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풀리면 그보다 몇 배나 돈이 넘쳐
통화 창조의 마법이 일어나
물가는 오르고 가난한 사람의 살림은 쪼그라들지
암호화폐가 대안이 될까?
통화 팽창과 튤립 광풍
"형님, 튤립 광풍의 이면에는 통화 팽창이라는 복명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튤립 광풍을 1634년에서 1637년 사이에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세계 최초의 경제 버블이라 말하죠. 당시 네덜란드는 실제로 금융과 무역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1602년 설립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세계 최초의 다국적 기업이자 최초의 회사로 주식을 발행했던 기업이었었어요. 이를 통해 네덜란드는 전 세계 무역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어요."
"오호, 네덜란드가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한때 세계 무역의 패권을 잡은 적이 있었다니 놀랍구먼."
"아, 그럼요. 이 시기 네덜란드의 상업은 크게 발달했고, 해외 무역으로 인해 대량의 금과 은이 유입되었어요. 이때부터 금융시스템이 뿌리를 내리고, 금과 은의 가치를 기반으로 통화를 발행하기 시작했어요. "
"그럼 금과 은이 많이 들어오면 통화량도 늘어난다는 이야기인가?"
"맞습니다. 식민지와 동양에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네덜란드로 들어왔어요. 수도인 암스테르담에는 돈이 넘치고, 어마어마한 통화량이 팽창되었어요. 이 돈들이 어디로 갈까요?"
"그야 돈 벌 수 있는 곳이면 몰려가겠지."
"빙고, 그 돈들이 튤립으로 달려가고, 동아시아의 후추나 중국의 도자기를 사는 데 들어갔어요. 암스테르담의 물가는 올라가고, 귀족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어요. 그것이 다 돈이 넘쳐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죠."
여기까지 말하고 후배는 잠깐 뜸을 들인다. 본격적으로 중앙은행의 통화 확대 과정을 설명하려는 모양이다.
100만 원이 500만 원으로
"형님, 통화가 어떻게 창출되는지 아시죠?"
"그야 한국은행에서 돈 발행 액수를 정하면 조폐공사에서 찍어내는 게 아닌가?"
"맞아요. 그걸 우리는 본원통화라고 하죠. 이게 시중으로 나오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 돈이 은행으로 들어가면 다시 은행에서도 통화를 창출해요."
"뭐, 은행이 돈을 창출한다고?"
"그건 아닙니다. 은행이 통화를 창출하는 것을 신용 통화를 만든다고 말하는 겁니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돈은 국민의 손에 들어가죠. 예를 들어 형님이 정부로부터 100만 원을 지원받아 그걸 은행에 예금한다고 칩시다. "
"음, 그건 그럴 수 있겠지."
"은행은 이 돈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굴려야죠. 다른 사람한테 빌려주겠죠. 은행은 예금 전액을 전부 빌려주면 안 됩니다. 은행은 고객 예금을 대출할 때 일정 금액을 떼 놓고 빌려줍니다. 고객이 돈을 찾으러 올 때를 대비해야죠. 은행에 예금하는 사람이 동시에 돈을 다 인출하러 오는 일은 없으니, 일정 비율만 지급을 위해 준비금으로 마련해 둡니다."
후배 말로는 은행은 내가 예금한 돈에서 일정 비율만큼 떼고 나머지를 빌려준다는 것이다. 이걸 예금을 찾으러 오는 사람을 위한 지급준비금이라고 해요. 이 비율이 20%인 경우를 가정해서 계산해 보죠. 은행은 내 예금 100만 원에서 20%를 지급준비금으로 떼고 80만 원을 대출해 준다.
"자, 80만 원을 빌린 사람이 그 돈을 지출하면 어떻게 될까요? 또 다른 누군가에게 80만 원의 소득이 생기는 셈이죠. 이 사람이 80만 원을 은행에 예금한다고 해 봅시다. 은행은 이 중에서 20%를 지급을 위한 준비금으로 하고 64만 원을 또 대출하죠."
"음 그렇게 되겠구먼"
"이론적으로 말하면, 지급준비율이 20%라고 가정할 때, 은행들은 그 예치금의 5배까지 신용을 창출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정부가 시중에 100만 원을 풀면, 은행 시스템을 통해 최대 500만 원까지 통화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거죠. 상상만 해도 놀랍지 않나요?"
은행도 파산하는구나
돈을 찍는 힘을 가진 중앙은행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통화를 발행한다. 중앙은행이 방금 찍어 낸 따끈따끈한 본원 통화가 증가하면, 이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이 시중에 풀려난다는 이야기다.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돈을 더 풀어 경제를 살리는 게 맞지 않아?"
"맞아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경기 변동이 불가피하죠. 그 변동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죠. 그중에 하나가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거죠. 문제는 돈을 풀면 그 돈이 몇 배나 더 시장에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시중에 돈이 넘치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는 건 알고 있고, 그것 말고 또 어떤 문제가 있을까?"
"넘쳐나는 돈이 금융기관에 쌓이겠죠. 금융기관은 돈을 굴려서 이자를 먹는 조직이죠. 돈놀이를 제도화한 것이 금융기관이라고 보면 되겠죠. 통화가 팽창하면 대출 이자율이 떨어지고, 금융기관의 수익도 줄어들겠죠. 돈을 꼬박꼬박 잘 갚는 대출자는 부족해지면 금융기관은 어떻게 할까요? 신용등급이 낮지만,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대출자를 찾게 됩니다."
"음, 그럴 수 있겠구먼. 사실 은행이나 금융기관은 고객의 돈으로 이자 장사하는 게 맞아. 그래서 한때 은행을 '신의 직장'이라고 부르고, 은행의 대출 장사를 땅 짚고 헤엄친다는 말이 나왔잖아."
"맞아요. 그런데 2008년 9월, 1850년에 설립된 리먼 브라더스 은행이 파산했을 때 전 세계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부실 채권에 과도하게 투자한 것이 결정타가 되었어요. 말하자면, 돈놀이를 하기 위해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많이 대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미국 정부가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은행이 파산했을 겁니다. 그러면 그 피해는 누가 감당할까요?"
"그야 뭐, 우리 같은 서민이 아닐까? 이자율은 높아지고, 경기는 나빠지니까 살기가 힘들어지겠지."
암호화폐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맞습니다. 사토시 나카모토도 논문에서 이 이야기를 지적했어요. 지금처럼 중앙집권식 금융 시스템은 앞으로도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비트코인을 제안한 것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에서는 금융 권력이 개인에게 모두 분산되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통화량을 함부로 늘릴 수도 없고 금융을 독점할 수 없죠."
"아, 그렇구나. 진짜 비트코인이나 암호화폐가 기존 금융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을까? 각 나라의 중앙은행이 권력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맞아요. 그렇지만, 새로운 기술은 기존 권력과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죠. 자동차는 마차와 충돌했고, 전화는 편지와 충돌했죠. 인터넷과 무선 통신 기술은 처음에는 전화나 팩스 같은 아날로그 네트워크와 충돌했어요. 이것 말고도 신기술이 과거 기술을 물리치면서 문명이 발전한 사례가 많아요."
"그렇다면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가 기존 금융제도를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게 실현될지 안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어요. 암호화폐가 현행 금융 시스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이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암호화폐가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다만, 암호화폐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죠."
오후 2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두 시간이 훨쩍 넘었다. 후배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후배는 여름으로 가는 나뭇잎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후배는 암호화폐가 탄생한 배경은 이 정도로 마치고, 섬나라 화폐 이야기를 다시 하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