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소리가 멀어졌다.
"째깍째깍"
방안 벽시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깊은 밤을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도, 풀숲이 요란한 풀벌레의 합창도 들리지 않았다. 깊은 밤이 내는 이런 소리가 내겐 들리지 않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나는 점점 세상과 단절된 고독 속에 갇혔다.
밝은 대낮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대화가 그나마 명료하게 들렸다. 하지만 귓속말과 낮은 소리는 여전히 내게 멀었다.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나를 불렀지만, 그 소리는 허공에 스며들어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 시작은 중이염이었다. 120년을 넘게 앓았던 만성 중이염은 결국 양쪽 고막에 구멍을 냈다. 의사들은 그것을 "고막 천공"이라고 불렀다. '천공'이라? 낯선 병명에 당황했다. 내 귓속의 얇은 막이 염증으로 녹아내렸다는 진단이다. 내 고막이 녹아 생긴 빈 곳이 얼마나 내 삶을 흔들어 놓았는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소리는 고막에서 진동으로 바뀌어 중이와 내이를 거쳐 청신경에 도달한다. 하지만 고막이 없어지면, 소리의 파동은 진동을 만들지 못하고 흩어진다. 큰 소리는 어찌어찌 빈 고막을 지나 청신경을 자극한다. 하지만, 낮은 소리는 직접 청신경에 와닿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렇게 허공에 흩어진 소리는 내게 들리지 않았다.
"수술로 완치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중학교 시절, 처음 방문했던 종합병원에서 들은 말이다. 얼음장 같은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목소리도 차가웠다. 그날,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는 한겨울의 칼바람처럼 내 마음을 후벼 팠다. "아 이걸 완치할 수 없다니?" 의학의 도움을 받기 힘들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였다.
"듣고 안 듣고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염증이 뇌로 갔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또 웬 날벼락인가? 고등학교 입학 후 찾은 병원의 후덕해 보이는 중년 의사는 한술 더 떴다. 만성중이염이 그렇게 심각한 병이라는 말인가? 중학생이지만 아직 덜 자란 나로서는 요령부득의 말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환자들이 미어터지는 병원이라 미주알고주알 설명을 들을 형편이 못 되었다.
만성중이염의 고통
어머니와 나는 절망했다. 도대체 이 일을 어쩐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당장에 무슨 일이 나는 건 아니라고 위안했다. 홀로 나를 키우던 어머니는 늘 바빴다. 그럼에도,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온갖 민간요법을 시도하셨다. 용하다는 약재를 구해 귀에 넣고, 나으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밤을 지새웠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것이 무모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그 어떤 의학적 치료보다 뜨거웠다는 사실만은 존중한다.
만성중이염은 귀와 뇌가 해부학적으로 가까워 염증이 뇌로 퍼질 경우 뇌수막염, 뇌농양, 정맥굴혈전증과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고막 천공이 있는 경우 염증이 더 쉽게 확산되며, 중이와 연결된 유양돌기 감염이 뇌로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 결국 수술을 통해 만성중이염을 제거해야 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사실을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되었다.
충격적인 진단도 시간이 흐려져 차츰 무뎌졌다. 시나브로 세월은 흐르고, 청력은 더 나빠졌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은 척해야 하는 상황은 점점 더 많아졌다. 대화 속에서 이해하지 못한 말이 쌓여가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어리석게도, 그 시절의 나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자존심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고, 자존감은 끝없이 무너져 내렸다.
귀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농도 짙은 노란색의 염증이 악취를 풍기며 귀 밖으로 새어 나왔다. 솜으로 닦아내는 일이 일과가 되었고, 그 냄새는 내 자존심을 짓밟았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손수건을 쥐고 귀를 가리는 일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내 청춘은 외로움과 침묵 속에서 더 깊어졌다.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이 되었다.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가고 있을 때이다. 그 사이 의료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운 좋게도 국내 최고의 전문의를 소개받았다. '신의 손'이라 불리는 그분의 집도 하에 수술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었다. 중이염 수술과 인공 고막 삽입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너무나 감사할 일이었다.
청력은 한결 좋아졌지만, 안타깝게도 보통 사람처럼 온전히 들을 수는 없다. 지금도 낮은 소리에 대한 콤플렉스는 남아 있다. 지금도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 나뭇잎이 서로를 스치는 소리를 놓칠 때가 많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다. 그 후로 더 이상 염증이 나를 괴롭히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듣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돌발성 난청
지인이 '돌발성 난청'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청력 손실로, 주로 한쪽 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이 병의 특징이다. 아무런 경고 없이 몇 시간에서 며칠 사이에 급격히 청력이 나빠졌다. 지금은 한쪽 귀가 들리지 않고, 이명과 두통이 함께 찾아왔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놀라지 않고, 또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안타깝게도 돌발성 난청의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바이러스 감염, 내이(속귀)의 혈류 장애, 자가면역 반응, 극심한 스트레스 등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할 뿐이다. 처음에는 귀가 갑자기 먹먹해지는 느낌이나 이명(귀에서 울리는 소리)이 나타난다. 또 현기증이나 어지럼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주변의 말소리가 갑자기 잘 들리지 않거나 전혀 들리지 않게 되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초래될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 의학이 이 문제를 그저 두고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적절한 치료와 관리는 증상을 치료하고 원인을 제거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당혹감과 불안감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좋다. 원인이 특정되지 않는 병은 대개 스트레스에서 오는 것이 많다고 한다.
나는 수술 후 청력을 회복했다. 물론, 밤의 낮은 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완전히 다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첫눈 밟는 발자국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잊고 지냈던 일상의 소리가 내 삶에 다시 찾아왔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은 불안하고 당혹스러운 시간이겠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내 경험이 난청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상황과 온전히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글이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의 불안과 당혹감은 곧 지나갈 것이다. 충분한 휴식과 치료, 그리고 스스로를 돌보는 위안의 시간은 난청을 극복하는 힘이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잠시 들리지 않았던 소리의 아름다움이 삶을 더 신나게 할 것이다.
적절한 치료와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은 난청을 극복하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은 잃어버렸던 소리의 아름다움이 삶을 얼마나 찬란하게 만들어주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이 이 길을 걸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주위의 위로와 격려, 그리고 당신의 용기와 인내는 결국 더 나은 내일을 가져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