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단상(斷想)

by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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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가을, 말만으로도 추억에 젖는다. 오늘 아침 뚝 떨어진 기운 탓일까? 여린 가지 잡은 나뭇잎들이 기어이 손을 떨군다. 어머니 나무에서 멀어진 잎들은 땅으로 낙하한다. 어느새 길 위에 낙엽이 뒹군다.


불교의 수행자들은 낙엽에서 무상(無常)의 진리를 읽는다. 푸르렀던 잎이 노랗게 물들고, 마침내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세상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진다는 가르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머니 나무에서 멀어진다"라는 표현은 애절하다. 잎은 가지를 붙잡으려 했을 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나무에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순환하는 계절의 힘 앞에서 잎은 끝내 손을 놓는다. 애틋한 집착마저 내려놓는 순간이다. 해탈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낙엽처럼,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놓아주고 떠나보내는 것이다.


낙엽의 낙하는 끝이 아니다. 땅에 떨어진 잎은 썩어 흙이 되고, 그 흙은 다시 나무의 자양분이 된다. 봄이 오면 낙엽의 썩음으로 새잎이 돋아날 것이다. 낙엽이 죽어 새잎이 돋아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인이 있어야 일이 인다는 연기(緣起)의 이치다.


모든 존재는 홀로 있지 않으며, 끊임없이 서로에게 원인이 되고 조건이 된다. 어머니 나무와 떨어진 잎은 절대 단절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방식으로 다시 만난다. 낙엽은 죽음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 환생하는 순환의 한 과정일 뿐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낙엽에서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보았을 것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은 우리 모두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불렀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그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본질이다. "추억에 젖는다"라는 표현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시간성의 경험이다. 낙엽을 보며 지난 계절을 떠올리고,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시간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성찰하는 방식이다.


고대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의 관점에서 낙엽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은 흐른다"라고 말했다. 계절이 바뀌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질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대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우리의 태도와 판단에 집중하라고 가르쳤다. 낙엽을 슬퍼할 것인가, 아니면 계절의 아름다운 변화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자연은 그저 자신의 법칙을 따를 뿐이다.


노자는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무위자연(無為自然)을 말했을 것이다. 나뭇잎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아무런 저항 없이 땅으로 내려온다. 노자가 말하는 도(道)란 이런 것이다. 억지로 거스르지 않고 우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르는 것이다.


도가 사상에서 "어머니, 즉 도‘는 만물의 근원, 즉 자연의 법칙을 상징한다. 모든 것은 도에서 나와 결국 도로 돌아간다. 이를 귀근복명(歸根復命)이라 한다. 낙엽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뿌리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회귀다.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말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낙엽은 이 진리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푸른 잎은 이미 과거의 것이고, 노란 잎도 곧 사라질 것이며, 떨어진 잎도 곧 흙이 될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이 변화는 소멸이 아니다. 생성과 소멸은 하나의 과정이다. 죽음 속에 생명이 있고, 이별 속에 만남이 있다. 낙엽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준비다. 모든 생명체는 끝내 땅으로 돌아가지만, 다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거름이 된다.


이 모든 해석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실이 있다. 낙엽은 단순히 떨어져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것은 놓아줌의 지혜일 수도 있고, 유한성의 자각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자연의 질서에 대한 수용일 수도 있고, 순환의 이치일 수도 있다. 어쩌면 모두일 것이다.


가을날 낙엽을 밟으며 걸을 때, 우리는 그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인류가 던져온 물음들의 답을 듣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이별할 것인가. 어떻게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아줄 것인가. 낙엽의 바스락거림은 바로 그 답이다.


깊은 가을, 말만으로도 추억에 젖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낙엽이 지는 계절은 우리 자신의 유한성을, 지나간 시간을,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놓아주고 떠나야 할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뭇잎이 기어이 손을 떨구듯, 우리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고도 평안하게 삶을 놓아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순환의 시작임을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결국 죽음으로써 땅으로 돌아간다. 오늘 친구는 작별의 말도 없이 갑작스레 떠났다. 순환하는 무한한 자연 속에서 그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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