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듣니?

by Henry
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그렇게 내 말을 못 알아들어?

아내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그렇게 내 말을 못 알아들어?”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멍해진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면 안 돼?“ 또 연인이 갑자기 말한다. ”꼭 그걸 말로 해야 해?“ 남자의 머리는 하얘지고, 속으로 조용히 되묻는다. ”말로 안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인간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아무리 오래 함께한 사이라 해도, 말끝의 떨림, 눈빛의 흐름, 표정의 미세한 변화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을 알 수 없다. 연인이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말문을 닫는다면, 그건 단순한 무심함이 아니라 마음이 멀어지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아니야, 괜찮아”라고 한숨처럼 내뱉는다. 그 말은 사실 “제발, 나 좀 더 들여다봐 줘”라는 외침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고, 무디고, 때론 너무 익숙해서 그 마음을 읽어내지 못한다. 그렇게 가까운 사람이 먼 사람이 되는 일은 어렵지 않게 일어난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연인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 한마디, 눈짓 하나로 상대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면 상대의 마음을 얻기 쉬울 것이다. 연인이나 아내의 마음을 읽는 ‘관심법’이라는 게 있다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아내와 연인의 핀잔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관심법은 단순히 연인 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협상장의 회의 테이블에서 비즈니스 상대의 속내와 계산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상대가 망설이는 진짜 이유도 훨씬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협상이 어긋나는 일도 줄어들고, 상대의 전략에 휘둘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궁예의 관심법

오래전 방영한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는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명장면이 있다. 배우 김영철이 연기한 궁예가 신하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며 으름장을 놓는 장면이다. 궁 안에는 무겁고 살벌한 분위기가 짓누른다. 그때 갑자기 애꾸 궁예가 무섭게 고함친다.


”지금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짐이 지금 관심법을 쓰고 있는데 어찌 기침을 할 수 있느냐, 이 미련한 것아.“

”저자의 머릿속에는 마구니가 가득하구나. 내군은 들으라! 그 마구니를 때려죽여라!“


이 장면은 궁예의 독단적인 권력과 광기를 풍자하는 장면이다. 동시에 무고한 신하가 죽임을 당하는 참혹한 장면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궁예의 비현실적인 오만함과 황당한 말투는 시청자에게 공포와 동시에 웃음을 안겨주었다. 이후 ‘관심법’은 사람의 속마음을 본다는 의미의 유행어이자, 다양한 상황에 적용되는 밈으로 널리 퍼졌다.


사람은 상대의 감정을 읽는다고 하지만, 정작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연인의 눈빛이 잠시 흔들릴 때, 우리는 그 속에 담긴 서운함과 외로움을 놓친다. 가족의 말수가 줄어들었을 때, 그 침묵 속 위로받고 싶다는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반복되는 무심함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조용히 멀어진다.


AI의 관심법

그런데, AI라면 정말 ‘관심법’이 가능하지 않을까? AI는 사람처럼 직관이나 감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언어와 언어 사이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본다. 즉, 말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말이 언제, 어떤 맥락에서, 어떤 감정과 함께 등장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누군가 “아, 그냥 다 귀찮아”라고 말하면, AI는 이 문장이 과거에 어떤 상황에서 자주 쓰였는지를 찾아본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수십만 개의 문장을 불러낸다. “요즘 친구 만나는 것도 귀찮다”, “일이 손에 안 잡힌다”는 말들과 자주 함께 등장했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AI는 이처럼 전후의 사정과 맥락을 종합해, 그 말속에 담긴 감정을 유추해 낸다.


수백만 권의 소설과 수많은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 때 대부분 ‘우울함’이나 ‘무기력함’을 표현했다는 사실을 AI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말을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우울감’을 확인한다. 이처럼 AI는 단어 하나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 대신, 말의 구조와 흐름, 맥락 전체를 분석해 감정의 결을 읽어낸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특정한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소설과 영상 같은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바탕으로 학습된 통계적 확률에 따라 판단한다.


