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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검은 개,  슬기로운 동거를 위한 다섯 가지 규칙

슬기로운 동거를 위한 다섯 가지 규칙

하루하루를 참고 버티고 견뎠다. 이빨을 앙다물고 한 발씩 앞으로 나갔다. 검은 개와 두 차례 치열하게 싸우고 난 후 알아낸 나름의 원리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원리를 따랐던 것이다. 그것을 검은 개와 슬기롭게 동거하는 다섯 가지 규칙이라 부른다.


첫 번째 규칙은 운동하기이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다. 나름의 운동 요법이라 할 수 있다. 침대에서 빠져나오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억지라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취방을 나와 골목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한발 떼기가 힘들었다. 다리에 수십 kg짜리 쇳덩이를 달아놓은 것 같았다. 그래도 움직이고 움직였다.      


그저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으면 검은 개는 미쳐 날뛴다. 밖으로 나가 걷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다. 그랬더니 검은 개가 조금씩 온순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하루 이틀 만에 될 일은 아니지만 시도하면 된다. 일단 침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몸이 늘어지면 생각은 더 우울한 기분으로 빠진다. 몸을 움직이는 순간 만큼은 우울한 생각에 빠질 겨를이 없다.


운동은 세로토닌 수치를 끌어 올리고, 노르에피네프린을 충전한다. 운동은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고 활력을 준다. 운동은 기쁨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선물한다. 엔도르핀도 증가하고 두뇌의 혈류량 증가한다. 시냅스의 장애가 없어짐과 동시에 뇌 신경회로도 재배치된다. 시작은 그저 산책이라도 좋다. 일단 움직이면 긍정과 행복의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의 강을 앞다투어 건너건다.


두 번째 규칙은 제때 결정하기이다. 반드시 내려야 할 결정은 미루지 말고 기한 내에 결정하는 것이다. 심각한 우울함에 빠지면 우유부단함과 결정장애에 빠진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땅에 떨어진 상태라 결정하기가 두려워 차일피일 뭉그적거린다. 어떤 결정을 해도 나쁜 결과가 나올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떠오른다. 제때 결정하지 못하면 상황이 더 나빠진다. 수강 신청 기간인데도 하루 이틀 미루다가 기한을 놓치면 낭패를 당하는 것과 같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면 미루지 말아야 한다. 올바른 방향으로 일단 한 걸음만 내디디면 일은 훨씬 수월해진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생각과 인지 방식이 바뀌고 결정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목표를 세워 실행하면 도파민이 증가한다. 자신이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는 자신감도 얻는다. 일을 통제할 수 있게 되고, 마음은 밝은 세상으로 나온다.


이때 너무 크고 중요한 결정은 함부로 내리지 말아야 한다. 마음의 상태가 정상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 회사를 그만 두는 일 같은 중요한 일 말이다. 그런 결정은 오히려 패배의식을 불러와 더 나쁜 상황으로 이끈다. 반드시 결정해야 할 작은 일을 미루지 말라는 뜻이다. 반드시 해야 할 작은 일을 미루다 보면 큰 일이 된다. 잔매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그 외 큰 일은 마음이 진정되고 난 후에 결정하는 것이 좋다.


세 번째는 생각을 바꾸자 이다. 생각의 방향을 틀어 검은 개를 놀라게 했다. 생각은 시냅스를 꾸고 신경전달물질의 흐름까지 바꾼다. 그때까지 검은 개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했다. 어둠에만 생각의 나침판을 고정했다. 그러다가 나침판의 반대 방향으로 생각을 틀었다. 오늘보다 내일은 분명 나아질 거라고 스스로 속삭였다. 주문처럼 그 말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뇌의 신경회로가 변하는 것은 빠르면 몇 시간 만에도 가능하다. 끊임없이 자신을 다독여주면 긍정의 신경전달물질이 넘쳐나고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한다.


