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 예쁘긴 예쁘다.
켈리 백과 버킨 백,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렌다. 전 세계 여인들이 소망하는 가방이다. 비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명품이라 불리는 가방이다. 비싼 가방은 말 그대로 억 소리가 난다. 웬만큼 돈이 많지 않고서야 선뜻 손 내밀 기가 어렵다. 쳐다보기만 해도 뭔가 포스(force)가 남다르다. 둘 다 예쁘기로 친다면 명품 중의 명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비싸기로만 친다면 켈리 백이나 버킨 백이 따라가지 못하는 가방이 따로 있다. 2020년 11월 26일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를 인용하자. 이탈리아의 고급 액세서리 브랜드 보아리니 밀라네시(Boarini Milanesi)는 푸른 광택이 나는 악어가죽으로 만든 핸드백에 약 78억 원(530만 파운드)의 가격을 책정했다. 핸드백에는 10개의 화려한 나비 장식이 붙어 있다. 나비는 다이아몬드 4개, 사파이어 3개, 다른 희귀 보석으로 꾸며졌다. 가방 하나를 만드는 데는 1,000시간이 걸리고, 단 3개만 제작할 예정이다.
그 뒤 소식은 알 수 없다. 어마어마한 재력가가 아니고서야 78억 원짜리 백은 꿈도 꿀 수 없다. 그저 넋 놓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실용성보다는 관상용으로나 울릴 법하다. 세계적인 재벌가의 사모님이 우아한 파티에 들고 가더라도 무척 조심해야 할 고가품이다. 사람들의 눈길을 한 번에 사로잡을 만하다.
버킨 백과 켈리 백을 만드는 에르메스(HERMES)는 1837년 독일계 이민자 티에리 에르메스(Tierry Hermès)가 파리에 설립한 회사다. 원래 에르메스는 말안장과 마구(馬具) 용품을 제작해서 판매하는 회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말이 끄는 마차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촘촘한 박음질과 고급 가죽으로 만든 에르메스 제품은 유럽 왕실에서도 좋아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에르메스의 로고에 말과 마차 그리고 기수가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동차가 세상에 등장하자 이동 수단인 말과 마차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몰고 멀리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물건을 넣을 가방과 지갑이 필요했다. 에르메스의 눈이 번쩍 띄었다. 에르메스는 가죽으로 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역시 장사 머리는 타고나야 한다. 마구 용품 전문 회사에 자동차는 쥐약이나 마찬가지다. 에르메스에 엄청난 위기를 몰려온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에르메스의 매서운 눈이 놀랍다.
에르메스 제품이 유럽 상류층의 인기를 끌게 되면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해갔다. 에르메스는 프랑스 최초로 지퍼를 단 가방을 만들어 보급했다. 그들은 처음으로 사다리꼴 형태의 여성 백을 제작하는 등 대담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선도했다. 이런 혁신과 현대적 감각이 에르메스를 세계적인 명품 기업으로 만들었다. 에르메스는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혁신 기업이었다. 그들의 주황색 로고가 선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켈리 백의 탄생 스토리
켈리 백과 버킨 백은 둘 다 유명 여배우의 이름을 땄다. 유명세로만 따지면 그레이스 켈리를 따라갈 수 없지만, 제인 버킨도 전성기 시절에는 유럽에서 꽤 이름을 날리던 배우이자 가수였다. 에르메스는 운이 참 좋았다. 뜻하지 않게 두 여배우가 에르메스 가방을 든 탓에 여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레이스 켈리는 1950년대 초반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은 여배우였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외모와 세련된 패션 스타일로 이름을 날렸다. 그녀는 1954년 잡지에 실릴 사진을 찍으러 모나코로 갔다. 그곳에서 모로코 국왕 레니에 3세를 만난다. 그는 그레이스 켈리에 1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며 청혼한다. 은막의 여배우가 모나코 왕비가 되는 순간이다. 아무리 유명 배우라 해도 그녀는 평민이었다. 그런 그녀가 모나코 왕국의 왕비가 되다니, 모든 여성이 꿈꾸는 백마 탄 왕자를 만난 현대판 신데렐라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전 세계 여성의 로망이 된 그레이스 켈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언론이 놓칠 리 없다. 파파라치들은 더 극성맞게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임신하자 배가 물러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녀는 에르메스 가방으로 배를 살짝 가리며 차에서 내렸다. 이 장면이 LIFE 지의 표지에 실리자 난리가 났다. 그녀가 들고 있는 저 가방이 뭘까? ‘켈리 가방, 켈리 가방’하고 여성들이 노래를 불렀다.