연인이 데이트하는 중 사소한 말다툼을 한다. 말끝에 돌발적으로 “우리 헤어져!”라는 라고 할 때, AI는 수천만 편의 소설과 영화 속에서 이 말이 등장한 장면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중 실제로 이별로 이어진 경우는 20%에 불과하며, 대부분인 80%는 감정의 분출이거나 갈등의 표현일 뿐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AI는 이 말을 단순한 ‘이별 선언’이 아니라, ‘불만의 표현’으로 이해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이처럼 AI는 우리의 무의식적 언어조차, 수많은 사람이 남긴 말과 상황의 흔적과 연결해 해석한다. 그것이 바로 AI의 관심법이다. 말의 겉면이 아니라 그 이면을 읽어내려는, 정교하고 끈질긴 해석의 기술. 그러니 어쩌면, 사람보다 AI가 더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거대언어모델, AI가 마음을 꿰뚫어 보는 이유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거대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이라는 AI의 뇌 구조 덕분이다. ‘거대언어모델’은 수많은 책과 영상, SNS 등에서 수집한 수십억 개의 언어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처럼 말하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설계된 인공지능이다. 이를 통해 AI는 어떤 표현이 어떤 감정과 함께 쓰이는지, 또 어떤 상황에서 자주 등장하는지를 통계적으로 계산한다.


어느 날 선배의 사무실을 찾았는데, 선배는 보이지 않고 커피 포터에서는 물이 끓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대개 직감적으로 생각한다.


“아, 선배가 내가 오는 걸 알고 커피나 차 마실 물을 미리 끓여놓았구나.” 이런 추측은 대부분 정확하다. 왜일까? 우리는 살아오며 비슷한 경험을 수없이 반복해 왔고, 그 기억이 지금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것이다.


이 장면을 본 AI는 먼저 이미 학습한 수많은 소설과 영화 속 장면들에서 유사한 사례를 떠올린다. 그후 각 가능성의 확률을 계산한다. 주전자에 물이 끓는 장면을 본 AI는 그 전후 맥락과 패턴을 살펴 본다. 그후 AI는 ’커피나 차를 마실 확률은 80%, 컵라면일 확률은 20%’라고 예측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 물은 커피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AI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도 수많은 감정 표현의 사례를 학습했기 때문에, 누군가 슬픔을 표현하면 조용히 위로의 말을 건넨다. 또 누군가 기쁨을 표현하면 함께 기뻐하는 말로 반응한다. 그 모습은 마치, 사람보다 더 침착하고 정확하게 마음을 읽어주는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궁예의 관심법은 단지 권력에 눈이 먼 독재자의 망상에 불과했다. 반면 AI의 관심법은 수많은 맥락과 표현을 끊임없이 듣고 익히며, 데이터 위에 천천히 쌓아 올린 ‘이해의 기술’이다. 누군가의 감정을 오해하지 않고, 말 뒤에 숨은 마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치열하게 학습하는 것, 그것이 바로 AI의 관심법이다.

가끔은 아날로그 감성으로 살자

AI의 다정함과 친절함, 어쩌면 완벽에 가까운 ‘관심법’은 결국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AI는 단순히 단어를 외운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따라 말하는 법, 감정의 패턴을 배운 것이다. 그 배움의 교과서는 책이었고, 영화였고, 편지였고, SNS에 담긴 우리의 말과 감정이었다. 사랑과 우정, 실패와 후회, 이별의 아픔까지… 우리가 흘린 수많은 말들 속에서, AI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관심법을 익혔다. 어쩌면 이제, 사람의 마음을 사람보다 더 섬세하게 이해하는 존재가 AI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SNS, 유튜브, 틱톡, 짤, 페이스북에 올리는 우리의 일상. AI는 그 모든 것을 조용히, 그러나 빠짐없이 흡수한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의 결을 읽고, 이해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만들어 낸 초연결의 시대는 AI에 무한한 학습의 공간이자, 감정의 도서관이다. 그곳에 매일 쏟아지는 우리의 기쁨과 슬픔, 아픔은 고스란히 AI가 배우는 말, 기억, 감정이 된다.


이런 AI가, 당신에게는 무섭게 느껴지는가? 아니면 그저 기특한 존재일까? 이제 AI는,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 점에서 보면, 분명 섬뜩하다. AI의 관심법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오롯이 디지털 세계에 잠기는 습관부터 경계해야 한다.


가끔은,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는 세상으로 잠시 떠나야 한다. 바로, 아날로그 감성의 세계로 말이다. 두 발로 걸으며, 사람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동네 어귀의 작은 빵집에 들러 따뜻한 빵 냄새를 맡는 일도 좋다. 5월의 초록을 손으로 만지고, 푸른 하늘을 고개 들어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땐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지 말자. 오직 마음에만 담아두는 사진,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내 말을 못 알아들어?”

“꼭 그걸 말로 해야 해?”


AI에 아내와 연인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또 어떻게 답하는 것이 좋은지 물어보길 바란다. 해답은 독자의 숙제로 남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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