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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내가 나를 슬프게 한다.

내가 나를 슬프게 한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독일의 시인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가 말했다. 수필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많은 슬픔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슬픔은 오롯이 내 몫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기계치다. 손만 대면 망가진다. 고치려다 더 크게 망가뜨린다. 새 차에 블랙박스가 떨어졌다. 그것을 새로 달려다가 난리가 났다. 아니함만 못한 정도가 아니다.  새 차에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도대체 관리가 안 된다. 손끝이 매운 아내가 타는 게 좋겠다. 진작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기획서나 보고서를 작성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주제가 정해지면 서론, 본론, 결론이 선명하게 보인다.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내용이 펼쳐진다. 한때 웬만한 보고서나 기획서는 독차지였다. 왜 기계 앞에서만 서면 나는 작아질까? 일의 순서를 모르겠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이러니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하다.      


하다못해 못 하나 박는 일도 순서가 있는 법이다. 위치를 잡고 못질할 자리를 미리 봐 둬야 한다. 그러지 않고 일단 망치질부터 시작한다. 아뿔싸!! 엉뚱한 자리다. 새로 바른 벽지가 엉망이다. 순서와 개념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일단 망치질부터 시작한 것이다.      


제대로 하고픈 마음이 어찌 없겠나? 잘하고픈 마음은 늘 굴뚝같다. 기획서처럼 플로 차트기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일하고도 실수투성이다. 내 문제에 해결에만 골몰하는 습관이 있다. 우선 내 기분이 중요하다 보니 타인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의 일로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다.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다.  고치려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그것이 두렵긴 하다. 늦은 때란 없다는 말을 믿어보자. 이참에 제대로 고쳐야겠다. 미숙한 배려의 뇌 신경회로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가 나를 슬프게 한다.                                    


어린 시절의 고독

어릴 적 늘 혼자였다. 나만 생각하는 습관은 천형처럼 남았다. 환경이 아무리 힘들어도 해낼 사람은 해낸다. 나는 그걸 아직도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우울함을 극복하는 것에 온 신경을 썼다.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걸 탓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아버지가 있다 해서 제대로 교육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것이 이유의 다는 아닐 것이다.    

  

다른 짐작 가는 이유는 어머니와 오랜 헤어짐이 만든 문제다. 기댈 사람이 없다는 것이 주는 심리적 불안감이 컸다. 한 끼 밥에 목메는 것도 그런 탓이 있었을 것이다. 배고픔이 주는 상황이 지독한 이기심을 부른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 환경을 탓하면 무엇하나. 다 제 할 노릇인데 그걸 제대로 못 했다.     

 

거창하게 분리불안이니 내면 아이를 들먹였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나 자신이다. 자아가 자라지 못했다면 그걸 키우는 것도 내 몫이다.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이성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을 힘들게 한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큰 것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하다. 이것이 가장 힘들다. 늘 배려해도 시원찮은 판에 이해심이 바닥을 보이니 딱한 노릇이다.      


내 눈 안의 티끌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아무리 좋은 글을 인용하고, 멋지게 글을 써도 그건 본질이 아니다. 내면이 성숙해서 인격이 제대로 갖춰져야 그게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글이나 말로써는 뭐라 못하겠는가. 번지르르한 표현으로 포장하는 것은 사람을 현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책 속에 길은 없다.”라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말했다. 그건 내가 그리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도 별반 나아지지 않은 것을 에둘러 한 말이다. 전적으로 인정한다. 많이 아는 것은 머릿속에 머무른 죽은 지식이다.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책 속의 길을 찾았다면, 그 길을 걸어야 정상이다. 그렇지 않고 백날 길을 찾았다고 소리친 들 나아지지 않는다.      


깨닫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글은 그저 화려한 말의 성찬이다. 그저 깨달았다는 것을 자랑하고 허세를 부리는 꼴이다.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말만 앞서고 몸이 따르지 않는다면 깨달았다 해도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깨닫지도 못한다면 이건 더 심각한 문제다. 내가 그랬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되짚어 보니 전혀 깨닫지 못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결국, 말만 앞세운 꼴이라 너무 가슴이 아프다.      


진정한 깨달음을 위해 

진짜 어른이 되는 건 나이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맞는 인격과 성정을 갖춰야 한다. 가족을 배려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욱’하는 것은 어린 아이나 하는 행동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거나 많이 배웠다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다. 마음이 성숙해야 어른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환경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환경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예외가 있다. 자각하고 인지하고 개선하려 의지가 있으면 변할 수 있다. 지금껏 살펴본 뇌 가소성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의 성격과 마음은 뇌의 구조에 반영되었다. 뇌는 유연하고 경험에 따라 변한다. 의지가 뇌 신경회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 자각이야 말로 해결을 위한 첫 단추다. 


알아야 하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변화하려는 결심과 노력은 신경회로를 변화시킨다. 좋은 변화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려면 본인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말해봤자 소용없다. 뇌 신경회로를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자기 결심에 달렸다. 고쳐 쓴다면 고치는 주체가 자신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공부만 한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깨닫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깨닫고 행동으로 보이지 않으면 어떤 공부라도 말짱 도루묵이다. 행동으로 증명하는 진정한 깨달음을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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