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돌도 안 된 아기인데...
“아직 돌도 안 된 아기에게 책을 읽어줘야 하나?”
“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읽어주는 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영유아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봤을 궁금증이다. 어떤 전문가는 너무 빠른 교육이 아이의 학습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경고하고, 또 다른 전문가는 언어 습득의 황금기를 놓치지 말라고 조언한다. 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린다. 서로 다른 주장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흔들리고 당황스럽다.
‘책 읽어주기’와 ‘조기 교육’을 같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조기 교육은 명확한 학습 목표 아래 시행되지만, 책 읽어주기는 감정적 교감을 나누는 부모와 아이 간의 대화다. 이 구분을 분명히 한 뒤,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렇다면, 갓 태어난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품게 되는 이 질문, 막상 전문가에게 묻기엔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 똑똑하다고 소문난 생성형 AI들에게 대신 물어보았다. ChatGPT, Claude AI, 그리고 Perplexity.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 이 세 AI는 과연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AI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실제로 AI는 학습 데이터가 부족한 주제에선, 아주 드물지만 전혀 엉뚱한 대답을 내놓기도 한다. 이를 ‘AI 환각(hallucination)’ 현상이라 부르는데, 마치 사람이 거짓말을 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헛것을 보고 엉뚱한 말을 내뱉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환각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각 AI의 주장에 대해 먼저 이론적 근거가 있는지를 확인했고, 그 내용을 서로 다른 AI와 교차 검토했다. 그 결과, 이론적 뒷받침이 있더라도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을 경우, 이 부분을 인용에서 제외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조언만을 선별하고자 했다.
육아 방법을 알아보는 일은 그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랑스러운 아기의 평생이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AI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것만 맹신해서는 안 된다. 부모 스스로 육아 전문 서적을 읽고, 꾸준히 공부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다이아몬드 원석이라도 보는 눈이 없으면 그저 돌덩이에 불과하다. 반대로 지식이 부족하면, 아무 쓸모없는 것을 귀한 보물이라 착각할 수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은 괜히 생겨난 말이 아니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부모 스스로 배우고 발품을 팔아야, AI의 조언도 비로소 진짜 힘을 발휘한다.
그건 그렇고,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세 AI가 들려준 대답은 놀랍게도 같았다. 그것도 모두 단호하게 주장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
이들은 저마다의 시각과 논거로, ‘0세부터 책을 읽어줘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특히 공통적으로 제시한 세 가지 핵심 이론이 있었다. 바로 ‘두뇌 발달 이론’, ‘언어습득장치 이론’, 그리고 ‘애착 형성 이론’이다.
0~3세, 시냅스가 폭발하는 두뇌 발달
AI는 모두 생후 첫 3년 동안의 책 읽기가 두뇌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뇌과학의 ‘두뇌 발달 이론’이다. 이 시기는 뇌 속 신경회로(시냅스)가 가장 빠르게 형성되는 시기이다. 이때 제공되는 언어 자극이 아이의 평생 언어 능력과 사고력의 기초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아기의 뇌에서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되며, 마치 복잡한 전선처럼 정교한 신경망을 이룬다. 초당 수백만 개의 시냅스가 생성되는 이 시기는, 두뇌 회로의 밀도를 결정짓는 결정적 시점이다. 이 연결망의 촘촘함은 후천적인 지능지수(IQ)의 기반이 될 뿐 아니라, 아이의 평생 학습 능력과 사고력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두뇌 신경세포의 줄기와 가지는 마치 나무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책을 읽고, 소리를 듣고, 엄마 아빠와 눈을 맞추며, 사물을 만지고 느끼는 그 순간마다, 뇌 속의 연결망은 마치 나뭇잎이 무성해지듯 점점 풍성해진다. 특히 생후 수개월 안에 들려주는 책 속 문장 하나하나가 아이의 뇌를 설계하고, 감정과 언어의 회로를 짜는 중요한 자극이 된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는 건 결코 ‘공부 시간’이 아니다. 단어를 외우거나 지식을 주입하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웃고 반응하며 즐기는 놀이의 시간이다. 감정을 나누고 교감하는 그 순간, 아기의 시냅스는 더욱 활발해지고 두뇌는 살아 움직인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아기에게 부담스럽거나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언어습득장치’의 전원을 켜라
많은 언어발달 전문가와 아동 심리학자가 0세 책 읽어주기를 권장할 때, 세계적인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언어습득장치 이론’을 근거로 들고 있다. 책 읽어주기는 아기가 말의 리듬과 억양, 어휘, 감정 표현을 익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언어의 맥락 전체를 전달하는 고품질 자극이 된다. 즉, 책을 읽어주는 행위는 아기의 ‘언어습득장치(LAD, Language Acquisition Device)’에 스위치를 켜고, 연료를 공급하는 일인 셈이다.