그레이스 켈 리가 든 이 가방은 1935년 에르메스의 두 번째 가방이다. 프티 삭 오트(Petit Sac Haut)이라는 정식 이름이 있었다. 만들어진 지도 20년도 더 지났지만,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 가방을 그레이스 켈리가 들자 여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사람의 운명도 그렇지만 가방의 운명도 한순간에 바뀌는 경우가 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고 말한 시인 존 바이런의 말이 딱 어울린다.
20년 동안이나 묵혔던 가방이 켈리 덕분에 단박에 이름이 알려졌다. 에르메스가 이 인기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이왕 이렇게 된 참에 가방 이름을 아예 켈리 백으로 바꾸려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일국의 왕비 이름을 마음대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직접 모나코 왕실에 정식으로 요청하여 사용 허가를 받았다. 그때부터 켈리백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명품 백의 반열에 우뚝 섰다.
켈리 백이나 버킨 백을 사고 싶다고? 돈만 있다고 당장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몇 년이 지나야 구할 수 있다. 에르메스는 이들 가방을 아무한테나 팔지 않는다. 가방 말고 그릇 같은 비인기 제품 1억 원어치 이상 사야 가방을 살 기회를 준다는 말도 있다.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상술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레이스 켈리와 제인 버킨이 될 수 있다면 그 정도 기다림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여인들이 어디 한둘일까.
베블렌 효과
명품 가방처럼 가격이 비쌀수록 그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도 함께 커지는 것을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 한다. 나는 특별하다는 과시 효과가 작동한 것이다. 베블런 효과가 나타나면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거나 어마어마한 고가에도 잘 팔린다. 고가의 명품의 수요는 경기가 침체해도 줄지 않는다. 켈리 백과 버킨 백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면 불황에도 그들의 재산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가진 게 돈과 시간이라면 베블렌이 뭐라 말했든 상관없다.
돈이 엄청나게 많은 부자가 자신의 만족을 극대화하기 고가의 명품 가방을 사는 소비행위를 비난할 수 있을까? 도덕성이나 윤리성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수천억 원 혹은 수조 원의 부자가 79원짜리 밀라네시 가방을 사거나 수억 원이나 하는 에르메스 가방을 사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자기 돈으로 원하는 소비를 하겠다는데 그걸 누가 탓할 수 있나.
사람마다 자기 재산과 소득 범위 내에서 최적의 소비를 하고 최대의 만족을 얻고자 한다. 투자의 목적이든 욕망의 충족이든 고가의 백을 구매하는 행위를 비난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라는 사회는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다. 다만, 자본주의 체제가 날이 갈수록 몇 사람이 부를 다 가져가는 구조로 바뀐 것이 문제이긴 하다. 그렇다고 그걸 손대면 시장경제의 동력이 사라질 위험성이 있다. 시장이라는 엔진이 쉼 없이 돌아가야 자본주의 경제가 제자리를 잡는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디. 그렇지만 그런 불만이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는다. 돈이 워낙 많은 사람이 하는 소비 패턴이라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들은 어차피 그렇게 살게 되어 있다. 그들이 돈을 써야 세상이 잘 돌아간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욕망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켈리 백의 경제학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