검은 개가 눈을 흘기고 사나운 이빨을 내보여도 그대로 밀고 나갔다. 뇌는 긍정적인 피드백 시스템이다. 아주 미세한 변화 하나라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부드럽게 속삭이고 격려하면, 뇌는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어린 시절 상처 받은 일이 있었다면 자신을 다독여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하면 생각이 바뀐다. 생각이 바뀌면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흐름도 바뀐다. 뇌의 신경회로가 바뀌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네 번째 효과를 본 규칙은 책 읽기다. 책은 도끼이자 나침판이다. 카프카(Franz Kafka)는 "책은 우리 내면의 꽁꽁 언 이성을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책은 우울을 깨부수는 날카로운 도끼로 사용해도 좋다. 마음에 위안을 주는 책을 읽으면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책을 읽으면 뇌의 신경회로를 재배선하고 마음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책에 나오는 좋은 내용이 우울한 기분을 회복시킨다. 짧은 명언 한 구절로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


책은 야성의 들판에서 길을 안내하는 나침판이다. 도끼와 나침판이 있으면 엄혹한 세상을 살아가기에 큰 힘이 된다. 더 지혜롭게 더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무지로 인한 어리석은 행동을 줄인다. 마음이 우울할 때도 책과 좋은 위안이 된다. 그러니 책을 가까이하는 것은 뇌 신경회로를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섯 번째 글 쓰기다. 내면 아이에게 격려의 편지를 쓰는 것이다. 혹시 상처 받은 일이 있다면 진심으로 달래주는 일이다. 마음의 상태를 적어도 좋다. 자기 감정을 글로 쓰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폐쇄된 머릿속에만 머물면서 자가증폭하는 마음을 밖으로 꺼집어 내는 것이다. 우울함을 객관화시킴으로써 크기를 줄인다.


책의 좋은 구절을 옮겨적는 것도 좋다. 독후감을 쓰거나 느낀 점을 기록하면 금상첨화다. 글 쓰는 일은 맹려한 사고 작용을 동반한다. 동시에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은 뇌의 신경세포를 일깨운다. 읽기와 함께 쓰기를 동시에 하면 뇌 신경세포로 전기 신호의 강도가 세지고 긍정의 신경전달물질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이것은 우울함에 빠진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뇌는 정교하고 섬세하지만 잘 속는다.

이때 깨달은 재밌는 사실이 있다. 뇌는 정교하고 섬세하고 정교하지만, 속이기가 아주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한을 상상할 수 있는 창조적인 두뇌는 의외로 반복된 주문에 쉽게 넘어온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미동도 하지 않다가 몇 날을 반복해서 좋아질 거라 말하니 믿기 시작했다. 내일도 오늘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더 나빠질 거라는 생각이 사라졌다. ‘검은 개’가 좋아하는 과거의 아픔을 발은 오렌지색으로 색칠할 수 있었다.

     

두뇌의 흥미로운 작동 원리 가운데 작업 흥분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하기 싫어 억지로 시작한 일도 일단 시작하고 보니 재미가 붙는 경우가 있다. 한 번 작업을 시작하면 그 일에 몰두하고 집중하게 된다. 작업을 시작하면 뇌에서 즐거움의 물질인 도파민이 솟아나 자가 흥분하는 현상을 작업 흥분이라 한다. 운동도, 공부도, 습관도 일단 한번 시작하면 재미가 나서 흥분하게 된다. 그렇게 좋은 습관이 만들어진다.


외과 의사 맥스웰 몰츠(Maxwell Maltz, M.D.) 『맥스웰 몰츠의 성공의 법칙』에서 우리가 의식적으로나 고의적으로 새롭고 보다 나은 습관을 개발하면 우리의 자아 이미지는 새로운 패턴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영국 런던대 제인 워들(Jane wardle) 교수는 어떤 행동을 계속해나가겠다고 결심했을 , 그것이 습관으로 몸에 배기까지는 불과 ‘66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어떤 행동이 습관으로 변하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오늘보다 내일은 더 나을 거라는 희망, 몸을 움직이는 운동, 단호한 결단, 책 읽기와 글 쓰기를 통해 검은 개를 길들였다. 우울한 청색 감정이 밝은 오렌지색 감정으로 변하는 상승 나선에 올랐다. 끊임없이 분명 좋아질 거라고 인정하고 실제로 그렇게 기대했다. 드디어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을 포함한 신경전달물질의 막힌 흐름을 뚫었다. 낙천성의 뇌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면서 몸과 마음도 건강해졌다.      


검은 개와 함께한 2년간의 동거는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20년 뒤에 검은 개가 다시 나타날 줄 어찌 알았겠는가. 더 흉측하고 더 크고 더 무서운 개가 되어 돌아올 줄 꿈에도 몰랐다. 그때도 의지와 인내로 이겨냈다. 그건 그 후의 문제고, 어쨌든 그사이에는 밝은 오렌지색의 행복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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