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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Nov 27. 2022

삼매경(三昧境)이 주는 쾌락에 빠져볼까?

사탄의 가래 히로뽕과 주님의 은총 코카인

"히로뽕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탄의 가래 같은 것이고, 코카인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주님의 은총이야!!"라고 전요환(배우 황정민) 목사가 소리친다. 사실 히로뽕이나 코카인이 나쁜 거야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영화 '수리남'의 전요환 목사가 히로뽕을 비난하는 건 과거 히로뽕 때문에 고생한 악연 때문이다.                

히로뽕이나 코카인은 인위적으로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인공의 화학물질로 마약이라 부른다. 마약은 머릿속의 쾌감 신경을 강제적으로 뒤흔들어 쾌락 물질인 도파민을 분수처럼 솟아나게 한다. 사람들은 정상적인 수치보다 수백 혹은 수천 배나 강한 쾌락을 한순간에 얻는다. 문제는 마약이 강한 중독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처음 마약을 복용하면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한다. 마약의 화학 성분이 쾌락 물질인 도파민을 용솟음치게 한다. 신기하게도 우리 뇌는 갑자기 한꺼번에 도파민이 분출하는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몸은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恒常性) 기능을 갖고 있다. 과도한 도파민을 분비를 억제하고 정상으로 돌려놓는다. 이제 같은 양의 마약을 복용해도 처음만큼 도파민이 콸콸 솟지 않고, 높은 괘감을 얻지 못한다. 처음 느낌이 무뎌지는 순간 중독으로 가는 열차에 올라탄 것이다.                


마약이 주는 지독한 쾌락을 맛본 사람은 그때의 그 짜릿한 황홀감을 잊지 못한다. 처음 맛본 그 쾌락을 맛보기 위해 마약 복용량을 늘린다. 우리 뇌는 이것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 자연스레 두뇌는 쾌락의 도파민을 억제한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 뇌는 마약에 내성을 갖는다. 아무리 복용량을 늘려도 도파민 수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상태가 되면 마약 중독자는 더 강력한 새로운 마약을 찾아 헤맨다. 이미 뇌의 신경회로가 너덜너덜해진 상황이라 마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발작을 일으킨다.     

           

최근 유명 작곡가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최근 마약 사범이 급증하며 한국이 '마약 신흥시장'으로 전락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온다. 마약에 중독됐을 때 우울, 불안, 피해망상, 관계망상, 폭행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금단 증상으로 우울, 피로, 악몽, 두통, 근육통 등이 나타난다. 최근 3년(2016~2019년)간 마약류를 투약 또는 흡입한 후 범죄를 저지른 건수가 이틀에 한 번꼴로 발생한다.      

세계적인 저명인사라고 마약의 중독성을 피해갈 수 없다. 프랑스 위대한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시집 <악의 꽃>에서 마약의 황홀경을 묘사했다. 그는 아편 중독 때문에 금치산자 선고까지 받았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도 말년에 마약중독에 시달렸다. 아르투르 랭보(Arthur Rimbaud, Jean Nicolas Arthur Rimbaud)는 장미처럼 화려하고 비수같이 날카로운 감성으로 19세기의 유럽 시단을 사로잡았다. 그런 그도 동성 연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은 마약 때문에 파멸했다. 

    

삼매경(三昧境)에 빠지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충실하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때 도파민이나 엔도르핀 같은 쾌락 물질이 분비된다. 이들은 인체가 만드는 천연의 마약이다. 우리 몸속에서 분비되는 천연의 쾌락과 행복의 물질은 무언가에 몰입할 때 잘 생성한다. 가장 대표적인 몰입 상태인 ‘삼매경(三昧境)’에 빠지면 어떤 환각 물질보다 더 강한 황홀감을 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뇌를 망가뜨리거나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으니 좋은 쾌락이자 즐거움이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 즐겁다”, “요리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노래 삼매경에 빠져 세상 좋다”. 이렇게 뭔가 깊이 빠져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무언가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거움을 느끼면, 우리는 삼매경(三昧境)에 빠졌다고 말한다. 열심히 책을 읽거나 요리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도 듣지 못한다. 주위에 신경 쓸 겨를 없이 하는 일에 몰입한다. 아무 생각도 없고, 의식도 없고, 자기 자신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의식마저 잊어버리는 삼매경을 ‘무아지경’(無我之境)이라 부르기도 한다. 둘 다 자기 존재조차 잃어버린 몰입의 경지를 뜻한다. 무아지경(無我之境)이라는 말은 한자 뜻을 풀어보면 대충 이해가 된다. 그런데 삼매경(三昧境)은 무슨 뜻인지 감이 안 온다. 세(三) 가지 깨달은(昧) 경지(境)란 게 뭘까? 첫 번째는 뭐고, 두 번째는 뭘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사실 그 말의 근원을 알고 보면 부질없는 궁금증이다. 


