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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Nov 06. 2022

맬서스 함정을 탈출한 후 예절이 나아졌나?

사마천의 『史記』관안열전(官晏列傳)

배가 불러야 예절을 안다.

주(周)는 상나라를 이어 고대 중국에 존재했던 나라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존속했다. 주나라가 힘이 약해지자 각각의 제후국들은 철제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육성했다. 나라는 여러 개로 쪼개졌다. 주나라 왕실에 반기를 든 제후국들은 춘추전국시대의 패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전국 칠웅이라 불리는 진, 초, 제, 연, 조, 위, 한의 일곱 나라가 일어나 서로 강력하게 대립했다.


제 환공(齊 桓公)은 제(齊) 나라의 제16대 임금이다. 제 환공은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삼아 그의 탁월한 정치력에 크게 도움을 받았다. 관중과 포숙(鮑叔)의 우정은 역사에 길이 남는 모범 사례다. 지금도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사자성어로 우리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포숙아는 관중을 제 환공에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관중의 훌륭한 정치 덕분에 제나라는 여러 제후국 가운데서도 패자(霸者)의 자리에 올랐다.

             

『史記』의 관안열전(官晏列傳)을 읽어보자. 관중은 제나라 재상이 되어 정치를 맡자 보잘것없는 제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군대를 튼튼하게 만들고, 백성들 함께 좋고 나쁜 것을 나누었다. 그는 재앙이 될 수 있는 일도 돌이켜서 성공으로 이끌었다. 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창고의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관중의 뛰어난 경제적 혜안을 엿볼 수 있다. 배가 불러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 명예를 지킨다는 말은 지금도 잘 들어맞는다. 먹을 것이 굶어 죽을 판이면 예절이고 명예가 다 필요 없다. 오직 생존의 욕구만 번득일 뿐이다. 경제는 사회나 국가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그것이 흔들리면 사회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관중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하고 일찌감치 외쳤다.


산업혁명, 드디어 맬서스 함정을 탈출하다.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먹을거리를 구하는 문제로 고심했다. 아득한 원시 시절에는 짐승을 사냥하고 과일이나 식물을 채집하여 먹는 문제를 해결했다. 농업사회로 진입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왕이나 귀족이 아닌 일반 백성들이 배불리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긴 시간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인류가 제대로 식량 문제에 해방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라 할 수 있다.



멜서스 함정



산업혁명을 통한 기술 발전은 농작물 생산 증대에 크게 이바지했다. 농기구와 비료의 발명은 인류의 오랜 소망인 배고픔 문제를 해결했다. 결국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인류는 절대적 빈곤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 인류는 오직 살기 위해 먹는 절체절명의 시간을 보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중요한 동력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 한 인간의 열망이다.                


그레고리 클라크(Gregory Clark)은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에서 세계 경제사를 그래프 하나로 표시했다. 그는 세계 경제가 오랫동안 맬서스 함정에 빠졌다가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대부분 국가의 경제는 급성장했다고 말한다. 반면에 아프리카 등 몇 개 국가에서는 오히려 맬서스 함정 이전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1800년 이전까지 세계는 1인당 소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농사가 잘되거나 기술이 발전해서 소득이 1달러를 넘어서면 인구가 증가한다. 인구가 증가하면 먹을 입이 늘어나 소득은 다시 1달러 아래로 떨어진다. 입은 많은데 식량이 부족하게 되자 인구가 줄어들어 소득이 증가하는 것이 맬서스 함정이다. 인구학자 맬서스의‘인구론’에 빗대 인류는 산업혁명에 성공하기 전까지 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 그레고리 클라크의 주장이다.                


일부 국가는 산업혁명의 실패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대부분 국가는 절대빈곤에서 탈출했다. 몇 번의 부침을 겪으면서 세계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고 2000년 이후 통신과 네트워크 기술의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경제 성장의 과실이 비교적 고르게 나뉘었다. 부의 불평등 정도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다.


예절이 나아졌나?

관중이 통치하던 전국 시대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그때도 빈부격차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백성들은 가족들이 배곯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하루 세끼 풍족하게 먹을 수 있으면 달리 욕심낼 일도 없었던 시절이다. 그래서 예절을 받들고 명예를 존중했을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절대 빈곤에서 해방됐다. 배곯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얼마나 살기가 좋은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입에 풀칠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상대적 빈곤이니 상대적 박탈감 운운하는 말라고 하고, 배부른 작작하라며 야단이다. 그런데 지금은 배고픔이 아니라 배아픔이 문제다.


현대 사회에서는 밥만 먹고 산다고 사람들이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가 충족되면 그다음 단계의 욕구가 생긴다. 욕구는 가장 저 차원의 욕구인 생리적 욕구부터 시작해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로 진행한다. 저 차원의 욕구가 충족되면 점차 고차원의 욕구로 진행한다는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Maslow)의 욕구 5 단계설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은 가장 낮은 단계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 상위의 욕구를 만족할 능력이 없으면 문제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빈민, 서민, 차상위계층 은 더 상위 계층을 보면서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빈곤하다고 생각한다. 중류층은 상류층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상류층 안에서도 최고의 부자들을 보면 심란한 사람도 있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번연히 보이는데 상대적 빈곤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최근 많은 국가에서 부가 일부 상위계층에 집중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소수의 승자가 과실 대부분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사회’로 진입했다. 이렇게 독식한 부를 자식에 물려줘 부를 대물림하고 있다. 고도로 발전한 금융기법은 축적한 부를 안전하게 보호한다.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함으로써 부를 대물림하는 일이 한결 편하게 됐다. 옛날에는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을 것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3년이 아니라 300년이 갈 정도로 견고한 부의 성을 쌓았다.       

        

부의 대물림이 만연하고 금수저가 부를 쥐락펴락하는 세상에서는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점차 사라진다.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도 가난한 삶을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울이 말라붙어 용이 태어날 수 없는 부의 세습 공화국이라는 날 선 비판을 쏟아낸다. 언제 다시 개천에서 용이 나올지 알 수 없다.


관중이 살던 시절보다 우리는 더 잘산다. 그렇다면 그때보다 지금 우리가 예절과 명예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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