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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Nov 12. 2022

한비자, 설득의 기술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의 설득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을 보면, 측근 신하가 군주를 설득할 때의 어려움, 즉 '세난(說難)‘을 설명하고 있다.


한비(韓非, 기원전 280~233)는『한비자(韓非子』를 저술한 전국 시대 중국의 정치철학자이며 사상가이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엄격한 법률에 따라 평가하고 상벌을 내릴 것을 강조했다. 그는 법률 체계를 통해서 사회 질서를 유지할 것을 주장한 법가 사상가이다. 사람들은 그의 저술서 제목을 따서 한비자로 부르기도 한다.


한비는 군주를 설득하는 어려움, 세난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번역서에 나오는 한비의 말이 옛날 표현이 많아 지금의 표현으로 바꿨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내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언변으로 내 뜻을 분명히 밝히기 어렵다는 뜻도 아니다. 또 내가 해야 할 말을 자유분방하게 다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을 잘할 수 있지만, 그래도 군주를 설득할 때는 어렵고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     


한비의 말은 한 번에 길게 이어진다. 그것을 잘라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이것을 현대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실제 생활에서 적용해보는 것도 좋다. 다만, 시대적 상황이 다른 부분을 고려해서 적절히 변형하는 것이 지혜롭다.     

 

첫째, 군주의 마음을 잘 파악해 내 주장을 그의 마음에 꼭 들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군주의 마음을 잘 읽는 것이 중요하다. 높은 명성을 원하는 군주한테 큰 이익이 남는다고 말하면, 식견이 낮은 속물이라고 멀리할 것이다. 그러니 군주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다.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의 눈빛과 표정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상대가 말을 많이 하도록 유도해 상대의 의중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된다. 8:2의 파레토(Pareto) 법칙을 적용하는 것도 좋겠다. 듣기를 8로 하고 말하기를 2로 하는 것이다. 그 2도 상대가 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유인책이 되면 좋다.      


둘째, 모든 일을 은밀히 진행하면 이루어지고, 말이 새어나가면 실패한다. 비밀을 요구하는 일을 진행할 때는 절대 말이 새어나가면 안 된다. 사전에 정보가 유출돼 일이 실패하면 군주의 신뢰를 잃는다. 그렇게 되면 다음에 어떤 말을 해도 군주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건 지금도 당연한 말이다. 상사와 비밀리에 나눈 말을 흘리면 야단날 일이다. 비밀을 공유한다는 동지적 결속감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믿지 못할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한번 믿음이 깨지면 다음에 더 큰 일을 도모할 수 없게 된다.


셋째, 상대방의 비밀을 출 마음은 없었다고 해도, 우연히 상대의 비밀을 말하면 위태로워진다. 절대 의도하지 않았더라고 상대의 허물이나 비밀을 말하는 일이 있어서는  된다.


애초 상사의 비밀을 모르는  좋다. 우연히 알았더라도 비밀을 발설하면 큰일이 난다. 직장에서 잘릴 위험도 각오해야 한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남의 비밀을 알려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모르는  약이고 아는  병'이라는 말이 여기도 해당한다.


넷째, 군주에게 허물이 있을 때, 주저 없이 분명하게 바른말을 하면 안 된다. 또 교묘한 주장을 내세워 군주의 잘못을 들춰내면 위험해진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도 가려서 해야 하고, 특히 군주의 허물을 이야기하는 것은 금물이다.


상사의 단점을 알았더라도 에둘러 표현하거나 가능하면 들춰내지 않는 것이 좋다. 자기 약점을 이야기하는 부하를 좋아할 상사는 없다. 그렇다고 상사가 치명적으로 잘못해서 조직을 위기로 몰고 가는 것을 끝까지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말을 하더라도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이야기해야 한다.


다섯째, 아직 군주의 두터운 신임과 은혜도 입지 않았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버리는 것도 위험하다. 그렇게 되면 공을 세우더라도 군주는  고마움을 잊는다. 만일 충고를 했는데 군주가 내 말대로 하지 않아 실패했다고 치자. 그래도 군주는 실패가 내 탓인 걸로 의심할 수 있다. 그러니 군주의 신뢰를 확실히 얻을 때까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상사와 오랫동안 같이 일해 동지적 믿음이 생기기 전에는 자신의 속내를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상사가 나를 믿어줄 때 그때 솔직한 복안을 말하는 것이 좋다. 관계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 이야기해 봐야 득보다 실이 많다. 잘되면 자기 탓이고, 실패하면 부하를 탓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군주가 좋은 계책을 얻어 자기의 공로를 세우고자 하는데 부하가 그것을 눈치채면 위험해진다. 군주가 공을 세우려고 은밀한 계책을 실행한다면 그걸 모르는 척해야 한다. 괜히 알아서 군주를 무안하게 만들거나 공을 가로챌 듯한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없다.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 출세의 요령이다.      


