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러다가 커서 뭐가 될래?
"어흥!!"하고 집채만 한 호랑이가 천둥같이 소리친다. 숲에서 눈을 휘 번득이는 호랑이를 만났다. 사람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친다.
인간은 사자나 호랑이보다 체격이 왜소하다. 그렇다고 이빨이나 발톱이 날카로운 것도 아니다. 뭐 하나 변변한 구석이 없는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되다니 신기한 일이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포식자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뛰어난 머리 덕분이다. 다른 어떤 영장류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인간의 뉴런과 시냅스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것들이 촘촘하게 연결돼 뛰어난 두뇌가 만들어졌다. 바로 이 두뇌 덕분에 인간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췄다.
인간의 뇌는 정교하고, 복잡하고, 섬세하고, 치밀하다. 천억 개의 뉴런과 150조 개 이상의 시냅스가 제대로 연결되는 게 어찌 쉬운 일인가. 이 복잡한 연결망이 제대로 완성되려면 20년에서 25년의 세월이 걸린다. 다른 동물들의 두뇌는 태어난 지 수일 혹은 수개월 만에 다 자란다. 인간의 두뇌 성장은 다른 생명체보다 훨씬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두뇌의 성장 기간은 길어도 너무 길다. 그 때문에 성장 과정이 무척 조심스럽고 까다롭다. 어느 한 곳이라도 삐끗하면 뇌 신경회로는 헝클어진다. 아이를 자주 윽박지르면 뇌 신경회로가 정상적으로 자리하지 못한다. 또 아이에게 머리가 나쁘다고 비난하면 뇌 신경회로는 진짜 그런 줄 안다. 인간의 뇌는 쉽게 잘 속기 때문에 남이 하는 말을 쉽게 믿는다. 그러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너 이러다가 커서 뭐가 될래? 아이고 속상해!!"
엄마가 화난 목소리로 말한다.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엄마의 잔소리에 아이의 머리는 병든다. 아직 연약한 아이의 신경회로에 엄마의 비난이 포탄처럼 터진다. 이래서야 아이의 두뇌가 어찌 제대로 자랄까. 사춘기에 이르면 몸은 다 자라지만, 뇌는 여전히 자라는 중이다. 아이의 뇌가 정상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부모의 양육 태도가 무척 중요하다.
하느님이 바빠서 엄마를 대신 보냈다.
유대인의 교훈서 탈무드를 보면, 하느님이 어머니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나와 있다. “나 대신 네 어머니를 네게 보냈노라. 내게는 등이 없어서 널 업어 줄 네 어머니를 네게 보냈고, 내게는 손이 없어서 널 붙들어주고 어루만져줄 어머니를 네 곁에 보냈고, 내게는 널 품어줄 가슴이 없어서 널 품어줄 어머니를 네 곁에 보냈으며, 내게는 젖이 없어서 생명의 젖줄 어머니를 네게 보냈노라.”라고 하느님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이들은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들은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자라면서 아이는 엄마가 늘 곁에 있고 어디서든 자신을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점차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내면이 성숙해진다. 꼭 엄마가 아니라 해도 누군가가 곁에서 보호해준다면 아이는 안정적으로 자란다. 아이의 뇌 신경회로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신경전달물질도 안정적으로 흐른다.
어릴 적 엄마와의 관계는 아이의 내면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 자기를 보호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아이는 정상적으로 잘 자란다. 엄마의 무관심은 아이의 가슴에 분리 불안의 흔적을 남긴다. 어린 시절 느끼는 아이의 두려움과 외로움은 아이의 내면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한다. 성인 되어서도 아이의 내면은 여전히 어린 상태로 남는다. 사회심리학자 존 브래드쇼(J.Bradshaw)는 이를 내면 아이(inner child)로 표현한다. 내면 아이 상태의 어른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실망하고 못 견뎌한다.
