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우편함

by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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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신문은 어디로 갔을까

화요일 아침 6시, 우리 아파트 우편함 앞에 섰다. 28개의 우편함은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소식도, 종이도, 기다림도 없다. 그중 신문이 들어 있는 칸은 단 하나, 바로 우리 집이다. 물론 이걸 자랑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풍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신문을 거의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떤 이는 직장에서 신문을 읽을 수도 있고, 디지털로 구독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장면만으로 '나만 활자 신문을 읽는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활자 신문의 종말’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을 뿐이다.


쉬운 즐거움의 시대

주위를 둘러보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난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쿠팡플레이,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영상 플랫폼들. 이들은 온통 재미로 무장한 드라마와 영화, 뮤직비디오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유튜브는 또 어떤가. 긴 드라마나 영화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을 위해 짧은 영상이 넘쳐난다. 심지어 ‘숏츠’나 ‘릴스’ 같은 콘텐츠는 30초도 채 되지 않는 영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든다. 이것저것 골라 보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게다가 AI는 아예 검색의 판도를 바꾼다. 궁금한 게 있으면 척척 답한다. 굳이 외우거나 공부하지 않아도, AI가 알아서 내용을 요약해 주고 정리해 준다. 우리는 그대로 베끼거나, 앵무새처럼 되뇌기만 해도 되는 세상이다.


모두 고개 숙여 스마트폰을

디지털 기술은 더 짧게, 더 빠르게, 더 재미있게 진화한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세상에 내놓고 나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물론 그 뒤에는 촘촘하게 깔린 네트워크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을 본다. 지하철 안을 돌아보자. 출퇴근 시간처럼 사람이 붐비는 때를 빼고는 대부분 화면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엘리베이터 안은 더 민망하다. 하나같이 고개를 들지 않고 스마트폰만 응시한다. 마치 그 작은 화면이 세상 전부라도 되는 듯하다.


손바닥만 들여다보면 온갖 재미가 쏟아지는 세상에, 누가 굳이 따분하게 책을 읽으려 할까? 인쇄된 활자가 뒷전으로 밀려난 지는 이미 오래다. 간편하게 온갖 재미를 통째로 얻을 수 있는데, 제법 많은 시간을 들여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더구나 매달 구독료까지 내야 하는 신문은 이제 많은 사람에게 애물단지일 뿐이다.


친절하고 달달한 알고리즘의 유혹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종이 신문이나 책을 펼치기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속 뉴스에 더 익숙해졌다. 빠르고 요약된 정보, 실시간 알림, 그리고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맞춤형 기사. 우리는 그 편리함에 길들어 버렸다.

AI 알고리즘은 내 취향을 알고, 내가 좋아할 만한 기사만 골라서 보여준다.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주제도 고르지 마. 생각도 하지 마. 가만히 앉아만 있어. 내가 다 떠먹여 줄게.”


그 유혹은 점점 교묘해지고, 친절하고 달달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점점 생각하기를 싫어하게 되고, 자극적인 반응에만 반응하도록 길들여진다. 재미있는 콘텐츠가 알아서 쏟아지는데, 굳이 머리를 쓸 이유가 있을까? 사람들의 머리는 점점 게을러지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게 된다. 결국 남는 건 욕망과 본능뿐. 세상은 점차 그렇게 변해간다.


디지털 세상의 아날로그 숨결

그렇다고 내가 활자 매체의 신봉자이거나, 신문 읽는 걸 자랑하려는 건 아니다. 사실 요즘은 "신문에 볼 게 없다"는 볼멘소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신문 구독을 끊었을 것이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정보는 다 찾을 수 있는데, 뭐 하러 종이 조각을 들고 씨름하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가끔은 꽤 좋은 글을 만난다. 촌철살인의 문장이 번뜩이는 순간엔 가슴이 뛴다. 때로는 감상적인 명문장을 만나 뿌듯하게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그런 글을 만날 수 있다면, 한 달 구독료는 아깝지 않다. 스타벅스 커피 서너 잔만 참으면 되는 돈이다. 그 정도면 충분한 보상이 아닐까?


무엇보다 신문을 펼치는 순간, 알고리즘이 아닌 내 의지로 정보를 선택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상치 못한 기사와 마주치고, 관심 없던 분야의 글에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문화면이나 예술면은 천천히 음미하는 즐거움을 준다. 스마트폰 화면을 넘길 때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깊이 있게 몰입하게 되는 그 시간이 좋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이 아닐까. 빠름에 밀려 사라져 가는 느림의 가치, 편리함에 가려진 사유의 즐거움을 말이다. 때로는 인쇄 활자를 읽어 보자. 그 속에는 많은 필자가 나름 정성 기울여 쓴 글이 많다. 그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가끔은 활자가 인쇄된 종이에 눈길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차를 두고 걸어가도 좋고, 스마트폰 없이 외출해도 괜찮다. 벤치에 앉아 신문을 펼쳐보는 그 느린 시간이, 오히려 마음을 청량하게 해 줄 것이다. 0과 1의 속도로 나뉘는 디지털 세상은 분명 편리하다. 하지만, 결코 나눌 수 없는 감각들—바람결, 햇살의 농도, 종이의 촉감 같은 것들—은 아날로그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빈 손으로 아날로그의 거리로 나서보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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