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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Nov 02. 2022

가을은 모순의 계절이다. 그래서 남자의 계절일까?

추색(秋色)은 모순(矛盾)이다.

씨앗은 땅속에서 자신을 죽여 새싹을 틔운다. 씨앗이 죽지 않으면  생명이 탄생할  없다. 죽어야 사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다. 새싹이 자라 줄기와 가지를 만든다. 이윽고 꽃이 핀다.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맺는다. 씨앗이 죽지 않고, 꽃이 죽지 않으면, 결실은 없다. 초록은 떠남으로써 형형색색의 단풍을 만든다. 초록이 죽어야 추색(秋色) 산다.      


가을 들녘에서 나락은 이삭을 일구고, 푸성귀는 자란다. 가을걷이 끝난 들판의 볏단 더미는 계절의 끝을 알린다. 봄부터 부지런히 달려온 시간의 덧없음을 말해준다. 나무들은 무성했던 잎을 떨군다. 여윈 가지 끝에는 한 뼘 남은 가을이 힘겹게 매달려 있다. 가을은 성취와 허무, 결실과 조락 사이에서 방황한다. 긴 겨우살이를 위해 잎과 열매와 결별한다. 가을은 모순투성이고, 추색(秋色)은 모순의 색깔이다.     

      

햇살 따가운 봄과 여름, 나뭇잎은 활발하게 광합성 작용을 한다. 풍부한 엽록소 덕분에 나뭇잎은 초록으로 단장한다. 해가 짧아지면 일조량이 준다. 엽록소의 양이 줄면 초록은 점차 사라진다. 이때다 하고 나뭇잎 속의 천연 색소들이 본색을 드러낸다. 카로티노이드, 안토시안, 타닌 같은 천연염료가 나뭇잎을 빨강, 주황, 갈색으로 물들인다.    


찬 바람이 불면 햇빛은 더 짧아진다. 나뭇잎의 광합성 활동도 끝을 맺는다. 나무는 본격적으로 겨울날 채비에 분주하다. 어느덧 하루해는 손수건 한 장만한 크기로 짧아진다. 한 스푼 남짓한 햇빛으로 하루를 견뎌야 하는 나무의 고민도 깊어간다. 나무는 하는 수 없이 잎자루에 코르크처럼 단단한 세포층(떨켜)을 만든다. 떨켜는 눈물을 머금고 잎으로 가는 영양분과 수분을 차단한다. 나무는 제 한 몸 건사하고 봄날을 기약한다. 가을은 자기를 잉태한 모든 결실과 냉정하게 작별한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

봄은 여인의 화사한 스카프에 내려앉고, 가을은 쓸쓸한 남자의 바지 끝에 묻어난다. 흔히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말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가을을 탄다는 이야기다.  말이 맞고  맞고가 중요한  아니다. 가을은 사람의 기분을 센티하게 하는 계절임에는 분명하다.


가을에는 햇빛의 양이 봄과 여름보다 훨씬 작아진다. 낮보다 밤이 길어지고, 햇빛 받는 시간이 짧아지는 계절이다. 게다가 태양과의 거리도 더 멀어져 햇빛의 양이 현저히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두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멜라토닌’의 분비량은 증가하고, ‘세로토닌’ 분비량은 감소한다.              

 

자료 출처 : https://m.blog.naver.com/2goldman/220795426967



1982~2012년간의 계절별 일조량의 변화를 나타내는 그래프다. 봄과 여름의 일조량이 가을이 되면 뚝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겨울  일조량이 제일 적지만, 일조량이 갑자기 떨어지는 가을이 더 문제다. 햇빛의 양이 급속히 줄어드는 탓에 몸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멜라토닌과 세로토닌의 변동으로 잠이 많아지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자료 출처 : https://blog.mal-eum.com/510


어느 도시와 전국의 월별 일조량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5월의 일조량이 제일 많고 12월의 일조량이 가장 적다. 10월과 11월은 일조량이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이때가 가을이 한참 깊었을 시간이다. 멜라토닌은 많아지고, 세로토닌은 줄어든다. 이것이 몸과 마음이 심란해지는 까닭이다. 


멜라토닌(melatonin)은 빛을 감지해 우리 몸의 주기적 기능을 관리하는 생체시계(bio-clock)의 역할을 담당한다. 다양한 생리, 대사, 수면 패턴, 여성의 월경 등을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몸속 시계가 생체 시계다. 햇빛의 양이 줄어들면 멜라토닌 분비량이 많아져 잠이 많아지게 한다. 멜라토닌의 양이 많아지면 혈압이 내려가고, 심장 박동수도 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의 기분이 가라앉는다.      


줄어든 햇빛의 양은 멜라토닌의 분비량을 늘린다. 남성의 생체시계가 멜라토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가을에는 여성들보다 남성들의 기분에 변화가 많다. 기분이 더 많이 가라앉고, 더 자주 우울한 느낌이 든다. 남자들은 가을이 되면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깊은 감상에 젖는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낙엽 지는 가을에 남성은 자칫 눈물을 떨굴지도 모른다.    

 

유독 심하게 가을을 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계절성 정동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를 의심해봐야 한다. 계절성 정동장애는 줄어든 햇빛으로 생체시계가 고장 난 현상을 말한다. 햇빛이 적어지면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든다고 했다. 세로토닌 농도가 떨어지면 우울한 기분에 빠진다. 멜라토닌 분비가 늘어나면서 잠을 많이 자고 무기력해진다. 이런 상태가 오래가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가을은 수확과 결별의 계절이다. 가을 들녘의 곡식들도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 가을걷이 끝낸 볏단만 빈 들판에 허허로이 선다. 나무들은 무성했던 잎들을 다 떨구고 나면, 마지막 한 조각 가을이 대롱거린다. 은행잎이 거리를 노랗게 색칠할 때면, 가을은 시리다 못해 처연해진다. 울트라 마린(ultramarine)의 짙은 파란색 하늘은 가을의 끝을 알린다. 드디어 성취의 시설은 끝나고 시린 조락((凋落)의 시간이다.    

   

오늘은 가을 햇살이 참 좋다. 이런 날은 더 많이, 더 자주 햇빛을 보러 나가야겠다. 거리는 온통 천연의 물감으로 넘친다. 멜라토닌을 줄이고, 세로토닌을 늘리자. 지금은 떨어지는 낙엽에 눈물지을 때가 아니다. 몸이 마음을 만든다고 해도 마음은 다시 몸을 조절한다. 영혼과 몸은 조화롭게 인식을 만든다. 인간이 위대한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을 타는 기분을 오직 인간만이 느낀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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