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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 장(場)과 신이 된 시장(市場)

봉평 장터, 허생원의 애틋한 추억

사진 출처 :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0709#home

“여름 장(場)이란 애시 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 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1936년 발표된 이 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이렇게 시작한다. 파장을 맞은 여름의 봉평 장의 분위기를 그렸다. 다음날 열리는 대화 장터에서 한몫 챙길 요량으로 허생원은 짐을 정리한다.         

      

“---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장돌뱅이 허 생원은 우연히 만난 젊은 장돌뱅이 동이와 같이 밤길 팔십 리를 걸었다. 달빛 아래 메밀꽃은 흐드러지게 피었다. 허생원이 들려주는 성서방네 처녀와의 하룻밤 사연이 애절하다. 아들일지도 모르는 동이와의 대화가 허 생원의 아련한 추억을 불러온다. 그 옛날의 봉평 장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연이 넘쳤다. 그때 장터에는 사람 사이의 정이 풍성했다.               


하룻밤이 걸리던 팔십 리 길이 지금은 자동차로 1시간 안쪽으로 짧아졌다. 격세지감이라 했던가.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봉평 장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 정을 나눈다. 그곳에 가면 도시의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빤질거림 대신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신()이 된 시장(市場)     

가톨릭 신도이자 종교학자인 하버드 대학의 석학 하비 콕스(Harvey Cox)는 자신의 저서 『신이 된 시장』에서 시장 만능주의를 신권에 견주어 설명한다. 오늘날 시장은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신이 됐다. 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고, 돈을 주면 시장은 어떤 일이라도 해결해준다.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이 있으면 시장의 힘도 위축된다.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면 그것을 가진 사람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 하비 콕스의 말에 따르면, 선의는 가치와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덕목이자, 공동체 사람들의 품격이다. 선의는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 서로 돕고 보살피는 행동이다.       

         

한때 신부였다가 사회 사상가로 전환한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지나치게 시장에 의존하게 되면 '현대화된 가난'이 빠진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생산성을 향상했고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혼자 살아갈 능력을 잃어버렸다.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집을 지을 힘도 없는 무기력에 빠졌다. 부는 넘쳐 나는데 정작 우리는 가난과 함께 산다.           

    

폴 라파르그는 돈은 늙지도, 주름 잡히지도, 시들지도, 흐려지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젊음은 시들고, 지성은 흐려지고, 지혜조차 세월에 따라 사라진다. 돈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 유지한 채 불멸의 삶을 사는 존재다. 천재성, 재주, 미덕, 아름다움, 겸손, 명예 등 모든 것이 존재하는 까닭은 시장 가격을 갖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환되었다. 그 결과 자본은 종교의 반열에 올라섰다.       

         

우리는 스스로 시장의 신 앞에 가서 무릎을 꿇는다. 틈만 나면 신상(新商)을 보러 백화점으로 간다. 새 모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득달같이 달려간다. 이도 저도 다 귀찮으면 아예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고 거실에 앉아 홈쇼핑 상품을 구매한다. 돈만 있으면 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다. 마음은 언제나 성전의 신상(新商) 앞에 가 있다.               


자본주의는 시장이라는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와 같다. 자본주의 자동차의 질주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튼튼하고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엔진이 필요하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시장경제라는 엔진이다. 자본주의 자동차는 경제 성장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무섭게 질주한다. 매일 신상이라는 연기를 뿜어내며 달린다. 속도를 늦출수록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지만, 자본주의 자동차는 그리하지 않는다. 


물체는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원래의 속도로 달리려 한다. 관성의 법칙이다. 갑자기 멈추거나 급격하게 속도를 늦추면 몸이 앞으로 쏠린다. 자본주의 자동차도 속도를 줄이면 시장이 흔들릴까 염려한다. 그래서 멈추거나 속도를 줄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갈수록 그런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것이 자본주의 자동차의 딜레마다. 


풍요 속의 결핍보다 결핍 속의 풍요를 즐기자.     

손만 닿으면 가질 수 있고,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면 편리하다. 쉬운 일은 감동도 적은 법이다. 고생해서 얻는 것만큼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너무 풍요하면 수고로움이 없고, 갖고자 하는 절실함도 없다. 풍요가 행복감의 결핍을 초래한다.       

        

불편함과 결핍이 정신을 강건하게 만든다. 풍요를 피해 결핍 속으로 들어가 이것을 실험한 이도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혼자 아무도 없는 '월든 (walden)' 숲속으로 들어갔다. 하더드대학을 졸업한 장래가 촉망되는 소로우는 자본주의 체제의 부조리와 부당함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2년 2개월 동안 '월든'에서 혼자 자급자족 생활하면서 승리에 집착하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음을 보였다.          

     

소로우는 고독과 외로움을 벗하며 스스로 농사를 지어 식량을 구했다. 자연 속에서 살면서 최소한의 먹을거리와 필요한 물품으로 살았다. 옥수수밭의 쇠비름을 데쳐서 소금을 친 것만 가지고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그는 자연처럼 소박하고 건강하게 지냈다. 이때의 경험을 담은『월던(Walden)』은 미국 최고의 수필 작품이 됐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소로우처럼 굳이 숲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적게 먹고, 적게 가지는 습관을 익히면 된다. 욕심이 적다면 스트레스의 크기도 줄어든다. 시장에 휘둘리는 일도 줄어든다. 사람이 동물처럼 단순한 식사를 해도 체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소로의 말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        

       

가진 게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장의 신에게 굴복하지 않고, 자본 종교의 신도가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어쨌든 마음 편하게 사는 건 좋은 일이다. 풍요 속의 결핍보다 결핍 속의 풍요를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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