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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직장인 후배를 위한 변명

직장 생활 만만치 않다.

“앗!! 이런 늦었다.”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침을 시작한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잰걸음으로 출근을 서두른다. 차를 가져갈까 생각하다 버스를 타기로 한다. 7시가 지났고, 보나 마나 도로는 주창이 될 것이다. 가다 서기를 반복할 걸 생각하니 벌써 피로가 몰려온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지 않고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급히 걸음을 옮긴다.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직장에 도착했다. 간밤의 피로도 채 풀리지 않았지만, 힘찬 하루를 시작하리라 다짐한다. 아침부터 인상을 잔뜩 찌푸린 상사가 보자고 한다. 뭔 일인가 잔뜩 긴장한다. 지난주에 두 차례 보고한 업무 계획을 당신이 퇴짜 놓고도 왜 추진하지 않았느냐고 닦달한다. 이런 우라질!! 분명히 보고했다고 했는데도 들은 바가 없다고 한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자리에 돌아와서 화를 달랜다. 이런 뭐 개뼈다귀 같은 상사가 있나? 자신이 건성으로 들어 놓고 인제 와서 난리를 치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 누군가에게 한소리들은 모양인데 그래도 이건 아니다. 무능하고 우유부단해서 결정 장애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레 화를 내다니 참 기가 막힌다. 월급쟁이의 비애를 곱씹으며 책상에 앉아 울화를 억누른다.


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9명은 회사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많은 직장인이 상사나 상급자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까 생각한다. 상사의 책임 회피와 우유부단함은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든다. 수시로 업무 지시를 뒤집고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자기 경험을 앞세우는 권위적인 태도는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하도 이랬다저랬다 하니 담당자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상사는 권력에 취했다.

상사는 자신이 대단한 권력자라도 되는 줄 착각한다. 마이클 캐플런·엘렌 캐플런(Michael Kaplan&Ellen Kaplan)은 『뇌의 거짓말』에서 사람은 권력을 가지면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진다고 했다. 권력은 두뇌의 세로토닌 수치를 높이고, 뇌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이런 상황이 오래가면 상사는 권력에 중독된다. 직장 내의 직급도 알량한 권력이라고 그것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마이클 캐플런은 이 책에서 마이클 J. 롤리(Rlaeigh) 교수의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한다. 실험에서 지배자 원숭이는 지배당하는 원숭이들의 두 배에 달하는 세로토닌 수치를 보였다. 더 재밌는 것은 이 논문을 지도한 롤리 교수의 세로토닌 수치도 그의 지도를 받는 대학원생들의 두 배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지배자의 위치에 있으면 그만큼 큰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세로토닌이 활발히 분비된다는 것이다.


뇌신경 심리학자인 이안 로버트슨(Ihan H. Robertson) 교수도 저서 『승자의 뇌』에서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고 주장했다. 권력에 중독되면 목표 달성과 자기 고집에 집중하면서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뇌 호르몬이 변하면서 타인의 감정을 읽고 재구성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감정과 무기력 사이의 긴장이 가장 극적으로 고조되는 것이 직장이라고 마이클 캐플런은 말한다. 대개 이런 상사는 무능한 경우가 많다. 정말 유능한 상사는 권력의 세로토닌에 빠지지 않는다. 무능한 지도자가 권력에 중독되고 탐한다. 문제는 무능한 상사는 곤란한 상황이 오면 책임을 회피한다. 했던 말도 뒤집고, 한 적 없다고 부정한다. 치사하고 비겁하게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그들의 특성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괴물을 닮지 말아야 한다.

오만한 상사는 자신의 기분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산다. 모진 말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거리낌 없이 싫은 소리를 한다. 이들은 남한테 스트레스를 주는 걸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체질이다. 그런 행동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것이 자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상사들도 부하였던 시절이 있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듯 그들의 젊은 시절을 다 잊었다. 그들도 부하직원이든 시절에 퇴근 후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상사를 비난했을 것이다. 마른오징어 씹듯 잘근잘근 씹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회사를 때려치울 것처럼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자신은 상사가 되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도 했다. 부하들을 위하고 아껴주는 상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상사가 되자 권력에 취해 버린 것이다.  


니체가 저서 『선악을 넘어서』에서 한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뛰어난 통찰인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이 괴물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괴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훌륭한 상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더 나쁜 상사로 변한 것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없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의 문제는 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견딜까이다. 누군 큰소리칠 줄 몰라 안 치는 건 아니다. 가만있으니 바본 줄 아나? 당장이라도 상사를 들이박고 보란 듯이 사표를 내고 싶다. 그러기에는 가족이 눈에 밟힌다. 그렇다고 가슴앓이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나치게 부당한 처사라면 당연히 할 말을 해야 한다. 그런 행동이 왜 부당한지를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권력자가 뇌의 세로토닌에 취해 있더라도 정신이 번쩍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독일의 법학자인 루돌프 폰 예링은 그의 저서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주눅이 들면 남에게 다 뺏긴다. 자기 밥그릇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 내키지 않더라도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는 당당하게 해야 한다.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용기와 결단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해도 상사가 쉽게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 말 못하고  끙끙 앓는 것보다 정신 건강에 좋다. 말할 때 흥분성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 지나치게 과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흥분은 뇌의 감정 영역을 자극해서 더 큰 흥분으로 번질 수 있다.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상사의 말에 심리적 상처를 덜 받는 훈련을 해야 한다. 분노와 화는 시냅스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반응이다. 이 반응이 스트레스 축을 흔들고 스트레스 물질인 코르티솔을 분비하도록 한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장기간 받으면 코르티솔이 인체의 면역 체계를 망가뜨린다. 그것은 다시 신경전달물질의 분비에 이상을 일으킨다.


안타깝지만 자본주의는 기쁨과 슬픔도 개인화했다. 국가가 나서서 어느 정도 지원해도 한계가 있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상사의 갑질이 화를 유발해도 그것을 빨리 지우자. 어차피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면 상사의 갑질에 내성을 기르는 것이 좋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건 내 것이 아니다. 쉽지 않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후배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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