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하지도 않은 재능의 슬픔

by Henry
영화 <여행과 나날>(미야케 쇼 감독)에서 각본가 '이'(심은경 분)의 글 쓰는 모습.


나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종합검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른한 오후. 2025년 12월 10일(수)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를 인용해 본다. 심은경이란 여배우가 있다. 한국에서 나름 인기를 끌다가 돌연 일본으로 가서 배우 활동을 한다. 워낙 연기파 배우라 개성 높은 연기로 일본에서도 크게 성공했다고 한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나를 붙잡았다.


일본 영화 '여행과 나날'(미야케 쇼 감독)은 슬럼프에 빠진 각본가 '이'(심은경)가 눈 덮인 시골 마을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이'의 여행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여 푸른 바다와 폭우, 설산 등 대자연 속에서 접하는 마법 같은 순간들을 함께 체험케 한다. 올해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국제 경쟁 부문 대상인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이'는 호텔방을 구하지 못해 깊은 산 속 오래된 여관에 머문다. 그곳에서 설경을 보고, 알 수 없는 주인과 시간을 보내며 꿈결 같은 경험을 한다. 그리고 다시 펜을 든다. 자신을 옥죄던 굴레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맛본 것이다.


“나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라는 대사에 꽂혀 배우 심은경이 이 영화에 출연했다고 말한다. 최고도 아니고, 그렇다고 포기할 만큼 형편없지도 않은 이 어중간한 지점. 그녀는 평생 이곳에서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그렇구나. 한국에서도 꽤 이름을 날렸고, 일본에서 더 유명해진 배우가 이런 말을 한다니. 격하게 공감한다. 보통 사람은 늘 이런 생각을 달고 살기에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관심이 없다. 하지만 유명 배우가 이렇게 말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능이라는 놈이 참 무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덜어낸다는 것

나야말로 그런 말에 인이 박힌 지 오래다. 그저 그렇고 언제 포기해도 아쉽지 않은 더 어중간한 지점. 글을 쓸 때마다 나는 마음먹는다. 덜어내야 한다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거창한 목표를 갖지 말아야 한다고. 이런 생각이 들면 들수록 수양이 부족하다는 사실만 고백하는 꼴이다. "덜어내고 싶다"리는 욕망, "욕심 없이 살고 싶다"라는 목표. 나는 역설의 덫에 갇혀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인기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많은 사람이 읽고, 공감하는 글. 그런 욕망을 품고 쓴 글은 신통치 않다. 억지스럽고, 과장되고, 진정성이 없다. 그걸 버리고 싶은데 말처럼 쉽지 않다. 어쩌면 잘 버리는 것이 재능일지도 모르는데...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가르치고, 신문에 칼럼을 쓰고, 책을 내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그럭저럭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하나 특출난 구석이 없다. 열정만 앞서는 어중간하지도 않은 재능의 슬픔이다.


브람스의 고뇌

브람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에 담긴 고독과 애수 때문이다. 집시 음악의 구슬픈 선율을 끌어안은 그의 멜로디는 늘 어딘가 슬프다.


그런데 브람스 자신은 평생 베토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교향곡 1번을 완성하는 데 21년이 걸렸다.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는 평가가 두려워서였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의심했다.

그런 그의 인간적 풍모가 나를 끌어당긴다. 천재이면서도 자기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 감히 우리는 따라갈 수 없는 경지다.


그래서 나는 브람스를 기억한다. 베토벤이 아니라 브람스로. 그의 어중간함이, 그의 망설임이, 그의 불안이 만들어낸 음악을. 3번 교향곡 3악장의 그 애잔한 선율을, 간주곡 Op. 117의 그 깊은 우울을.


하지만 보통 사람의 질투는 저주받은 어정쩡한 재능 탓이다. 뭔가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취해 폭주한다.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는 저만치 멀어졌는데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하는 격이다.


심은경은 말했다. "최고가 아니어도 된다, 연기를 좋아하는 마음이면 된다." 그 말이 위로되면서도 동시에 씁쓸하다. 정말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아니, 어쩌면 그것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린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인기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을 품고, 그 욕심이 글을 망칠까 봐 불안해하면서, 그래도 키보드를 두드린다. 결과는 늘 신통치 않다. 조회수는 기대에 못 미치고, 댓글은 드물고, 가끔 오는 칭찬에는 사교적 친절이 묻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신통치 않은 결과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덧 내 삶이 되었다. 실패한 글들, 아무도 읽지 않은 에세이들, 퇴고를 거듭해도 영 만족스럽지 않은 문장들.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도, 내일도 쓸 것이다. 어중간하지도 않은 재능으로


배우 심은경은 말한다. “거창한 미래를 설계하기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가고자 하는 길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구나 다 가고자 하는 길에 닿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 닿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어중간한 재능으로 고군분투하는 그 자체를 삶이라 인정해야 한다. 신통치 않은 글들이 쌓인 것도 나만의 문학이라고 생각하며 써야 한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 점에서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는 신들의 향연이 아니다. 그건 우리의 서사다.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리면 이내 굴러 떨어지는 무한 반복. 그래도 시지프스는 행복했다고 카뮈는 말한다.


나도 오늘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린다. 어중간하지도 않은 재능으로. 그리고 나는 여행을 떠나련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설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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