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집꾼의 눈, 세상을 읽어내는 초능력
얼마 전, 강남 청담동에서 가족과 점심을 먹었다. 커피 마실 곳을 찾는데 주차가 문제다. 마침 가까운 곳에 해외 명품 브랜드에서 직영하는 카페가 있다. 따로 주차 걱정 없이 걸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메뉴판을 펼치는 순간,
"헉, 아메리카노 한 잔에 19,000원?"
그나마 커피가 가장 싸다. 나머지 음료는 이보다 더 비싸고, 심지어 에비앙 생수 한 병이 10,000원이다. 이미 자리를 잡았으니 나갈 수도 없고 난감했다. '이곳에서 이 정도 가격을 부담스러워하는 건 좀 그렇지'라고 애써 위안했다.
입구 쪽 자리에 앉아 있으니 드나드는 손님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습관적으로 시선을 오래 두지 않는다. 낯선 이와 눈이 마주치는 것도 어색해서 피하는 편이다.
그런데 딸아이는 전혀 달랐다.
"저 아이는 윗옷이 어느 브랜드고 가방은 ○○야."
한 번의 스침, 그 찰나의 순간에 마치 카메라 셔터를 누르듯 장면이 머릿속에 저장된다고 한다. 들어오는 이들의 패션과 액세서리를, 그것도 대부분 유명 브랜드라는 사실까지 즉석에서 파악해 낸다.
여성들은 정말 초능력이라도 지닌 듯한 눈을 가졌다. 단 한 번의 스침에도 상대의 옷차림과 분위기를 세밀하게 읽어낸다. 나는 종종 그녀들의 이런 예리한 관찰력에 혀를 내두른다.
이 능력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원시림의 두 가지 생존법: 침묵하는 사냥꾼, 소통하는 채집꾼
답은 아주 오래전, 인류가 아직 동굴에서 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이는 진화심리학이 제시하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보이는 행동 패턴을 설명하는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남성들이 매머드를 쫓으며 침묵의 미덕을 배울 때, 여성들은 전혀 다른 생존 전략을 터득하고 있었다. 숲속 깊이 들어가 열매를 따고, 약초를 캐고, 견과류를 모으는 일. 언뜻 사냥보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못지않게 정교하고 복잡한 기술이 필요했다.
채집의 첫걸음은 '소리 없는 관찰'이었다. 어떤 식물이 독을 품고 있는지, 어느 나무 밑에서 버섯이 자라는지, 열매가 가장 달콤하게 익는 순간을 어떻게 알아차리는지. 한 번의 실수가 온 가족의 목숨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미세한 차이까지 놓치지 않는 예리한 눈을 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관찰만으로는 부족했다. 발견한 정보는 곧바로 공유되어야 했다.
"저 빨간 열매는 절대 먹으면 안 돼. 작년에 옆 부족 아이가 그걸 먹고 숨졌어."
생존의 지혜는 혼자만 간직할 수 없는 보물이었다. 잘못된 판단 하나가 개인의 목숨뿐 아니라 부족 전체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관찰하고, 기억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동시에 키웠다.
육아는 더욱 복잡한 협력을 요구했다.
"내 아이가 열이 나는데 어떻게 하지?"
"젖이 모자라는데 누가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이런 절박한 호소를 혼자 품어서는 안 됐다. 서로의 아이를 함께 돌보고, 서로의 생존을 함께 지켜내는 것. 그 치열한 협력 속에서 여성들의 소통 DNA가 형성되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는 주변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자신과 자녀의 안전을 지키는 생명줄이었다.
30만 년 전 유전자, 21세기 사무실에서 깨어나다
채집꾼과 사냥꾼의 유전자는 21세기 사무실과 카페에서도 여전히 맥박을 뛴다.
월요일 오후, 여직원 A가 동료에게 조심스럽게 털어놓는다.
"회사에서 상사가 나에게만 유독 까다롭게 구는 것 같아."
