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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Nov 01. 2022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천국행 욕망 열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중간에서 묘지 행 전차로 갈아타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다시 여섯 구역을 지난 다음 천국(Elysian Fields)이라는 역에서 내리랬어요."     


블랑슈 드부아(Blanche Dubois)가 고향을 떠나 뉴올리언스에 이제 막 도착하자 한 말이다. 그녀는 1947년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의 여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제목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듣기만 해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꽂힌다.     


뉴올리언스는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아 늘 습기로 가득했다. 인간의 욕망처럼 도시의 공기도 늘 끈적거린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라는 이름의 전철이 실제 뉴올리언스 한복판을 달렸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자신의 희곡 제목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여기에서 따왔다. 끈적거리는 도시의 공기와 인간의 욕망을 이중적으로 뜻하는 제목이다. 


이 연극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1947년 12월부터 1949년 12월까지 공연되었다. 이 작품으로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는 1948년 퓰리처상을 받고,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성장했다. 윌리엄스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성공적으로 탑승했다.      


 작품은 1951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다. 영화의 남녀 주인공인 말론 브랜(Marlon Brando) 비비(Vivien Leigh)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로 성장하는 계기가 댔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았고, 말론 랜도는 영화 ‘대부에서 주인공인  콜레오역을 맡게 되었다. 이들이 주연한 영화는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관객을 모았다. 비비언 리와 말론 브랜도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대로 올라탔다.


몰락한 욕망의 비극

블랑슈(Blanche) 한때 돈을 펑펑 쓰며 부족한  모르고  나갔다. 그녀는 미국 남부에서 매우  농장을 소유한 지주 집안 출신이다. 그러나 시대의 적응하지 못한 집이 몰락한다. 몰락한 지주의  블랑슈는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파멸의 길을 걷는다. 그녀는 어린 시절 결혼한 남편의 충격적인 죽음과 농장의 몰락으로 받은 정신적인 고통을 남자들과의 욕정으로 채웠다.


천성적으로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섬세한 성격의 몰락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늘 과거의 환상에 사로잡혀 살며,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냉혹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했다. 끝내 그녀는 쫓겨나다시피 고향을 떠나 동생이 사는 뉴올리언스로 온다.     


블랑슈는 퇴락한 뉴올리언스의 빈민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화려한 차림새를 하고 여동생 동생 스텔라(Stella)의 좁고 허름한 아파트를 찾아왔다.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Stanley)는 다혈질에 술과 도박을 즐기는 거칠고 불량한 사람이다. 블랑슈는 그런 그를 무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한때 잘났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과시했다. 스탠리는 쥐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건방을  떨며 자신을 무시하는 블랑슈를 고깝게 생각했다.      


불량한 스탠리와 현실을 모르고 잘난 체하는 블랑슈 사이에는 팽팽한 적대감이 감돌았다. 그 와중에 스탠리의 친구인 미치(Mitch)가 블랑슈를 좋아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스탠리가 블랑슈의 과거 복잡한 남자관계를 폭로한다. 그녀는 집안의 몰락, 남편의 자살에 따른 죄책감과 깊은 상처 때문에 불나방처럼 여러 남자의 품을 전전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치는 블랑슈를 떠난다. 


미치와 결혼해 그에게 정착하려던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블량슈는 꿈이 좌절되자 더 현실에서 도피했다. 그녀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스텔라가 아이를 출산하러 병원에  사이에 최악의 사건이 일어났다. 난폭한 스탠리가 강제로 블랑슈를 겁탈한다. 가뜩이나 환상에 빠져 살던 그녀는  사건으로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뉴올리언스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끝내는 정신병원으로 끌려간다.  

    

블량슈가 뉴올린스에 도착해서 말한 천국(엘리시안 필드)은 고대 그리스인이 생각한 천국을 말한다. 엘리시안 필드(Elysian Fields) 또는 엘리시움(Elysium)이라 불리는 이곳은 완벽한 행복을 누리는 지하 세계의 아름다운 초원이다. 블랑슈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려한 욕망의 세계를 꿈꾸며 천국을 찾았다. 비극은 거기서부터 싹이 자랐다. 블량슈는 어쩌면 이룰 수 없는 욕망과 냉혹한 현실 사이를 헤매는 우리의 모습일지 모른다.     


빛깔 고운 욕망

불교 최초의 경전 ‘숫타니파타’는 욕망을 이렇게 말한다.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어지럽힌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근심 걱정이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완전히 욕망을 끊고 살 수 없다. ‘무소유’의 삶을 살라 하지만, 아무것도 갖지 않고 오로지 맑은 심성만으로 세상을 사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것을 분업해서 사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이 없다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조차 구할 방법이 없다. 사람은 뭔가를 먹어야 하고, 봐야 하고, 읽어야 하고, 마셔야 한다. 그것들을 내가 스스로 자급자족해서 구할 길이 있다면, 완전한 무소유의 삶도 가능하다. 현실은 그러지 못하기에 완전한 무소유의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너무 과하지 않는 욕망과 지나치지 않는 욕심은 필요하다. 물론 과하지 않고 지나치지 않은 경계를 구분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무소유’의 철학을 배우고 버림의 미학을 늘 가슴에 새겨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속의 우리는 자신의 위치에서 온 힘을 다하고 노력하고 땀 흘리며 산다. 정당하게 일한 대가로 얻는 욕망은 절대 지나치지 않다.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오늘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것은 생활인으로서 우리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다.      


아예 욕망 없이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크기를 줄이는 것은 가능한 이야기다. 빛깔 좋은 욕망이 아름답기는 하나 무한정 커지게 놔둘 수는 없다. 내게 주어진 것을 사랑하고, 현재를 사랑하면서 욕망을 다독인다면 행복이 곁에 다가온다. 굳이 누구나 '천국행 욕망 열차'에 동승할 필요가 없다. 욕망의 대상에는 늘 근심 걱정이 있다고 했으니, 그것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까 보다.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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