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가(荊軻)의 노래
“바람은 쓸쓸하게 불고 역수 강물 차갑다.
장사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
風蕭蕭兮 易水寒(풍소소혜 역수한)
壯士一去兮 不復還(장사일거혜 불부환)
진나라 시황제를 암살하러
먼 길 떠나는 자객 형가
그가 역수 강가에서 부른 노래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아는
자객의 비장함을 무엇으로 견줄 수 있을까.
아직 봄은 멀고
바람은 쓸쓸하고 강물은 차다.
누굴 베러 길 떠날 일은 없지만
매일 컴퓨터 앞에서
무딘 칼을 휘둘러 요령부득한 글을 쓴다.
역수 강가에 선
형가의 마음을 어찌 감히 헤아릴까.
그보다 덜하지 않은 비장함으로
연신 키보드를 두드리고
종이 위를 끄적이지만
하얀 공간은 쉬 채워지지 않는다.
글을 짓는 이는 해녀를 닮았다.
언어의 깊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햇빛 아래 빛나는 날것 그대로의 언어를 건져
화려한 문장의 식단을 채운다.
호흡이 길고 숨이 깊은 해녀는
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수천 어쩌면 수만 년 고이 숨겨온
바다의 속살을 건져낸다.
글 쓰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 깊은 해녀를 닮았다.
수만 길 깊은 언어의 바닷속에서
끝내 숨겨온 속살 고운 단어를 건져낸다.
열정은 넘치나 호흡은 짧고
용기는 가상하나 금세 숨이 차다.
애초 물질에 소질이 없는 나는
열정만으로 버티지만
재능 없는 열정은 늘 허무하다.
민망함은 내 몫이다.
감히 심금을 울릴 명문을 기대하지 않고
평생 아름다운 문장 하나
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글은 밋밋하고
고구마 삼킨 것처럼 속은 답답하고
늘 제자리걸음을 한다.
논문을 쓰고 난 후
몇 년이고 펼쳐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엉성한 논리와 쏟아져 나오는 오자와 탈자
그 민망함과 오글거림은 모두 내 몫이라
감히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작년 10월 28일부터 브런치에 연재한
【암호화폐 살인 사건】을 책으로 발간했다.
몇 번이고 원고를 읽었지만
여전히 눈에 띄는 숱한 오류들
이번에도 민망함을 비껴가지 못한다.
이렇게 세상에 내 모자람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가상하다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