그 순간 주변 여성들의 반응이 물결처럼 번진다. "정말 힘들겠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그 상사 성격이 원래 그런가 봐." 마치 오래전 모닥불 주위에서 하루의 채집 경험을 나누던 조상들처럼, 그들은 고민을 공유하고 감정을 나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말하는 순간, 마치 무거운 짐을 여러 사람이 함께 드는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것이 여성들만의 독특한 치유 방식이다.
같은 이야기를 남자 동료에게 했다면 어떨까? "그럼 이렇게 해보는 게 어때?", "직접 상사한테 얘기해 봐", "인사팀에 상의해 봐." 마치 사냥감을 포획하듯 문제를 분석하고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아 제시한다. 목표는 명확하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옳다거나 그르다고 할 수 없다. 여성의 공감은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남성의 해결책은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저 수십만 년간 서로 다른 생존 전략을 발전시켜 온 결과가, 오늘날까지 우리의 대화 습관으로 흘러내린 것일 뿐이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들어?"
하지만 이 아름다운 차이가 때로는 예상치 못한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저녁 7시, 아내가 현관문을 열며 들어선다. 평소보다 어깨가 처져 있고, 인사도 건성으로 한다. 가방을 소파에 털썩 내려놓고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한다.
남편은 TV를 보다가 뭔가 싸늘한 기운을 느끼고 그제야 묻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그래? 그럼 됐네."
남편은 다시 TV로 시선을 돌린다. 오랜 시간 사냥에 집중하며 명확한 신호에만 반응하도록 진화했을 뇌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분명한 답변에 안도한다.
하지만 아내의 뇌는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긴 세월 미묘한 신호들을 읽어내며 공동체의 감정 지도를 그려온 여성의 직감이 간절히 외친다. '내가 힘든 걸 알아채고 물어봐 줘. 내가 괜찮지 않다는 걸 느껴봐 줘.'
"당신은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들어?"
아마 기혼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탄식. 그때마다 남자들은 속으로 중얼거린다. '말로 하지 않으면 도대체 내가 어떻게 알아?' 하지만 그 순간 입을 열면 더 큰 태풍이 몰아친다는 것을 뼈저리게 안다.
"당신은 그게 문제야!"
사냥꾼의 명확성과 채집꾼의 직감. 둘 다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능력들이 현대의 거실에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가 되어버렸다.
역전의 시대: 21세기는 여성의 소통이 더 유리하다
여성들에게는 또 다른 독특한 능력이 있다. 문제 그 자체를 해결하지 않고도 문제가 주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재주다. 누군가가 자신의 상황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심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원시 시대 공동육아 환경에서 길러진 능력일 것이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다른 여성들과 육아의 고단함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며 심리적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대화를 통해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위안을 얻었다.
현대에도 여성들은 문제 해결보다는 감정 공유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를 선호한다.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 SNS에 일상을 공유하는 것, 가족이나 연인에게 하루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늘어놓는 것. 모두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현대 사회는 여성의 소통 방식이 더 유리한 무대로 변하고 있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개인 작업에서 팀워크로, 위계적 조직에서 수평적 조직으로 급변하면서 소통 능력의 가치가 급상승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현대 기업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조직 문화의 핵심으로 삼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전통적인 남성의 '강하고 침묵하는' 방식보다는 여성의 '소통하고 협력하는' 방식에 더 부합하는 변화다.
두 개의 언어, 하나의 세계
물론 이 모든 설명에는 한계가 있다. 진화심리학은 여전히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고, 개인차는 성별의 차이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소통을 좋아하는 남성도 있고, 침묵을 선호하는 여성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남성의 침묵과 집중력, 여성의 소통과 관찰력 모두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소중한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는 지혜다.
복잡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해야 할 때는 남성적인 집중력과 목적 지향성이 빛을 발한다. 반면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갈등을 조정해야 할 때는 여성적인 소통 능력과 감정적 지지가 더 효과적이다.
오후 2시 지하철 2호선. 조용히 앉아 있는 남성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여성들. 이들의 서로 다른 행동 패턴은 수십만 년에 걸친 진화의 선물이다.
사냥꾼의 침묵도, 채집꾼의 소통도 모두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소중한 언어였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언어 모두를 이해하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들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렸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어떤 언어로 말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