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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31. 2022

죽음 옆의 춤판과 지옥의 묵시록


지옥의 묵시록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은 1979년에 개봉한 전쟁 영화다. 폴란드 출신의 영국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에서 영감을 얻은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이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었다. 2019년에는 개봉 40주년을 맞아 코폴라가 재편집한 파이널 컷이 나올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로 윌리엄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PLATOON)과 스탠리 큐버릭 감독의 풀 메탈 재킷(Full Metal Jacket)과 함께 베트남 전쟁을 다룬 대표적 영화다.

   

지옥의 묵시록은 전쟁 영화 중에서 가장 철학적이며 심오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재미있으면서도 선뜻 이해하기가 힘들다. 전쟁 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는 칭송받지만, 또 이 영화평을 쓸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과장해서 말하면, 이 영화는 인간의 광기를 다루는 역사책, 철학책, 심리학책을 읽은 기분이 들 정도다. 전쟁이 인간을 어디까지 극한으로 몰아갈 수 있는지를 어둠의 심연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려 세 시간 가까이 걸리는 영화는 무척 지루할 수 있다.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은 영화 ‘대부 1, 2, 3’을 통해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았다. 영화는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1편에서 3편까지 모두 성공한 보기 드문 경우다. 그리고 각종 영화상을 휩쓸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영상미와 음악이 빼어난 영화로서 지금도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마피아를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묘사하여 범죄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후 범죄 영화를 웅장하고 멋있게 그리기 시작했다. 조직 폭력을 미학적으로 묘사한 출발점이 영화 대부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묵시록(默示錄, Apocalypse)은 신약 성경의 마지막 권으로 신자들의 박해와 환난을 위로ㆍ격려하고 예수의 재림과 천국의 도래를 상징적으로 예언한 책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정신적으로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이 미쳐가는 전쟁의 잔혹성을 잘 보여준다. 지옥 같은 어둠의 심연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모습 말이다. 영화에서는 심판의 날에 보게 될 세상의 끝과 종말적 상황을 예언한다.      

 

광기와 어둠의 심연

미군 공수부대 소속 윌러드 대위(마틴 쉰)는 커츠 대령(말론 브랜도)의 암살 임무를 받는다. 베트남 전쟁의 영웅인 커츠 대령은 갑자기 부대를 탈영하고, 캄보디아 정글 깊숙이 잠적한다. 그곳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세워 전쟁으로부터 이탈한다. 미국 정부는 윌러드 대위에 미군의 사기를 저하하는 그를 암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윌러드는 4명의 병사와 함께 커츠 대령이 있는 캄보디아를 향해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들은 강을 따라 적진 깊숙이 침투한다. 극한의 죽음의 공포와 정신적 긴장 속에서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간다. 강 상류로 가면 갈수록 극심한 스트레스로 서서히 미쳐간다. 웅장한 바그너의 음악이 흐르고, 화려한 폭탄의 불꽃이 피어난다. 곳곳에서 시체가 뒹구는 지옥이 따로 없다. 곧 머리가 터질듯한 팽팽한 긴장감은 이들을 광기로 이끈다.   

   

그들은 사소한 일에도 이성을 잃어간다. 마지막에는 거의 광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한다. 공포가 짓누르는 깊은 정글의 강을 거슬러 올라간 끝에 마침내 어둠의 심연에 도착한다. 그들은 전쟁의 광기가 살아 있는 악의 심장부에서 커츠 대령과 마주친다. 정글 속 고대 문명의 유적지에서 커츠는 신처럼 추앙받으며 살고 있다. 원초적인 두려움과 공포를 무기로 그는 신이 되어 살고 있었다.      


커츠 대령의 왕국 곳곳에는 시체가 널브러졌다. 시체를 치우지 않고 있을 보면, 커츠 대령의 정신 상태가 온전치 못함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왕국의 암흑 같은 존재이다. 그 암흑은 삶도 아니고 죽음의 상태도 아니다. 자신의 왕국이지만 행복을 추구하지도 않고, 통치 행위도 없다. 그는 사실상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다. 왕국의 백성들은 그를 추앙하고 받들지만, 그는 혼자 고독과 적막 속에서 산다.      


"진정한 자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나? 타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유까지 포함해서 말일세."     

"난 공포란 놈을 봤어. 자네도 봤을 거야. 넌 날 살인마라 부를 권리는 없어도 날 죽일 권리는 있어. 날 죽일 권리는 있어도 날 판단할 권리는 없어. 말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공포가 뭔지 모르는 사람한테 말로 설명하기는... 공포... 공포는 얼굴이 있어. 그놈과 친구가 되어야 해.---“     

커츠 대령이 윌러드 대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고대 사원 유적지가 보여주는 음산한 풍경과 깊은 어둠 속에서 독백 가까운 대화를 나눈다. 한때는 살아 있는 전쟁의 영웅이라 존경받던 커츠 대령과 그를 죽이러 온 윌러드 대위 사이의 대화는 무척 난해하다. 커츠 대령의 낮은 목소리와 기괴한 얼굴 모습은 지옥에서 온 사람의 모습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사람은 미쳐버리는 걸까.      


죽음 옆의 춤판 

영화에서 미군은 마을 하나를 통째로 살육하다가도 윈드서핑을 즐긴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긴박함 속에서도 강가에서 보드를 탄다. 연료의 보급을 위해 잠시 들른 상류의 부대에서는 여성들의 위문 공연으로 광란의 파티가 벌어진다. 위문 공연단 매니저는 여성 댄서들과 성매매를 제안한다. 옆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는데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며 환호한다. 과연 이곳에 사람이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오직 악귀들만 설치는 지옥이 따로 없는 광기의 현장이다.      


삭제했던 장면들을 추가해 두 차례 더 영화를 개봉했다. 영화에서 말하는 ‘지옥’은 전쟁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도 지옥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혼란과 아수라장의 현장은 어디에든 있다. 코폴라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가 이것이다. 인간의 탐욕과 광기가 지배하는 곳은 어디나 지옥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영화가 말하는 '묵시록'이다.    


지난 토요일 우리는 ‘지옥의 묵시록’을 들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애달픈 생명이 꽃처럼 졌다. 죽음은 언제나 안타깝다. 놀라운 일은 죽음 옆에서 벌어졌다는 노래와 환호다. 사람이 죽어가는 현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공교롭게도 오해가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오해가 아니라면 그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영화에서 일어난 일과 다를 바 없다. 마을 사람이 전멸하는 와중에 윈도 서핑을 즐기고 환호작약한 일과 뭐가 다를까?     


앞으로 사고의 원인은 밝혀질 것이다. 시시비비는 가려지겠지만, 비극은 남는다. 이번 사고는 어떤 묵시록으로 기록될지 궁금하다. 앞으로 그런 비극은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현실이 되면 안 된다. 조심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 자리한 어둠의 심연을 없애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번 사태가 들려주는 묵시(默示)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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