아이들이 제대로 사랑받자 못하고, 보호받지 못하면 내면의 성장이 멈춘다. 자신의 나이에 맞는 사랑이 무엇인지, 어떤 보호가 필요한지 잘 모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눈앞의 욕망에 집착한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참으면 다음에 더 좋은 성과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고,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준다. 사람은 어릴 때는 충분히 사랑받고 보호받으면서 자라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한 살씩 나이가 들면 그에 맞는 사랑을 준다. 아이들은 사랑을 듬뿍 주는 부모로부터 자연스레 사랑을 배운다.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도 사랑을 줄줄 알고 어른스럽게 행동한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일은 아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얼마든지 사랑을 배우고 베풀 수 있다.
아동기에 학대와 방임, 억압을 경험한 아이의 뇌는 변형된다. 다행인 것은 변형된 뇌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것을 뇌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한다. 뇌의 신경회로는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다. 격려하고 배려하고,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면 아이의 뇌는 분명 보답한다. 또 성인이 되어서도 문제를 해결하고 뇌 신경회로를 정상적으로 되돌릴 수 있다.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현대 뇌 과학이 알려준다.
만족지연 능력과 엄마의 배신
어린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려고 떼를 쓴다. 원하는 것을 바로 얻지 못하면 화를 내고 투정을 부린다. 얼토당토않게 투정을 부리면 끝내 아무 소득이 없다는 것을 배운다. 화를 내서 될 일과 아는 일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자라면서 분노를 조절하고 아무리 갖고 싶어도 포기할 줄도 안다. 양보와 타협을 익히면서 그렇게 자란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월터 미셀(Walter Mischel) 교수는 '마시멜로 실험'을 통해 아이들이 눈앞의 달콤한 유혹을 어떻게 하는지 살폈다. 아이에게 눈앞에 놓인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으면 더 많은 마시멜로를 주겠다고 했다. 당장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린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더 나은 삶을 산다는 추적 결과를 발표했다. '만족지연 능력'이 큰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이 실험의 주장이다.
만족지연 능력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욕구를 잘 조절하는 사람이 인내심이 높은 것도 맞다. 그런 사람은 학업이나 자기 일에 더 몰입할 수 있다. 눈앞의 욕구를 채우기보다 참으면 더 큰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들에게 지킬 약속만 하는 것이 좋다. 이번에 안 해주더라도 다음에는 꼭 해주겠다고 했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엄마의 약속을 믿고 참을 줄 안다. 엄마의 배신은 아이의 '만족지연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놓을 대상이 없는 아이는 갖고 싶은 게 있어도 감정을 숨겨야 한다. 화를 내고 투정 부릴 줄 대상이 없다면 마음이 정상적으로 자라기 힘들다. 해소되지 않는 감정들은 무의식의 창고에 쌓인다. 그런 감정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밖으로 튀어나온다. 어린애 같이 떼를 쓰며 대상에 집착하고,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사람을 떠나보내더라도 더 좋은 인연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누구도 완벽한 마을을 갖지 못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인간이 완전할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의 마음은 다소간의 불안한 구석이 있다. 다만 정도가 크지 않기에 문제 될 게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원만하게 살아간다. 타인을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갖췄다. 자신이 모자라는 부분은 인내하고 절제하며 채워간다. 고통을 받기도 하고 슬픔을 맛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인내하고 참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양육 환경 탓에 뇌 신경회로의 일부가 고장 났을 것이다. 그것이 시냅스의 기능에 이상을 일으키고 신경전달물질의 정상적 흐름을 방해한다. 감정이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쏠려 어찌할 수 없게 된다. 고장 난 시냅스를 고치면 신경회로가 제대로 작동하고, 신경전달물질도 이상 없이 흐른다.
마음도 고칠 수 있다. 그러려면 마음이 뇌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냅스와 마음의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제대로 고칠 수 있다. 최근 뇌과학은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얼마든지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자라지 못한 내면 아이도 어엿한 어른이 된다. 이만하면 과학과 인문학의 멋진 콜라보(collaboration)를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