에 도착해 있다. 달력도 10월에서 11월로 바뀌었다. 내가 멈춰있는 동안에도 시간과 계절은 부지런히 겨울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나 보다. 마음을 내려놔서인지, 우연 덕분인지 폭풍우처럼 몰아친 많은 일들은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하고 싶은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건강을 회복한 아이들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왔다. 매일 똑같이 느껴졌던 것들이 새삼 고맙고 소중하다. 사소한 날들 속에서 나는 다시 내일을 향한 준비를 시작한다.


살다 보면 지금보다 힘든 순간을 수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선선했던 10월보다 차갑고 서늘한 11월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아이의 직은 손을 통해 따스함이 전해진다. 추워진 날씨만큼 서로의 온기가 더욱 따듯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마음속에 쌓인 얼음덩어리를 녹이고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너에게, 너도 나에게 그렇게 서로에게 존재만으로도 따뜻한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주보다 조금 더 차가워진 바람이 코 끝을 스친다. 차가운 계절도 언제나 그래 왔듯이 우리 곁을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겠지-


사소한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 파스칼


https://youtu.be/3ErMhIkmrls


작가의 이전글국어를 좋아하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