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동안 기분이 가라앉았다.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내 안에 있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기계치다.
손만 대면 망가진다.
고치려다 더 크게 망가뜨린다.
새 차에 블랙박스가 떨어졌다.
그것을 새로 달려다가 난리가 났다.
아니함만 못한 정도가 아니다.
새 차에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도대체 관리가 안 된다.
손끝이 매운 아내가 타는 게 좋겠다.
진작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기획서나 보고서를 작성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주제가 정해지면 서론, 본론, 결론이 선명하게 보인다.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내용이 펼쳐진다.
한때 웬만한 보고서나 기획서는 독차지였다.
왜 기계 앞에서만 서면 나는 작아질까?
일의 순서를 모르겠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이러니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하다.
하다못해 못 하나 박는 일도 순서가 있는 법이다.
위치를 잡고 못질할 자리를 미리 봐 둬야 한다.
그러지 않고 일단 망치질부터 시작한다.
아뿔싸!! 엉뚱한 자리다.
새로 바른 벽지가 엉망이다.
순서와 개념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일단 망치질부터 시작한 것이다.
제대로 하고픈 마음이 어찌 없겠나?
잘하고픈 마음은 늘 굴뚝같다.
기획서처럼 플로 차트기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일하고도 실수투성이다.
누군가 새로 해야 하니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뿐만 아니다.
내 문제에 해결에만 골몰하는 습관이 있다.
우선 내 기분이 중요하다 보니 타인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는다.
무얼 먹어도 내가 먹는 것만 급하다.
타인에게 배려한다지만, 어느새 나만 열심히 먹는다.
낯 뜨겁고 민망하기 그지없다.
최근의 일로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다.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다.
고치려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그것이 두렵긴 하다.
늦은 때란 없다는 말을 믿어보자.
이참에 제대로 고쳐야겠다.
미숙한 배려의 뇌 신경회로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가 나를 슬프게 한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독일의 시인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가 말했다.
수필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많은 슬픔을 이야기한다.
슬픔은 오롯이 내 몫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