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Nov 10. 2022

관종과 자칭 전문가들

사마천의 『사기(史記)』노자·한비 열전(老子韓非列傳)’

아름다운 덕을 숨겨라.

『사기(史記)』 ‘노자·한비 열전(老子韓非列傳)’을 계속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노자(老子)와 공자(孔子)의 대화가 나온다. 공자가 주(周)나라에 머무를 때 노자에게 '예(禮)'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노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 없어지고, 오직 그 말만이 남았을 뿐이다. 또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그대의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단지 이것뿐이."


노자는 유교의 최고봉인 공자를 교만하고 욕망의 덩어리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노자한테 이런 폭언을 듣고 돌아온 공자가 제자들에게 한 말이 더 놀랍다. 공자 자신은 물고기나 새나 어떤 짐승이라도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용은 어떻게 하늘 위로 올라가는지 알 수 없어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자는 노자가 용과 같다면서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거참,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이 맞나? 노자의 엄청난 비판을 들은 공자는 화가 날 만도 한데, 오히려 노자가 용과 같고 치켜세웠다. 유교의 대가다운 넉넉한 마음이라고 이해할까? 아니면 통 큰 대인(大人輩)배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공자가 집착을 버리라는 노자의 말을 따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 참여라는 자기 사상을 더 발전시켰다. 노자와 공자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노자는 현실을 추구하되 굳이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운때가 맞아 관직에 나가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억지로 하려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억지를 부려 인위(人爲)로 하지 말고, 일이 자연(無爲)스레 성사되도록 그냥 두라는 뜻의 무위(無爲)를 주문한다. 이것이 노자가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이 점에서 사람들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아무것도 하지 말고(無爲) 자연(自然)으로 돌아가자는 허무주의로 오해한다.


공자는 남을 잘 다스리기 위해 학문을 연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위정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을 배우고 실천할 것을 주창했다. 공자는 정치의 목적은 ‘민(民)을 위함’에 있다는 위민사상(爲民思想)을 강조했다. 정치는 군주 개인을 위한 국가가 아닌, 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을 들려준다. 공자는 자기의 정치 철학을 받아 줄 제후를 찾아 천하를 주유할 정도로 현실 참여를 희망했다.


옛날에는 사람이 자기 이름을 알리는 방법이 많지 않았다. 과거 시험에 합격하거나 타인의 추천으로 관리가 되었다. 과거 시험은 중국에서는 수나라 때, 한국에서는 고려 때 시작했다. 그러니 사마천이 살던 시대에 이름을 날리는 길은 높은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이다. 지금 같은 자기 PR 수단이 없었기에 능력이 있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다. 유학의 대가인 공자도 천하를 다니며 자기를 알렸다. 끝내 그를 받아주는 제후가 없어서 제자 양성에 힘을 썼다.


관종의 시대

인위적으로 하려 말고, 집착하지 말라는 노자의 말을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마음을 비우고 노력하다 자연스럽게 출세하면 좋고, 인위적으로 츨세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요즘은 너도나도 자기를 알리기 위해 혈안이고, 덕을 숨기는 게 아니라 알리지 못해 안달 났다. 자기를 알리기 위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현대인은 PR의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럴 때는 노자의 무위자연을 한 번쯤 생각하는 것도 좋다.


SNS와 미디어의 발달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관종’(관심종자)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관심을 받고자 과도한 행동이나 지나친 언행을 일삼는 사람을 관종이라 불렀다. 그 말이 진화해 지금은 스스로 자기를 알리는 ‘자기 PR’ 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은 유튜브에는 자기 생활을 찍은 동영상을 올린다. 부부간의 일상이나 심지어 가족의 일상생활도 공개한다. 바야흐로 세상은 관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자기 PR 시대의 붐을 일으킨 것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으로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될 수 있다. 관종의 단계를 넘어 셀럽의 단계로 격상한다. 고정 고객이 많아지고, 영상 조회 수가 늘수록 지갑도 두꺼워진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자기를 알리려 한다.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영상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적절한 관종 열풍이 어디까지 폭주할지 우려되는 지점이다.


‘구글에 나와 있던데요!!’

인터넷이 1인 미디어 시대를 열었고, 지식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인터넷은 누구나 쉽게 지식을 얻고 배우는 데 순기능을 한 것도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은 위험한 시대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이토록 전문가로부터 배움에 저항했던 적도 없다고 톰 니콜스(Tom Nichols)의 『전문가와 강적들』에서 말한다. 그 결과, 기초적인 지식마저 부족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고 지적한다. 


최근 들어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의 구분이 무너졌다. 위키피디아로부터 시작된 이 붕괴는 구글 때문에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마침내 온라인 전체가 비전문가들의 블로그 글로 도배되었다고 니콜스는 주장한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특정 분야 혹은 모든 분야의 전문가라고 믿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전문가인 너만큼 나도 안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갖게 됐다. 인터넷을 통해 얻은 지식의 잘잘못을 판단하지 못하고, 마치 자신이 대단히 많이 아는 걸로 착각한다.   

 

‘나는 암 말기인 것 같아요. 구글을 검색해 보니까 그렇던데요.’

‘인터넷에서 알아보니 00제약회사의 약이 좋다고 하네요.’     


병원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간다고 생각해 보자. 이쯤 되면 상황이 심각하다.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병원에서 인터넷을 통해 얻은 얕은 지식으로 의사를 대한다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전문가에게 겁 없이 덤비는 얼치기 강적들이 발길에 차인다. 문제는 지식이 얕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지식을 과신하는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가 겹친다는 점이다. 실력이 모자랄수록 오히려 자기 실력을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서 생각하는 그런 경향 말이다. 


인터넷은 방대한 지식 저장소이지만, 동시에 급속하게 퍼져나가는 잘못된 정보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인터넷 때문에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더 바보가 될 뿐만 아니라 더 심술궂은 사람이 된다. 키보드 뒤에 홀로 숨어서 토론에 참여하기보다는 말싸움하고, 남의 말을 진지하게 듣기보다는 타인을 모욕한다. 이러한 현상을 팀 니콜스는 인터넷 공간에서 일어나는 지식 크라우드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인터넷이 주는 순기능을 잘 활용하면 좋다. 그렇지만 인터넷의 단편적인 지식을 맹종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인터넷은 한편으로 쓰레기 지식의 바다이기도 하다. 그것을 선별하는 일은 오롯이 본인 몫이다. 인터넷에 나오는 콘텐츠를 맹신하는 것은 생각의 편향을 유발한다. 특정 인터넷 방송이나 한쪽으로 편향된 인터넷 글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문화는 위험하다. 자칫 무분별한 팬덤을 형성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게 된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교환할 때는 다른 사람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노자의 신랄한 비판을 공자조차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노자가 말한 것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좋은 일이다. 현재의 욕망에 동요되어 이름을 알리는 데 너무 빠지지 말자. 어리석게 보이지만 아름다운 덕을 지닌 그런 사람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세상은 어설픈 강자들로 참고 넘치니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쉰 살이 되기 전까지는 나는 한 마리 개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