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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여행의 설렘, 아쉬움, 그리움

설렘, 아쉬움, 그리움

우울한 청색 시절을 끝내고 여행을 자주 다녔다. 여행을 떠날 때면 설렘을 한 가방 챙긴다. 돌아올 때면 설렘이 머문 자리를 아쉬움으로 대신한다. 일상으로 돌아와 문득 생각나서 가방을 열어본다. 아쉬움은 어느새 다음 여행을 향한 그리움으로 변해 있다. 여행은 가슴에 늘 설렘과 아쉬움 그리고 끝내는 그리움을 남긴다.       


강원도 현남군 현불사 여행이 그중 가장 중요하다. 윈드서핑의 성지인 인구해변과 죽도해변과 불과 4km 남짓하다. 해변의 요란함이라곤 일절 미치지 않는 사찰에는 침묵과 고요 그리고 주지 스님의 묵상만 오롯하다. 현불사는 깨달음의 여행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깨달음을 위한 긴 여정의 중요한 변곡점이기도 하다. 인연은 우연처럼 다가와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문득 지혜와 깨달음은 모닥불을 닮았다. 모닥불은 바싹 마른 장작으로 피워야 제맛이다. 장작이 부족하면 불꽃에 제대로 일지 않거나 모닥불이 쉬 사그라진다. 장작 몇 개로는 밤의 끝을 밝히기는커녕 그저 불꽃의 변죽만 울리다 끝난다. 그런 날은 모닥불은 힘을 잃고 시든 꽃잎처럼 금방 꼬리를 내린다. 


지혜와 깨달음도 그렇다. 오래 축적한 앎과 지식을 장작 삼아 지혜와 깨달음의 불을 지핀다. 앎이 부족하면 불꽃은 금방 사라진다. 큰 지혜의 불꽃을 피우려면 앎과 지식의 장작더미가 산처럼 쌓여야 한다. 지식이 쌓이고 또 그 위로 지식이 쌓여야 한다. 켜켜이 쌓인 앎과 앎이 스쳐 불꽃을 만들고, 종내에는 지혜와 깨달음을 발화한다.      


청색 시절을 끝내고 새로운 지혜를 얻으려 노력했다. 생각은 답답하고 좁은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자유의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하는 생각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늘 한 곳에서 맴돈다. 왜 무지가 깨치지 않는 걸까? 왜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일까? 답답함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등산을 좋아하는 나는 사찰이 있는 산을 오를 때면 늘 절을 찾았다. 조용히 혼자 법당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드렸다. 그렇다고 따로 불법을 듣거나 불경을 외지는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등산객으로 절에 들른 것이 전부였다. 가끔 불교 경전의 아름다운 글들을 인용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다가 이참에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스승일 수도 있고, 종교 지도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깨칠 수 있다면 어느 스승이든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차에 작년 초 불심 깊은 L 교수님을 만났다. 몇 번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자연스레 불교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내가 듣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깨침을 얻지 못하는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L 교수님의 제안으로 현불사를 떠났다. 자신이 자주 다니는 절이 몇 군데 있는데 한번 가보자는 것이다. 내게 잘 맞는 절이 있다는 것이다. 너무 격식을 따지거나 엄격하지 않고, 특히 주지 스님이 인자하셔서 처음 다가가기 쉬울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참 스승을 찾자 천리 길도 한걸음에 달려갈 참인 나는 마다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딱히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없어서 어떻게 할까 뭉그적거리고 있던 나로서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깨완수토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일 당장이라도 떠나자고 말했다. 키 낮은 잡목과 풀이 우거진 길을 이리저리 헤치고선 밤늦게 현불사에 도착했다. 차 문을 여는 순간 느껴지는 깊은 산골의 숲 향기 가득한 바람이 더없이 좋다. 귀뚜라미 소리와 벌레 소리가 밤의 교향곡처럼 멋진 하모니를 연주한다. 작은 개울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도 깊은 밤의 정취를 더욱 아름답게 수놓는다.      


주지 스님께 인사드리기에는 밤이 늦었다. 다음 날 봬 올 것을 기약하고 ‘깨완수토굴’의 정념(正念) 방에 짐을 풀었다. ‘깨완수토굴’이라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나중에 주지 스님께서 직접 지은 주지 스님께서 '깨달음의 완성, 수행을 위한 토굴"이라 일러주셨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스님께 문안 인사를 드렸다. 절을 둘러봤다. 힘있게 뻗은 왕금산 줄기가 양 갈래로 나뉘어 현불사를 둘러싸고 있다. 마치 황금 닭이 양 날개로 계란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金鷄抱卵)의 형상이다. 양쪽 산자락에는 키가 쭉쭉 뻗은 홍송(紅松)이 즐비하다. 토질이 얼마나 좋으면 등 굽은 나무라곤 눈 씻고 찾아도 없다. 


깨완수토굴 앞 개울에는 귀엽고 앙증맞은 다리가 놓였다. 모네의 그림 ‘수련’을 빼닮은 풍경이다. 모네가 활동하던 1800녀대 중반 유럽의 화가들은 일본의 민속화에 푹 빠졌는데, 그들의 일본풍에 대한 사랑은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사회적 유행을 만들었다. 그중에서 특히 클로드 모네는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자신의 아내를 그릴 정도로 일본풍에 빠졌다.      

     

그런 모네는 말년에 파리 교외 지베르니에 일본식 정원을 만들고, 물위에 일본식 다리를 놓았다. 일본과 한국의 개천 위에는 대개 나무나 돌로 만든 아치형의 다리가 놓여있다. 현불사 숙소 앞 다리가 모네의 그림 ‘수련’ 속 다리를 닮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현불사는 대사찰인 설악산 신흥사의 말사로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찰에서 흔히 보는 일주문(一柱門)이 없다. 이것은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이 일자로 서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일주문은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씻고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상징적인 뜻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속세와 부처의 가르침 사이에 경계를 짓는 문이라 할 수 있다.   

   

현불사는 일주문을 세우지 않아 완전히 개방된 모양새다. 중생들이 자연스레 붓다의 세계로 들어선다. 시작과 끝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사람들이 편안하게 불심과 함께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승(僧)과 속(俗)을 굳이 나누지 않고 절과 내 집이 서로 다름이 아닌 하나임을 말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불법(佛法)의 바다를 항해하게 만드는 개방적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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