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걸 당장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책을 여러 번 읽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서 종알대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내가 천재가 아닐까 의심했다고 할 정도다. 그 의심은 아쉽게도 사실이 아니었지만 책을 좋아하니까 국어는 잘하겠구나, 중요하다는 ‘국영수’ 중에 그래도 한 과목에 대해서는 걱정을 안 해도 되겠구나 싶어서 조금 안도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나의 학창 시절은 국영수 중 ‘그놈의 국어’ 때문에 언제나 힘들었다.
나의 국어 실력은 별로였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어 성적이 좋지 않았다. 성적이 곧 실력은 아니지만, 고등학생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가늠할만한 기준은 시험 점수뿐이었다. 수학 점수가 낮으면 수학을 못하는 것이고 국어 점수가 낮으면 국어를 못하는 것이었다. 한국어로 표현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전혀 서툴지 않았음에도 국어 점수가 낮은 나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국어를 못하는 아이’로 인식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국어를 좋아했다. 교과서와 언어영역 문제 속에서 만난 소중한 작품과 작가님들 덕분에 질풍노도의 시기도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윤동주의 ‘서시’를 읽으며 가슴이 두근거렸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비록 출제자가 의도한 정답을 맞히지는 못했지만 좋아하는 구절, 좋아하는 작품 속에서 나만의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국어 사랑은 깊어만 갔다.
대부분의 국어 문제들은 저자가 의도한 단어나 문장의 함축적 의미 혹은 저자의 생각과 의지에 대해 물었다. 나는 매번 이 부분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문제의 출제자는 저자인가? (저자는 이미 고인이 된 경우가 대부분임)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저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가?
문학적 해석에 대해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이라는 기준이 있을 수 있는가?
이미 고인이 된 윤동주 시인에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괴로워했다는 고뇌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의지에 대해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저자의 의도보다는 출제자의 해석과 이해에 따라 학생들은 조금 다른 방식의 문학을 접하게 될 수 밖에 없다.
나의 해석과
출제자의 해석이
너무 다른 것 같아!
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도 여전히 국어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나는 스스로 문제를 틀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자 변명을 찾아냈다. 나의 해석과 출제자의 해석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그 차이가 클수록 정답이 아닌 오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심지어 묻지도 않았지만 나 자신에게는 그 변명이 조금 중요했다. 때로는 노력이 결과로 바로 돌아오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려주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았던 내가 자발적으로 다녔던 유일한 학원은 언어영역 단과 학원이었고, 다른 모든 과목을 합친 것보다 언어영역 한 과목을 공부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공부를 하지 않은 수학에 비해 국어 성적은 매번 형편이 없었다. 수학은 공식만 외우면 되었지만 국어는 작품마다 해석이 다양했고 내 점수도 그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여전히 국어를 좋아했지만 수학과 과학 점수가 월등히 더 높았기에 수학이나 과학이 더 적성에 맞다고 착각한 나는 이공계에 진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시험을 위해 책을 읽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좋았다. 이상, 윤동주, 피천득, 김승옥, 황순원, 박경리.. 교과서에서 만났던 수많은 작가님들을 도서관에서 다시 만났다. 기출문제에서 본 것처럼 여기저기 밑줄 그어지지 않은 새하얗고 깨끗한 민낯의 작품들을 다시 만나니 구면이지만 초면처럼 반가우면서 새로웠다. 적성이라고 생각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진짜 적성이 돼버린 건지 수학과 과학에는 여전히 큰 어려움이 없었다. 선형대수나 일반 물리학 같은 전공필수 과목들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성적이 좋았다. 그 덕분에 듣고 싶은 교양 과목을 마음껏 들으며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학점이 나쁘지 않았기에 전공을 살려 무난히 취업했고, 지금은 전공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는 고맙게도 다 ‘국어’ 덕분이다.
좋아하는 일을 항상 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무언가가 조금씩 쌓이게 되나 보다. 국어 점수가 나쁜 탓에 재수를 했고 이공계를 진학했지만 국어를 좋아한 덕분에 다양한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며 나만의 인사이트를 쌓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학창 시절 국어 점수만큼은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지만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내가 노력한 만큼 때때로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내게 돌아온다. 노력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니 좋아하는 것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마음 가는 대로 해보자. 그렇게 모인 마음들이 나를 상상 그 이상의 곳으로 데려가 주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