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름다운 여름 아침에

by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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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 기억 여행

왜 어떤 순간은 평생 잊히지 않을까?


M에게 그런 순간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 3학년 가을, 친구의 방에서 들었던 한 곡의 음악. 그날 이후 수십 년이 흘렀지만, M은 그 오후를 또렷이 기억한다. 아니, 기억한다고 믿는다.


과거는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된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 과거를 회상하는 M 역시 그때의 그가 아니다. 기억은 현재의 자신을 통과하며 굴절되고, 세월의 렌즈를 거쳐 변형된다. 과거를 말한다는 것은 '그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반추하는 그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걸 사람들은 추억이라고 말한다.


M은 그 시절을 이해하려고 시간 여행을 떠났다. 왜 유독 그날이 아픈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 사람의 추억은 타인에게 낯선 우화일 뿐이다. 게다가 감정이 넘치면 신파로 흐르기 쉽다. 냉철한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M은 여행을 떠났다. 시간 여행은 M의 젊은 날을 위한 애도 작업이다.


삶을 나누는 그해 가을

한 사람의 세월은 타인의 그것과 다르다. 같은 시대를 살았어도 각자의 내면에 새겨진 풍경이 같을 수 없다. 누군가에게 그해 가을이 격동의 시대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많은 가을날 중 하나다. 한 사람의 기억과 추억은 타인의 그것과 어긋나기 마련이라, 자기의 회상이 타인에게는 낯선 우화로 들릴 수 있다.


시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시계로 재는 물리적 시간과 의식이 경험하는 내적 시간이다. M의 삶에서 그해 가을은 단순히 달력의 한 페이지가 아니다. 그것은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실존적 분기점이다.


M은 청춘을 떠나보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시간 여행은 M의 젊은 날을 위한 애도 작업이다. 상실한 것을 되돌아보고, 이제라도 그것을 떠나보내려고 한다. 이 여행의 출발점에 한 곡의 음악이 있다.


친구 방에서 들었던 음악

그때의 음악은 지금의 정서와는 동떨어졌다. 『쉘부르의 우산』이나 『어느 개인날 아침 갑자기』 같은 영화 음악도 마찬가지다.


『어느 개인날 아침 갑자기』는 제목조차 정확하지 않다. 불어 원제를 직역하면 『어느 아름다운 여름 아침에(Un beau matin d'été)』다.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조차 되지 않았다. 일본을 통해 유럽 영화가 소개되던 시대였고, 제목 번역도 일본식을 따랐다. 영화의 완성도는 높지 않았지만, 음악만큼은 유명세를 탔다.


M이 처음 이 음악을 들은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어느 가을이다. 친구 누나에게 반한 남학생이 만든 카세트테이프였다. 예나 지금이나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가상한가. 그 테이프에는 당대 최고의 영화 음악들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M의 뇌리를 강타한 것은 단 하나, 『어느 아름다운 여름 아침에』였다.


늦은 가을, 햇살이 가로지른 친구의 방은 아늑했다. 그것이 부럽던 시절이다. 햇살은 서쪽으로 기울고 어두워져 가는 방에 누워 음악을 들었다. 휘파람 소리로 시작하는 멜로디는 경쾌한 듯하지만 묘하게 애잔했다. 트럼펫이 이어지며 가슴을 파고들었다.


예민했던 열여덟 살

그 시절 M은 섬세하고 예민했다. 우울한 10대 후반의 M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아직 제대로 사랑해 본 적도 없는 고등학생이 느끼기에는 너무 깊고 진한 감정이었다. 음악은 마치 잃어버린 무언가를 애도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앞으로 잃게 될 무언가에 대한 예감이었는지도 모른다.


M의 친구는 그날의 일을 기억 못할 것이다. 그 이후로도 만났고, 지금도 깊은 우정을 나눈다. 하지만 M은 한 번도 이 감동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친구에게 그날은 그저 평범한 오후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함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무렵 헤어진 평범한 가을날.


하지만 M은 달랐다. 그 방, 그 음악, 어스름한 가을 햇살의 느낌은 감동 그 자체였다. 세월이 너무도 흘러 정확히 몇 월 몇일이었는지, 무슨 요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기억은 재구성된다.

사람들은 기억은 흐려지지만, 추억은 새롭다고 말한다. 날짜도, 요일도, 심지어 그날 나눴던 대화의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의 감정, 비스듬히 들어오던 햇살, 음악이 시작될 때의 전율, 그리고 가슴을 파고들던 알 수 없는 애수는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다.


M은 두고두고 이 기억을 자기만의 색깔로 채색하고, 또 채색하며 간직하고 있다. 그날의 햇살은 지금 M의 기억 속에 있는 것만큼 비스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음악도 M이 느끼는 것만큼 애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추억이란 객관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주관적 감정의 보존인 것을.


한참 세월이 지난 지금도, M은 가끔 이 음악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친구의 방으로 돌아간다. 열여덟 살의 자신이 여전히 그곳에 누워 있다. 가을 햇살은 여전히 비스듬하고, 음악은 여전히 가슴을 저민다. 그리고 M은 안다. 지금의 M은 그때의 자신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것이 M이 시간 여행을 통해 되돌아온 최초의 장면이다.


시간 여행의 티켓

M은 그때 음악의 제목을 알 수 없었다. 카세트테이프에는 손글씨로 적힌 몇 곡의 제목만 있었고, 이 곡의 제목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 후 제목을 알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음반 가게를 뒤지고, 음악을 아는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도서관의 영화음악 관련 책들을 찾아 헤맸다.


제목을 찾는 과정은 M에게 일종의 순례였다. 마치 잃어버린 사랑의 이름을 되찾으려는 집념처럼, M은 이 곡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래야 언제든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목이 없으면 음악은 우연히 만나는 것이지만, 제목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낼 수 있다. M에게 이 음악은 시간 여행의 티켓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알아냈다. 『Un beau matin d'été』. 『어느 개인날 아침 갑자기』였다. 물론 정확하게 번역한 제목은 『어느 아름다운 여름 아침에』이지만. 제목을 알았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마치 오래전 헤어진 연인의 이름을 다시 찾아낸 것 같았다. 그제야 M은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젊은 날로 돌아가는 통로

지금 생각하면 이 음악이 왜 그토록 M을 사로잡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멜로디가 아니었다. 이 음악은 청춘의 막연함, 미래에 대한 불안,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랑에 대한 동경, 그리고 이미 지나가고 있는 시간에 대한 애잔함을 모두 담고 있었다.


친구의 방 창문으로 들어오던 가을 햇살처럼 비스듬하고 덧없던 그 순간. M은 10대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소년의 끝, 고등학생의 끝, 그리고 무언가의 시작 직전이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이 음악을 들으면 어두워지던 친구의 방, 비스듬한 가을 햇살, 그리고 이유 모를 슬픔에 젖어 있던 열여덟 살의 자신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M은 아직 그 시간 여행의 끝에 도달하지 못했다. 왜 그토록 그 시절을 아파하는지, 완전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는 알게 되었다.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 음악은 M이 젊은 날의 자신에게 돌아가는 통로다.


그리고 5년 후, 또 다른 음악이 M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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