일곱째, 군주가 겉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다른 일을 꾸미는 것을 아는 것도 위험하다. 저절로 알게 되는  어떡하냐고?  의도와 상관없이 우연히 군주의 계획을 아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절대 아는 티를 내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라는 뜻이다. 피곤하지만 어쩔  없다. 억울하면 출세하는 말이 그냥 나온  아니다.    

  

여덟째, 군주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요구하거나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일을 멈추도록 하면 위험하다. 내가 하고 싶은 않지 일을 군주가 억지로 강요하면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인데 군주가 멈추도록 하면 힘이 빠진다. 자칫하면 불만이라도 비치면 관계가 위험해진다. 내 지위가 안정될 때까지는 이래저래 피곤하다.       


아홉째, 군주 앞에서 조심해야 할 말이 많다. 다른 사람 말을 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다른 군주가 현명하고 어질다고 말하면, 군주는 자신을 헐뜯는다고 오해한다. 지위가 낮은 인물에 대해 말하면 군주의 힘을 빌려 폼을 잡는다는 오해한다. 군주가 미워하는 사람 이야기를 꺼내면 군주인 자기를 떠본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아예 상사 앞에서는 다른 사람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       


열째, 꾸미지 않고 간결하게 말하면 아는 것이 없다고 하찮게 여길 것이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으면 말이 많다고 할 것이다. 사실에 근거해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용기 있게 다 못한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쩌라고?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한비의 이야기는 그때그때 눈치껏 요령 있게 말하라는 뜻이다. 가능하면 상사 앞에서는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다. 열 번 중에 아홉 번을 잘하다가 한 번의 실수로 눈 밖에 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힘을 가지기 전까지는 지켜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상이 한비가 말한 군주를 설득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다. 이것을 반드시 마음속에 새겨두고 군주를 설득할 때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한비는 군주를 설득할 때 다음 사항을 고려할 것을 권유한다.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이야기하고, 단점을 덮어줄 줄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과거의 잘못을 꼬집어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의 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할 필요는 없다. 상대방이 자기 능력을 과장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들어 능력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군주가 꾸민 일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칭찬하고, 군주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을 칭찬해야 한다. 군주와 같은 실패를 범한 사람이 있으면 두둔하고, 군주와 같은 실수를 한 사람이 있으면 잘못이 없음을 분명히 알려주고 덮어주어야 한다. 군주가 충성스러운 마음에 반감을 갖지 않고, 또 내 주장을 내치지 않을 때 비로소 내 지혜와 언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군주의 신임을 얻고 의심받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바를 다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오랜 시간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면 큰 계책을 올려도 의심받지 않고 군주와 다투며 말해도 벌을 받지 않는다. 그때 국가의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명백히 따져 군주가 공적을 이룰 수 있게 하며, 옳고 그름을 솔직하게 지적해도 칭찬받는다. 이러한 관계가 이어지면 설득은 성공한다.


참 어렵다. 하긴 춘추전국시대의 군주는 사람의 목숨까지 뺏을 수 있는 사람이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그저 조심조심하며 숨죽이고 군주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얼토당토않은 말도 많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신하가 목숨을 부지하는 길이었다. 한비가 말한 설득의 기술 가운데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은 버려도 좋다. 그렇지만, 거의 다 지금 그대로 적용해도 크게 나쁠 일은 없다.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아무리 군주라 해도 목숨 걸 일은 없다. 자칫 잘못해서 직장에서 잘리기라도 하면 그것도 큰 낭패이긴 하지만, 그래도 옛날처럼 부하 직원이라고 함부로 그렇게 쉽게 대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상사한테 너무 대놓고 직선적으로 말하거나 앞뒤 재지 않고 설득하는 것은 위험하다. 도끼를 옆에 두고 목숨 걸고 직언하는 지부상소(持斧上疏)는한 번이면 족하다. 그게 반복되면 미운 털이 박히기 딱좋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람의 감정은 매한가지다. 인간의 본성은 크게 달라진  없다. 토론을 좋아하고 건의를 잘 받아주는 상사를 만나는 건 복이다. 그런 행운이 없다면, 먼저 상사의 신뢰를 얻어라. 그래야 어떤 말을 해도 오해받지 않지 않는다. 한비가 말하는 설득의 핵심이 그것이다. 그의 세난 지금 응용해도 좋다. 다만, 시대가 많이 달라졌으니 구체적인 내용들은 적절히 조정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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