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세 할머니, 180km 바다를 맨몸으로 헤엄치기
76세 할머니, 처음 그림을 배우고 80세에 첫 개인전
69세 할머니, 960번 만에 운전면허시험에 합격
불가능에 도전한 세 할머니 이야기
64세 할머니가 쿠바의 하바나에서 미국 플로리다의 키웨스트까지 약 177km를 헤엄쳐서 건넜다. 53시간을 잠도 자지 않고 수영했다. 그것도 상어가 출몰하고 맹독을 지닌 해파리가 목숨을 위협하는 바다를 말이다. 그뿐 아니다. 조류는 얼마나 빠른지 자칫하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그곳을 할머니가 건넜다.
바다 수영계의 전설 다이애나 나이애드(Diana Nyad)가 2013년 다섯 번째 도전 끝에 플로리다의 바다를 건넌 이야기다. 그녀는 한창 젊을 때인 28세 때 처음 쿠바와 플로리다 사이의 바다 건너기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33년이 지나 두 번째 도전할 때 그녀의 나이는 61살 할머니였다. 그러고도 두 번을 더 실패하고 끝내 64살 때 상어 케이지도 없이 무서운 바다를 오직 혼자 힘으로 헤엄쳐 건넜다.
그녀의 이야기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라는 이름으로 상영 중이다. 65세인 아네뜨 베닝(Annette Bening)이 나이애드로, 61세인 조디 포스터(Jodie Foster)가 친구이자 코치 역으로 등장한다. 그녀들은 일체 대역 없이 실제로 몸을 만들어 배역을 소화했다. 더구나 꾸미지 않고 주름진 피부를 그대로 들어낸 그녀들의 투혼이 놀랍다. 한때는 미모로 뭇 남성의 마음을 설레게 한 그녀들이 얼굴을 꾸미지 않고, 나이가 든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남들이 일을 완전히 손에서 놓을 나이인 76세에 처음으로 그림 그리기에 도전한 모지스 할머니(Anna Mary Roberston Mosies, 1860-1961) 이야기도 유명하다. 가난한 이민자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빈곤한 집안 형편 탓에 12살 때부터 남의 집의 식모살이를 했다. 26살 때 가정부로 일하던 집에서 농장 일꾼인 남편을 만나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다. 평생 농사를 짓던 그녀는 80세에 첫 개인전을 열고, 101세에 사망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단순하고 밝은 화풍으로 미국의 시골 풍경을 그렸다. 당시 미국은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냉혹함에 당황했다. 그러다가 1929년 발생한 대공황은 대량의 실업자를 양성했다. 미국인의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을 때, 그녀의 그림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마을의 사계절과 마을 행사 같은 일상의 소소한 그림을 그린 그녀는 미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국민 화가로 말년을 보냈다.
노년의 도전이 미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2010년 5월, 전북 완주군의 당시 69세 차하순 할머니는 960번 도전 끝에 운전면허증을 손에 넣었다. 할머니는 5년 동안 운전학원까지 몇 시간이나 걸리는 길로 다니면서 시험을 준비했다. 긴 여정 동안, 차 할머니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노력과 헌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녀의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연세가 많아 운전하지 않지만, 그녀의 도전 정신만큼은 여전히 직진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나이를 핑계로 우리의 꿈과 열정을 포기한다. 하지만 이 세 할머니는 우리에게 "꿈을 좇기엔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녀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나이이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에 늦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들은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이 정도 나이에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없다. 체력이 받쳐줘야 하고, 경제적 사정도 허락해야 한다. 욕심을 낮추고, 마음을 비우고 노년을 보내는 것도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사정이 허락한다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특히 뭔가를 배우는 것은 꼭 체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다. 뜻과 의지만 있다면 학습은 나이가 얼마든 상관없이 시작할 수 있다.
날이 흐린 늦가을의 긴 하루를 보냈다. 성질 급한 나뭇가지는 잎들을 다 떨구고 벌써 겨울날 채비를 마쳤다. 아직 결별을 맞지 못한 나뭇가지에는 여남은 노란 잎이 달려 있다. 단풍은 여린 손목으로 나뭇가지에 대롱거리며 이별이 두려운지 떨고 있다. 그렇게 잎들을 떨군 나무도 봄이면 다시 새 생명을 잉태할 것이다. 그렇게 자연의 시간은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사람의 시간은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늦은 나이라 해서 도전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이다.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없기에 아무리 늦어도 이번 생에 시도해야 한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아니면 나이는 젊어도 용기가 없어 새로운 시도가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럴 때면 불가능에 도전한 세 할머니를 생각하자. 그녀들의 도전은 모두에게 귀감이자 표상이다. 그녀들이 이룬 꿈은 노욕의 흔적이 아니라 희망의 증거이다.
“꿈을 좇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그녀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있다. 너무 일찍 포기한 건 아닐까? 추한 욕심이라 욕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꿈을 접는 일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아직 뭔가를 시작할 여유가 한참이나 남은 사람들은 더 그렇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은 나이와 큰 상관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어떤 사람은 늘 꿈을 위해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