“이건 공이야. 동그랗지?”
“엄마랑 책 읽자~ 여우가 나타났어요~”
부모가 책을 읽고 말을 건네는 순간, 아기의 뇌 속 ‘언어습득장치’가 깨어난다. 그러면 아기의 뇌는 들려온 소리를 스스로 구조화하고, 그 안의 언어 패턴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 아기의 뇌는 언어의 규칙을 활발히 흡수하며 지적 성장의 첫 단계를 밟게 된다.
노엄 촘스키는 또 ‘빈약한 자극(Poverty of the Stimulus)’ 이론을 통해 아기의 책 읽어주기를 강조한다. 영유아가 일상에서 듣는 말은 대부분 “밥 먹자”, “자자”, “하지 마” 같이 짧고 단순한 문장이다. 이러한 짧은 문장의 빈약한 자극만으로는, 아기가 복잡한 문법 구조나 다양한 어휘를 자연스럽게 익히기는 어렵다.
언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아기의 뇌가 더 풍부하고 정교한 언어 환경을 경험해야 한다. 그러나 일상 대화만으로는 다양한 문장 구조와 표현을 접하기에 자극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럴 때 책 읽어주기는 ‘빈약한 자극’을 보완해 주면서 아기에게 언어의 세계를 여는 창이 된다.
“깊은 산속 작은 오두막에, 회색 늑대 한 마리가 살고 있었어요.”
이처럼 풍성한 문장을 반복해 들은 아기의 뇌는,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언어의 틀을 차곡차곡 쌓아가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책 읽기는 빠를수록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것이 놀이처럼 즐겁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이다.
애착을 형성하는 책 읽어주기
언어와 뇌 발달이 ‘인지’의 영역이라면, 애착은 ‘정서’의 영역이다. 심리학의 ‘애착 형성 이론’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부모와 아이가 감정적으로 깊이 연결되는 순간이라고 설명한다. 엄마 아빠의 품, 따뜻한 목소리, 눈빛은 아이에게 “나는 사랑받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각인시킨다.
‘애착 형성 이론’을 주창한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생애 초기, 특히 생후 첫 1년 동안 형성되는 ‘안정 애착’이 아이의 평생 정서적 기반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 시기에 안정적인 애착이 단단히 형성되면, 아이는 낯선 환경에서도 불안을 잘 조절하고,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며, 자기감정을 통제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
놀랍게도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바로, 애착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책 읽어주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들려주는 일이 아니다. 부모의 따뜻한 품에 아이를 안고, 목소리를 들려주고, 눈을 마주치고, 표정을 느낀다. 그리고 아이가 몸을 기대 오는 그 자체가, 사랑의 경험이다.
“이건 강아지야. 귀엽지? 강아지가 멍멍 짖네~”
아기의 눈에는 엄마의 눈빛과 표정, 말의 리듬이 깊이 스며든다. 그 순간, 아기 마음속에는 “나는 보호받고 있어. 사랑받고 있어.”라는 정서적 신호가 새겨진다. 이런 정서적 안정감은 훗날 친구와의 관계, 감정 표현, 스트레스 조절 능력을 키우는 힘이 된다.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주는 그 순간, 아기는 엄마 아빠의 따뜻한 목소리와 눈빛, 품을 고스란히 느낀다. 그 모든 감각은 아이 마음속에 사랑과 신뢰의 씨앗을 심어준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정말 책을 읽어줘야 할까?”
“태어나자마자 읽어줘도 좋습니다.”
‘황혼 육아’를 맡게 되었다면, 모자란 정보를 하나하나 채워가면 된다. 유튜브도 좋고, 거기에 AI까지 제대로 활용한다면, 육아는 지금보다 조금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