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과 환경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우리 뇌의 신경세포는 지능과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신경세포는 단백질 암호체계인 DNA로 구성된다.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 부모의 DNA 정보가 아이에게 유전된다. 만일 DNA가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의 기질, 지능, 재능도 모두 이때 결정되고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전자와 구성성분인 단백질 암호체계도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한다. 그렇다면 뇌의 신경세포도 자라면서 변화하고, 지능도 변한다는 것을 뜻한다. ‘원판 불변’이 아니라 ‘원판 가변’인 것이고, 유전과 양육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다.
데이비드 솅크(David Shenk)는 그의 저서 『우리 안의 천재성(The Genius All of Us』에서 ‘유전과 양육 환경은 서로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역동적 발달이라고 표현한다. 타이거 우즈가 골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드라이브 실력을 갖추게 된 것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천재 화가, 엔지니어, 발명가, 해부학자, 식물학자가 된 것도 역동적 발달 덕분이다. 양자물리학자 리처드 파이만(Richard Phillips Feynma)이 그저 그런 소년에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물리학자가 된 것도 역시 역동적 발달 덕분이다.
영국의 분자세포 생물학자 네사 캐리(Nessa Carey)는 저서 『유전자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The Epigenetics Revolution)』에서 유전자가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표현한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하나지만, 누가 감독인가, 또 그가 어떤 시대에 영화를 제작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색깔의 영화가 나온다고 말한다. 아무리 같은 원작이라도 환경과 상황이 달라지면 똑같이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우리 세포가 DNA에 들어 있는 유전 암호를 읽을 때도 같다.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한 원작인 DNA에는 늘 똑같다. 그러나 DNA의 유전 암호와 이야기는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여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전과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역동적 발달은 두뇌의 원판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학습과 경험은 신경세포를 활발하게 자극하여 신경세포의 연결을 강하게 만든다. 반복적으로 학습하면 할수록 신경세포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synapse)가 강화된다. 시냅스가 강화되면 뇌는 정보를 더 빨리, 더 많이 처리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시냅스가 강화되면 기억을 장기화시킴으로써 기억력을 향상한다. 이처럼 반복적인 학습은 뇌의 구조를 변화시킨다.
머리를 쓸수록 뇌 신경회로의 원판도 변한다.
세계적인 뇌 과학자 디크 스왑(Dick F. Swaab)은 저서 『우리는 우리 뇌다(We Are Our Brains』에서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습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왼손가락을 조절하는 뇌 피질의 크기가 현악기를 연주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다섯 배 큰 것으로 나왔다. 현악기 연주자들의 반복 연습은 악기 연주에 대한 기억을 단기 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도록 뇌 신경회로의 변화를 유발한다. 반복적인 연습과 학습이 뇌의 기억 회로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런던 시내 택시 운전사의 해마는 기억과 공간 탐색에 관여하는 부분이 발달했다. 택시 운전 경력이 길수록 이 부분이 더 크게 발달한다. 런던의 택시 기사는 약 2만 5천 개나 되는 런던의 미로 같은 도로를 외워야 한다. 그 덕분에 런던 택시 기사들의 뇌 신경회로가 바뀐 것이다. 최근에는 택시 기사들이 내비게이션을 사용하기에 기억과 공간 탐색의 뇌 회로는 발전하지 못한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학습이 신경회로와 두뇌 구조를 변화시키는 현상을 뇌 가소성(plasticity)이라 한다. 뇌 가소성을 발견하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뇌 구조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종의 진화뿐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종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수천 년 혹은 수만 년의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뇌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종의 진화 없이도 뇌의 신경회로와 구조가 변하는 가소성을 밝혔다. 예를 들어 부모가 책을 많이 읽으면 어느 순간엔가 부모의 뇌 구조에 미세한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된 부모의 뇌는 자식에게 독서 방법을 일러주고 함께 학습하면 아이의 뇌에도 생물학적 구조 변화가 일어난다.
뇌 속에 있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 하나는 수천 개의 시냅스를 갖고 있다. 신경세포의 종류와 뇌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특정 분야의 변화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다. 신경회로와 뇌 구조 변화의 크기는 작은 수준이지만, 변화가 오래 누적되면 뇌 구조의 차이가 크게 발생한다. 원판이 어떤 모양이든 상관없이 후천적 노력으로 뇌의 원판을 바꿀 수 있다. 뇌 회로는 원판 불변의 법칙이 아니라 원판 가변의 법칙이 적용된다.
사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원리를 아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 버느라 바쁜 부모들은 여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부모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채 양육의 옷을 입는다. 한참 단추를 끼우다 잘 못 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간의 들인 공이 아깝지만, 처음부터 새로 단추를 끼우는 것이 좋다. 방향이 옳다면 시간이 더 걸릴지라도 제대로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니 늘 아이의 뇌 회로 원판가 제대로 자리 잡게 늘 곁에서 지켜보고 격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