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Feb 23. 2024

【암호화폐 살인 사건】출간, 민망함은 내 몫이다.



형가(荊軻)의 노래

“바람은 쓸쓸하게 불고 역수 강물 차갑다.

 장사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

 風蕭蕭兮 易水寒(풍소소혜 역수한)                      

 壯士一去兮 不復還(장사일거혜 불부환)    


진나라 시황제를 암살하러 

먼 길 떠나는 자객 형가

그가 역수 강가에서 부른 노래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아는 

자객의 비장함을 무엇으로 견줄 수 있을까. 


아직 봄은 멀고 

바람은 쓸쓸하고 강물은 차다.

누굴 베러 길 떠날 일은 없지만 

매일 컴퓨터 앞에서 

무딘 칼을 휘둘러 요령부득한 글을 쓴다.  


역수 강가에 선 

형가의 마음을 어찌 감히 헤아릴까.

그보다 덜하지 않은 비장함으로 

연신 키보드를 두드리고

종이 위를 끄적이지만

하얀 공간은 쉬 채워지지 않는다. 


글을 짓는 이는 해녀를 닮았다. 

언어의 깊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햇빛 아래 빛나는 날것 그대로의 언어를 건져

화려한 문장의 식단을 채운다. 


호흡이 길고 숨이 깊은 해녀는 

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수천 어쩌면 수만 년 고이 숨겨온

바다의 속살을 건져낸다. 


글 쓰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 깊은 해녀를 닮았다. 

수만 길 깊은 언어의 바닷속에서 

끝내 숨겨온 속살 고운 단어를 건져낸다. 


열정은 넘치나 호흡은 짧고

용기는 가상하나 금세 숨이 차다. 

애초 물질에 소질이 없는 나는 

열정만으로 버티지만 

재능 없는 열정은 늘 허무하다.  


민망함은 내 몫이다.

감히 심금을 울릴 명문을 기대하지 않고 

평생 아름다운 문장 하나

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글은 밋밋하고 

고구마 삼킨 것처럼 속은 답답하고 

늘 제자리걸음을 한다.  


논문을 쓰고 난 후 

몇 년이고 펼쳐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엉성한 논리와 쏟아져 나오는 오자와 탈자 

그 민망함과 오글거림은 모두 내 몫이라

감히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작년 10월 28일부터 브런치에 연재한 

암호화폐 살인 사건을 책으로 발간했다. 

몇 번이고 원고를 읽었지만  

여전히 눈에 띄는 숱한 오류들

이번에도 민망함을 비껴가지 못한다. 


이렇게 세상에 내 모자람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가상하다 해야 할까. 




작가의 이전글 이 나이에 내가 하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