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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우울한 청색 시절, 무엇이 문제인가?

어린 시절의 우울한 기억이 문제일까?

우울한 청색 시절의 원인은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울한 기분은 성인이 되어 발현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린 시절의 좋지 않은 경험은 뇌 신경회로를 헝클어지게 한다. 성인기에 겪는 극심한 스트레스도 뇌 신경회로를 뒤흔든다.


사회심리학자 존 브래드쇼(J.Bradshaw)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잠재했다가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튀어나온다고 말한다. 어릴 적의 상처나 상실은 아이의 내면이 성숙하지 않고, 아직 내면 아이(inner child)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생물학자인 블루스 립턴(Bruce Lipton)은 현재는 어린 시절 잠재의식의 프로그래밍이라고 말한다. 현재 내게 일어나는 문제는 문화, 가족, 환경이 등 자라면서 경험한 것들이 프로그래밍한 결과이다.


만으로 3살이 되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곤궁한 시골 살림이 더 나빠져 어머니의 마음고생이 심했다. 어머니는 홀로 도시로 돈 벌러 떠나셨다. 어머니와 재회한 것은 내가 11살 때였으니까 꽤 오랜 세월을 떨어져 살았다. 본가에서 할아버지, 삼촌, 숙모 그리고 사촌들과 함께 살았다. 그나마 모성을 대체할 수 있는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더 어릴 적 외가의 기억은 남았는데 안타깝게도 본가의 기억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가 겪어 할 삶이 신산했다. 그건 고스란히 내게 마음의 빚이 되었다. 성공해서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사명감 말이다. 어린 시절은 이래저래 주눅 들고 자신감을 상실한 시기다. 게다가 중이염은 또 얼마나 심한지 한여름에는 고름 때문에 귀에서 냄새가 나올 지경이었다. 자존감은 낮고 자신감은 떨어졌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 우울한 얼굴을 한 소년이 내 자화상이었다.


나는 청색의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내면 아이가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힘든 시기를 잘 견뎠다고 격려했다. 부단히 내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 시절의 감정을 다독였다. 어린 시절 프로그래밍 이 잘못됐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시절의 청색을 밝은 오렌지색으로 바꿨다. 자기 내면을 스스로 달래지 않으면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자기 내면도 잘 모르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사회가 문제일까? 

산업사회 이전의 봉건사회 혹은 농업사회에서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았다. 이웃 사람과 서로 돕고 위로해 주는 공동체 사회의 끈끈한 유대가 형성되었다. 마을 사람 중 누가 어려움을 당하거나 힘든 일을 겪는 가족이 있으면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도와주었다. 마을이라는 공동체는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하고,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곳이었다.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하는 공동체 사회는 해체되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갔다. 도시는 각박하고 분주하고 바쁘다. 이웃을 돌봐주고 위로해 줄 형편이 되지 못한다. 자신을 건사하기도 힘든 비정한 세상이다. 개인의 삶은 늘 바쁘고 피곤하지만, 여전히 가난하고 불안하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E.K 헌트의 『경제사상사』, 피터 플레밍의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등 수많은 저서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의 원인을 공동체 사회의 해체와 자본주의의 적대적 경쟁 관계를 든다. 동료와는 협동하고 협조하는 관계가 아니라 경쟁하고 이겨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사람들은 의지할 데가 없어 뼛속 깊이 외로움을 느낀다. 개인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개인화(individuation)는 불안, 고독, 외로움까지도 오롯이 개인에게 떠넘긴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근로자는 각자 맡은 업무가 다르다. 자연히 고립되어 일한다. 서로 연결되어 서로 의존하고 협조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자신의 업무 성과에만 몰입하고, 자기 이기심을 극대화하도록 강요받는다. 시장이라는 몰인격적이면서 불변의 힘 앞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도 협동 단위가 아니라 혼자인 원자 단위로 말이다. 사람 사이에는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적대적 경쟁 관계만 남는다. 이러한 적대적 경쟁은 필연적으로 고립을 불러오고 소외감을 느끼게 만다.


사람들은 공동체의 자연을 떠나 도시의 공장과 사무실로 밀려왔다. 한번 자연을 떠난 사람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분업화된 체제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신세가 되었다. 동료와는 형식적인 유대감만 있고 속내는 승진이나 진급에서 떨어뜨려야 하는 경쟁상대일 뿐이다. 올라갈 자리는 적고, 해고의 킬 날을 피하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자연히 이웃과 동료와도 결별하고 믿을 건 오직 자신뿐인 비정한 세상이 됐다. 이런 환경에서 다 큰 어른도 언제든지 우울함에 빠질 수 있다.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돈을 주고 산다. 돈이 없으면 먹을 것도, 잘 곳도, 입을 옷도 구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역사 속 어떤 시대의 사람보다 더 자립 능력이 없는 사람이 현대인이다. 직장인은 월급을 받지 못하면 살아갈 방법이 없다. 어떻게 하든 직장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직장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 자영업을 해도 살아남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무얼 하든 돈벌이가 없으면 일용할 양식조차 스스로 구할 능력조차 없는 절박한 신세가 된다.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학자도 많다. 하비 콕스 『신이 된 시장』, 폴 라파르그 『자본이라는 종교』,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등은 시장 만능주의와 노동 판매자라는 현대인의 정체성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살 설명한다. 직장에서 해고당했든, 정년을 마쳤든 노동 판매자의 지위를 상실한다. 사회의 일원이었던 존재감이 사라지는 상실감이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그 결과 성인이 된 후에도 뇌 신경회로가 헝클어져 극심한 우울함에 빠지게 된다.    


이래저래 현대인의 삶은 피곤하다. 회사나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늘 성과를 요구하는 압력에 시달린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아간다. 현병철이 『피로사회』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항상 피로에 젖어 살고 있다. 사람들은 성과를 내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과잉 경쟁에 내몰렸다.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울음을 삼키는 비정한 현실에서 현대인은 자신도 모르게 우울증에 빠져든다. 우울증은 현대인의 중요 질병은 등장했고,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문제는 양쪽에 다 있다. 어린 시절 양육 환경 때문에 발생하는 뇌 신경회로의 유약함이 일차적인 문제다. 또 성인이 돼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뇌 신경회로를 헝클인다. 사회적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는 경제 체제와 관련되었다. 사회 체제나 제도를 바꿔야 해결될 문제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 해 볼 방법이 없다. 안타깝지지만 자신이 극복해야 한다.


어느 것이 원인이 되었든 스트레스가 심하면 먼저 전문가와 상담해야 한다. 문제를 정확이 파악하고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극복하고 이겨내자는 자기 의지도 준요하다. 자신만의 원칙을 정해 밀고 나가야 한다. 자기 내면 아이를 달래고, 잠재의식의 프로그램을 밝은 것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시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명상을 하든, 종교 활동을 하든 자기 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뇌의 신경회로를 튼튼히 하고, 행복의 신경전달물질을 왕성하게 분비하게 하는 길이다. 그래야 몸과 마음이 강해진다. 내가 우울의 청색 시대를 끝내고 깨달음의 여행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오렌지색 빛남의 시절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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