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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Aug 16. 2024

읽히지 않는 것이 나의 승리다.


"나는 읽히지 않는다. 나는 읽히지 않을 것이다. 읽히지 않는 것이 나의 승리다.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느니,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책을 쓰고 싶다. 아무나 뜯어먹을 수 있는 정신의 고깃덩어리로 사느니,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돌멩이로 죽고 싶다."


위대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한 말이다. 그의 글은 철학적 깊이와 문학적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스타일을 자랑한다. 그는 철학적 주제를 논리적으로만 서술하지 않고, 시적이고 문학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그의 글은 강렬한 이미지, 은유, 그리고 독창적인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그의 글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반면, 그의 글은 종종 모호하고 난해한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글이 각기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의 철학적 개념은 어려워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때때로 보이는 그의 과격한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식이 얕은 내게 니체의 글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그의 책을 읽다가 몇 줄 나가지 못해 덮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니체의 글은 어렵긴 하지만, 읽히지 않겠다는 그의 바람과 달리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 그의 글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영혼의 자양분이 되었다. 본인은 원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정신의 고단백질 영양소가 되고 있다. 그의 글에 담긴 깊은 울림 때문일 것이다. 과일이 농익어 스스로 향기를 품어 내듯, 니체의 글에서는 농익은 지혜가 뿜어져 나온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읽히고 싶어 몸부림친 내 글은 읽히지 않는다.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지만, 정작 읽는 이는 없다. 내 글에는 깊이가 없고, 영혼을 울릴 자양분이 없다. 사람들의 구미를 확 당기는 그런 맛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감히 니체의 문장을 빗대어 내 재주 없음을 한탄하다니 불경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애초 없는 재주를 어디서 끌어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뭐 어쩌겠나?  


"저런 애들 보면 참 답이 없어. 아 이 바닥에 있다 보면 저런 애들 많이 보거든, 미련과 끈기를 헷갈려서 버티는 게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애들. 어중간한 재능은 이 바닥에서 재난인데 말이지."


아이돌 가수의 성공 스토리를 다룬 어느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다. 미련과 끈기를 헷갈리고, 그저 무작정 버티는 것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다. 어중간한 재능은 어느 바닥에서든 재난이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도,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고통스럽다. 억지로 쥐어짠다고 될 일은 아니다.


나는 자기만족에 기대기로 했다. 읽히지 않고 흔적 없이 사라져도 좋다. 글을 쓰는 동안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안하다. 거기가 내 재주의 끝이다.


금요일 새벽 4시 47분이다. 부지런한 이에게는 평범한 시간이지만, 내게는 꽤 이른 시간이다. 재주가 모자라면, 시간으로 때워야 하지 않을까? 너무 자조적인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인천에서 동탄으로 이사 온 후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오전에 수업이 있거나 일이 있는 날은 차가 밀리지 않는 새벽 시간에 출발한다. 한여름이라도 밖은 아직 짙은 어둠이다. 많은 사람이 새벽을 깨우며 성실하게 산다. 스스로를 위안하며 사는 그들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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