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열차를 타고
손 편지를 던지고
숏츠와 릴스에 마음을 뺏기고
남는 시간으로 무얼 할까?
손 편지를 내 던지고
더 빨라진 시간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걸까?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궁화로 가면 340분, 새마을로 가면 290분, 그리고 KTX로 가면 170분 걸린다. 무궁화는 KTX보다 2배나 시간이 걸리고, 새마을은 약 2시간 더 걸린다. 사람들은 더 빨리 가는 고속 열차를 이용한다. 하루 운행하는 편수는 무궁화 9편, 새마을 10편, 그리고 KTX 55편이다. 일부러 느린 무궁화 편을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정차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용한다. 사람들은 어느새 빠른 KTX에 길들었고, 느리고 더딘 기차를 멀리했다.
'손 편지'를 내던진 우리는 더 깊은 정을 나누는가? '손 편지'라고 하면 빨간 우체통이 먼저 떠오른다. 우체통 숫자가 줄어든 2011년에는 숫자가 21,803개였는데, 2021년에는 3,041개로 약 83%나 줄었다. 우체국의 숫자도 3,641곳에서 3,386곳으로 줄었다. 스마트폰과 SNS에 길든 사람들이 손 편지를 쓰지 않은 결과는 고스란히 우체통 숫자 격감으로 나타났다. 우체국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게 감소한 것은 우체국 직원의 감원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정이 담긴 우편물은 사라지고, 우편함에는 세금 고지서만 남았다. 1인당 우편물 숫자는 2011년 1인당 91.3개에서 10년 만에 57.2개로 많이 감소했다. 공공 기관이나 금융 기관이 발송하는 우편물을 빼고, 순수하게 개인 우편물을 계산하면 이 숫자는 더 큰 폭으로 감소한다. 당연한 결과지만, 인구 1만 명 우체통 숫자는 같은 기간에 4.2개에서 1.8개로 대폭 줄었다. 우리는 어느새 손 편지를 멀리 던져버렸다.
이런 현상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다. 사람들은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길 원하고, 더 빨리 메시지를 받기를 원한다. 고속 열차나 스마트폰은 기차나 손 편지와 우편물을 외면하게 했다. 더 빨리 소식을 전하고, 더 빠르게 그곳으로 가는 것에 우리는 길들었다. 그만큼 우리는 더 자주 정을 나누는가? 소식이 빨라진 만큼 정은 얕아졌다.
이뿐만 아니다. 유튜브와 OTT는 영상을 곧이곧대로 시청하는 일도 줄였다.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진득하니 영상을 끝까지 감상하지 못한다. 중간중간 건너뛰고 빠른 결말을 향해 클릭한다. 영화 한 편을 20분 내외로 정리한 요약본을 보고 그게 다라고 생각한다.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 1분 내외의 쇼트폼 콘텐츠가 인기다. 현대인은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견디지 못하고 금세 채널을 돌린다.
'시성비'의 역설
노래 또한 마찬가지다. 노래를 130~150% 빠르게 돌리는 ‘스페드 업(sped up)’ 버전이 인기를 끈다. 정상 속도보다 노래 속도를 높이면, 가수의 목소리가 달라지는 묘한 일이 벌어진다. 가사도 뭉개지면서 원곡과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에 중독되면서 노래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10년 전에 발표한 엑소(EXO)의 ‘첫눈’은 최근 SNS 스페드 업 버전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정식으로 스페드 업 버전 음원을 내놓는 경우도 많다. 데뷔 4개월 만에 빌보드 차트 진입에 성공한 신인 걸그룹 피프티피프티의 노래 ‘큐피드’가 그것이다. '큐피드'의 스페드 업 버전이 틱톡에서 먼저 인기를 끌면서 해외에서도 큰 주목받고 있다.
이제 음악도 원곡을 듣기보다 짧은 것을 선호하는 세상이다. 춤도 느리면 질색하고, 빠르고 짧은 것을 좋아하는 흐름을 반영한다. 모든 것이 시간과의 경쟁이다. 영화와 음악의 배속 감상뿐만 아니라, 심지어 책 한 권을 '10분'으로 요약하는 모바일 독서 앱이 유행이다. 더 짧게 편집하고, 더 많이 압축하는 것이 인기를 끄는 '시간의 가성비', 즉 '시성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배속 시청, 건너뛰기, 유튜브 요약본 시청만으로도 ‘그 영화를 봤다’ 혹은 '그 음악을 들었다'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현상을『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는 “소유 경제에서 경험 경제로 축"이 이동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볼 것, 할 것, 즐길 것이 너무 많아져 시간이 돈보다 중요한 자원이 되는 분초사회”에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분초사회와 시간의 가성비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더 빨리, 더 짧게, 더 많이 압축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시성비가 커진 만큼 우리는 더 행복해진 걸까? 절약한 시간을 온전히 우리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안타깝지만 대답은 부정적이다. 조급하게 일을 끝내도 또 다른 일거리가 밀려온다. 급하게 영상을 보고 나면 허겁지겁 또 다른 영상에 몰입한다. 우리는 더 정신없고, 더 여유 없는 삶을 산다.
고속 열차는 목적지로 가는 시간을 단축해 준 것은 사실이다. 고속 열차가 나오긴 전까지는 서울에서 부산이나 목포로 출장 가면 하루 만에 일을 마치지 못했다. 지금은 아침 첫 차를 타고, 막차를 타고 올 수 있다. 다음날은? 출근해서 또 다른 일을 해야 한다. 고속 열차는 이동 시간을 줄였지만, 일거리를 줄이지는 못했다. 1박 2일의 일정을 하루 만에 끝내고 돌아온 다음 날, 늘 새로운 일거리가 우리를 기다린다.
세탁기가 나오면서 빨래하는 수고를 덜 줄 알았다. 빨래 시간을 줄이고, 노동을 줄인 건 맞다. 그렇지만, 빨래 횟수가 늘었다. 사람들은 더 많이 옷을 사고, 더 자주 갈아입는다. 따지고 보면, 세탁기가 우리의 빨래에서 해방하게 해 준 건 아니다. 자주 옷을 세탁해서 청결하게 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필요 이상으로 자주 빨래를 해야 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도 사실이다.
SNS·쇼트폼과 스마트폰 중독, 자극적인 예능 등 자극적인 콘텐츠가 노화를 가속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시성비'가 좋아질수록 노화의 시계도 빨라질 수 있다. 너무 빠른 생활환경, 스트레스 등으로 지금의 젊은 층은 노화가 빨리 진행되고, 그 결과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성비' 높은 기술이 삶의 여유를 없애고, 삶의 시간까지 빨리 돌린다는 말이다. 기술이 발달하면 더 여유 있게 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거꾸로 가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