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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시장(市場)이 우리를 슬프게 해도

적자생존의 자본주의적 버전 '너 죽고 나 살자'

정글의 먹이사슬에서 2등과 3등은 1등에게 잡아 먹힌다. 그렇다고 1등이 2등과 3등을 모두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상위 포식자라 해도 먹는 양이 한정되어 있다. 자연의 먹이 피라미드에서 생명은 치열하게 먹이 쟁탈전을 벌인다. 동시에 적절한 공생의 관계를 유지하며 조화로운 자연을 만든다. 상위 포식자가 정도껏 하지 하위 포식자를 아예 몰살하는 경우는 없다.       


시장의 인간은 다른 인간을 사실상 멸종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가. 현대 경제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승자가 독식하면 패자는 가질 게 없는 구조다. 패자는 생존의 벼랑 끝에 선다. 승리하지 못하면 절멸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 자본주의적 경쟁의 결과다.     


그래도 지금은 굶어 죽는 사람은 없지 않으냐?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지 않으냐? 그러니 이만하면 참 좋은 세상이다. 절대적 빈곤을 해결한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산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남들이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과 멸시의 태도가 얼마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드는가.     


과거 공동체 사회는 공동으로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품앗이가 되었든 협동이 되었든 함께하지 않으면 외톨이로는 살 수 없었다. 지금처럼 시장이 발달해 모든 것을 사장에서 살 수도 없었다. 그러니 이웃과 유대를 맺고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당연했다. 큰일이 생기거나 불행한 일이 닥치면 서로 도왔다. 지금보다 덜 외롭고 덜 고독했다.   

  

칼 폴라니는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원시공동체 사회가 인류의 역사에서 어느 시기보다 더 행복한 시기였다고 말한다. 지금도 사막과 밀림지대에 남아 있는 원시부족들은 물질 수준은 매우 열악하지만, 현대인보다 더 적게 일하고도 생존할 수 있다.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는 동물 고기나 과일을 오래 보관할 방법도 없다. 그러니 더 많이 가지려 욕심낼 까닭도 없다. 필요한 양만큼 양식을 구했다. 원시공동체는 더 적은 시간으로도 식량 문제를 해결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로병사 사슬 쪼개기

디지털 기술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만들었다. 세상의 수많은 구매자는 한 명의 승자에게 지갑을 연다. 단 1%의 점수 차이로 이겨도 우승자가 100%에 가까운 상금을 가진다. 아슬아슬하게 패한 2등이나 패자는 하루 일용할 양식을 걱정해야 한다. 승리하지 못 한 사람들은 극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기업은 소비자의 욕구를 족집게처럼 찾아낸다.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1:1 맞춤형 판매가 가능해졌다. 더욱이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단 한 명의 소비자까지 싹쓸이하게 해 준다. 감나무에 남은 여분의 까치밥 하나 남기지 않는 완결성을 보인다. 인간의 이기심이 시장의 곡식 마지막 한 알까지 탈탈 털어먹을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은 소비 시장을 통합하는 대신, 공급 시장을 잘게 쪼갰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상품화했다. 탄생-성장-노화-사망에 이르는 생로병사의 사슬을 마디마디 쪼개 상품으로 만들어 판다. 태아가 착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맞춤형 상품이 쏟아진다. 인공 수정, 태교 상품, 시설 좋은 조산원, 학습지, 두뇌 발달 보조제, 요양병원, 양로원 등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상품 소비 사슬이 완성됐다.     


꼭 필요한 물건인데 시장에서 구할 수 없다면 그것을 가진 사람의 선의를 바라야 한다. 이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어야 이웃을 찾는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시장에서 못 구할 것이 없다. 돈이 있으면 간과 쓸개까지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러니 타인의 호의나 선의를 기대하지도 않고 베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이기적 유전자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해체하고 홀로서기를 강요한다.   


시장 안팎에서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이 많을수록 사람은 관대해진다. 문제는 돈이다. 돈은 대체하거나 대신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금을 현금과 대체할 수 있지만, 돈의 위력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달리 대체할 수단이 없는 독불장군인 돈의 도파민 중독성이 매우 낮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쾌감이 줄지 않는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다. 시장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돈이 된 지 오래다. 이러니 어찌 공동체의 선함과 배려가 유지될 수 있는가.   


행복과 불행을 잘게 쪼개자. 

물질문명이 발달한 현대 사회가 정신 건강 측면에서는 그리 좋은 시기는 아니다. 풍요가 오히려 더 큰 정신적 결핍을 불렀다.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선의와 호의가 사라지면서 정신은 황폐해졌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낀다. 그것이 깊어지고 오래가면 우울함이 찾아온다. 시장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할까? 개인이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를 바꿀 수 없다. 자신이 할 수 해법을 찾아야 한다. 크고 화려한 행복을 찾지 말고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자. 머릿속에서 행복과 편리함을 잘게 쪼개는 건 어떨까? 조금 불편해도 몸을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편리함을 찾자. 그러면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 마음도 누그러질 것이다. 남을 덜 의식하는 것만큼 정신 건강에 도움 된다. 


불행과 불편함도 마음속으로 잘게 쪼개자. 그것들이 아무리 크게 보여도 잘게 쪼개면 크기가 줄어든다. 불행과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뇌 신경회로다. 머릿속에서 고통을 잘게 쪼개면 뇌 신경회로는 거뜬히 감당해낸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픔과 불편함이 별거 아니라고 일러주자. 


세상의 많은 현자는 깨달음을 얻었다. 물질적 풍요에 마음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평온한 마음만 들여다본다. 그들은 행복도, 불행도 조각조각 내 인식한다. 기쁜 일에도 호들갑 떨지 않고 나쁜 일에도 크게 낙담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아주 잘게 쪼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우리를 슬프게 해도 우리는 기쁨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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