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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Nov 14. 2022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월급쟁이니라!

역린(逆鱗)이 아니라 순린(順麟)을 따르자.

왕의 마음은 그때그때 달라요.

옛날 위(衛)나라의 왕이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美少年)을 총애했다. 지금으로 보면 위나라 왕은 동성애적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위나라 국법에는 왕의 수레를 몰래 타는 사람은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때야 왕이 절대권력을 가졌으니 그런 잔인한 형벌도 가능했다.


어느 날 미자하의 어머니가 갑자기 병이 났다. 한밤중에 미자하는 이런 위급한 소식을 들었다. 급한 마음에 미자하는 왕의 명령이라 속이고 수레를 탔다. 그리고는 대궐 문을 빠져 어머니의 병문안을 갔다. 인간적으로는 미자하의 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왕도 나중에 이 사실을 듣고 미자하를 어질다고 칭찬했다. 왕은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효자로다. 어머니를 위해서 다리가 잘리는 형벌의 위험까지 감수하다니!! “     


이 정도면 위나라 왕이 미자하를 얼마나 총애하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수레를 몰래 궁을 빠져나간 것을 벌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할 정도로 미자하를 끔찍이 아꼈다.

      

또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미자하가 왕과 함께 과수원에 갔다가 복숭아를 먹어 보니 맛이 달았다.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다. 자기가 먹던 것을 왕에게 바치다니 엄청난 불경스러운 행동이다. 그런데도 임금은 이렇게 말했다.      


"과인을 끔찍이도 위해 주는구나. 제 입맛을 참고 이토록 나를 생각하다니"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주는 것을 칭찬한 것이다. 미자하를 생각하는 왕의 마음이 차고 넘친다. 따지고 보면, 미자하의 행동은 대단히 굉장히 불손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그런데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니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낀 상황이다.

   

시간이 흐르자 미자하의 얼굴애 주름이 잡히고 시들었다. 곱던 꽃미남의 자태가 사라지자 왕의 총애를 잃게 됐다. 그때 또 미자하가 왕에게 잘못을 저질렀다. 지금까지 이쁘게 여기던 왕이 돌변했다. 왕은 이렇게 말하면서 미자하를 크게 꾸짖었다.    


"이 자는 언젠가 나를 속이고 내 수레를 탔고, 또 전에 자기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먹였다.”     


사실 미자하의 행동은 변한 게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그런데 전에는 어질다고 칭찬받았는데 그것이 나중에는 죄가 됐다. 왕의 사랑이 식어버렸다. 총애하는 마음이 미움으로 바뀐 것이다. 왕의 마음은 그때그때 달라지니, 미자하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왕이든 상사든 사람은 다 같다. 언제든지 변덕을 부리는 게 사람 마음이다. 방법은 하나다. 억울하면 출세하자.


왕의 총애를 받을 때는 지혜가 마음에 든다고 크게 칭찬한다. 둘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진다. 반면에, 왕의 미움을 받을 때는 사소한 것도 꼬투리를 잡는다. 둘의 관계는 더욱더 멀어진다. 따라서 왕에게 간언하거나 설득하는 사람은 왕이 자기를 사랑하는지, 아니면 미워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리고 난 후 실행해야 안전하다. '만사 불여튼튼'이라 했으니, 상사의 마음을 튼튼하고 꼼꼼하게 살펴 나쁜 것은 없다.

    

역린(逆鱗)이 아니라 순린(順麟)을 따르자.

용이란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 있다. 용의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그것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훌륭한 설득이다. 군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역린을 피하는 길이다. 왕이 지배하는 엄혹한 봉건 시대의 이야기다.


여기서 용의 비늘이 거꾸로 선 비늘을 건드린다는 역린(逆鱗)이란 말이 나왔다. 군주에게 대들거나 군주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일이 곧 역린이다. 현대에 와서는 역린이라는 말이 과거처럼 그렇게 쓰이지 않는다. 왕조시대의 권위주의적인 용어라 일상에서 잘 쓸 일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불필요하게 상사의 기분을 거스르거나 화를 돋울 필요는 없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역린이라 할 수 있다.     


상사가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내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다. 과감하게 부당하다고 말할까? 아니면 군소리 없이 복종할까? 사람들이 상사의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고 거부할 것 같지만, 뜻밖에 사람들은 상사의 부당한 명령에도 쉽게 굴복한다. 1961년 예일 대학교의 심리학과 조교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권위와 복종' 실험에서 이 사실을 증명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권력이나 권위에 약하다. 예나 지금이나 목구멍은 늘 포도청이었다.


직장인들은 상사의 거꾸로 선 비늘을 건드리는 역린(逆鱗)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제 결대로 누운 비늘을 따르는 순린(順麟)을 택한다. 사람은 한 번 권위에 복종하면 그것을 습관화한다. 스스로 결정하기 힘든 험한 세상에서 차라리 권위자에게 결정을 위임하고 그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속 편하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 지도자를 따르기로 마음먹으면, 뒤도 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정말 상사가 정말 마음에 안 든다면 한판 붙을 수도 있다. 수틀리면 화끈하게 역린을 행하고 사표 던지면 된다. 그러면 상사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않는 삶은 불안하다. 혼자서는 삶의 의미도, 방향 감각도 찾지 못하고, 경제적·정서적 궁핍 속에서 살지도 모른다. 혼자 버려졌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가자니 밖은 엄동설한이다. 이래저래 상사의 눈치를 보지만, 그래도 두 주먹 불끈 쥐고 산다.


불의를 보고 참지 말고 바른말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세상 이치가 어디 그런가? 직장에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 수 없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배알 없는 사람처럼 산다. 누군 큰소리칠 줄 몰라 안 치는 건 아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했으니 떠날 곳이 없으면 버텨야 한다. 사람들은 역린이 아니리 순린을 따르면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산다.


셰익스피어의《햄릿》 1막 2장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라는 대사가 나온다. 햄릿이 자기 아버지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숙부와 재혼한 어머니를 원망하는 말이다. 이 말을 이렇게 바꿔야 할 것 같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월급쟁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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