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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Aug 30. 2024

안개섬의 고독


사내는 오늘도 홀로 간이역의 역사에 섰다. 주위는 온통 안개의 바다다. 안갯속에 파묻힌 역사는 섬처럼 아득하다. 해는 저문 지 한참이나 됐고, 사방은 짙은 안개와 어둠에 잠겼다. 철길은 이내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간이역의 역사는 고독과 외로움이 가득한 안개섬이 되었다.  


그는 하염없이 기차를 기다린다. 몇 대의 열차가 오고 갔지만, 그는 타지 않았다.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떠났고, 이제는 그도 언제 열차를 탈지 짐작할 수 없다. 너무 많은 열차를 떠나보낸 탓에, 왜 열차를 타지 않았는지 자신도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그의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았다 


사내가 역사에 처음 들어서던 날, 역사는 분주하고 화려했다. 하루에 몇 차례나 열차가 들어오고 사람들을 싣고 떠났다. 하얀 벽에는 커다란 기차표가 걸렸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품고 열차를 골랐다. 사내도 그들 틈에 서서 열차 시간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날 이후 사내는 역사에 서서 하염없이 열차를 기다리기만 할 뿐이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는 빛에 바랬다. 벽지는 하얀색을 잃었고, 지켜지지 않는 열차 시간표는 너덜너덜해졌다. 사람들이 떠난 역사에는 역무원도 없고, 집기나 비품은 모두 낡고 해졌다. 변변한 의자조차 없는 텅 빈 역사에 그는 홀로 있다. 간이역에는 기차가 들르는 일도 거의 없지만, 그는 여전히 오지 않을 열차를 기다린다. 


사내는 도대체 무얼 기다리는 것일까?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떠올리며,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걸까? 아니면 행복을 가득 실은 기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걸까? 그는 아직도 행운이 가득한 나라로 태워 줄 열차를 기다리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내는 젊은 시절 열차를 탔다. 그때 선택은 너무 성급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타지 않았던 직전의 열차가 바로 그의 열차였을까? 그는 그런 후회와 회한에 젖는다. 그는 꿈꾸던 열차를 찾으러 역사에 왔다. 그러나 그가 기다리는 열차는 영영 오지 않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가 타지 않고 그냥 보낸 열차 중에 그가 바라던 열차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의 마음은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 


사내는 몇 번의 계절이 흘렀는지 셀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남은 계절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짧게 느껴진다. 사내의 마음은 초조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포기하지 못하는 미련이 그를 아무도 없는 역사로 내몬다. 간수도 없고, 역무원도 없고, 밤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오직 짙은 안개와 어둠만의 그의 곁에 남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열차를 기다린다. 운이 좋은 사람은 원하는 열차에 몸을 싣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행의 열차에 올라탄다. 안개가 너무 짙어 열차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승객들의 표정이 행복한지 아닌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탈까 말까 망설이다 놓치고 후회하기 일쑤다. 아뿔싸, 조금 전 떠난 열차가 내가 기다리던 그 열차였을지 모른다. 기차는 떠나고, 짙은 안개만이 역사를 뒤덮었다. 


사내는 오늘도 열차를 기다린다. 이제나저제나 올까 하염없이 대합실에 홀로 우두커니 있다. 발을 동동거려도 열차는 쉬 오지 않는다. 오늘도 그는 홀로 역사에서 고독과 외로움을 질근질근 씹어 삼킨다. 늘 그렇듯 그의 삶은 짙은 안갯속이다. 그의 영혼은 간이역의 안개 섬에 갇힌 채, 물기에 젖은 채 방황한다.   


홀로 있어도 행복한 그는 늘 꿈을 꾸며 언제 올지 모를 기차를 기다린다. 남은 계절이 얼마 남지 않다는 사실을 사내는 잘 안다. 그 때문에 그는 더욱 애틋하게 안개섬의 고독을 사랑한다. 그는 안갯속에서 끝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열차가, 그에게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리라는 헛헛한 희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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