삼매(三昧)는 한자 뜻을 가진 말이 아니다. 산스크리트어 삼마디(samadhi)를 한자음으로 표기했다.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한곳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해 번뇌를 끊는 경지가 삼매, 즉 삼마디이다. 불교에서 일컫는 수행의 최고 단계이자 진리를 깨달아 무아에 도달하는 것을 삼매라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삼매(三昧)는 정신을 집중하여 어떤 한 가지 일에 몰입하여 잡념이 사라진 상태를 일컫는다. 


정신을 한곳에 집중해 몰입하면 어느 순간 번뇌가 사라진다. 혼란, 의심, 분노, 흥분과 회한, 심지어 감각적 쾌락의 욕망조차 사라진다. 나라는 존재조차 잊어버리는 무아지경에 이른다. 흐트러질 마음조차 망각하니 마음이 평온할 수밖에 없다. 나와 사물을 의식하지 않으니 당연히 분별도 없다. 오직 청정한 마음만 남는 것이 삼매이자 무아의 세상이다. 


중국 청(淸)나라 말기의 대학자 왕국유(王國維)는 유아지경(有我之境)과 비교해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그는 “유아지경(有我之境)은 내 입장에서 사물을 본다. 그래서 사물이 모두 내 색채로 물든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유아지경은 엄연히 나를 의식하며, 그 의식의 기준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내 욕심과 욕망의 잣대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유아지경이다. 이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마음의 상태가 곧 무아지경이자 삼매경이다. 


소소한 무아(無我)의 즐거움

사람이 삼매경에 빠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마음은 지극히 평온하고 자아가 사라진다. 몸의 고통도 사라지고 편안한 상태만 온전히 남는다. 동시에 의식의 연상작용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황홀감이 온몸을 감싼다. 이때 전전두엽은 깨어 있어 의식만은 새벽 별처럼 또렷하다. 이러한 절대적 일체 상태에 도달한 순간 평생토록 못 잊을 정도의 강렬한 황홀감을 느낀다.     


뇌과학 분야의 저명한 저술가 박문호 교수는 삼매와 몰아의 순간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의지적 몰입 상태를 지속하면 우리 뇌에서 과도한 억제가 순간적으로 과도한 흥분으로 바뀐다. 이렇게 되면 뇌의 송과체에서 멜라토닌 호르몬이 다량으로 분비된다. 적정한 멜라토닌은 잠에 빠지게 하지만, 멜라닌 호르몬이 극한적으로 생성되면 뇌는 완전한 평정심을 얻는다.     


뇌가 평정심을 찾고 몸과 마음의 절대적 일체 상태가 더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멜라토닌에서 일종의 환각 물질이 합성된다. 이 물질은 유체 이탈이나 죽음 같은 환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시간과 공간을 왜곡하고 통증을 완화한다. 삼매경에 빠진 사람은 청정한 마음을 얻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무아지경의 즐거움을 맛본다.      


삼매경에 도달한 사람들은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몰입의 경지에 이르면 즐거움과 기쁨이 한정 없다고 말한다. 삼매경에서 얻는 행복감은 남녀의 섹스 쾌감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말한다. 또 어떤 환각 물질보다 더 강한 황홀감을 준다. 지고지순의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삼매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일 것이다. 


일반인은 감히 이런 경지를 바랄 수는 없다. 자기 일에 열중해 얻는 소소한 무아(無我)의 즐거움도 좋다. 산을 오르거나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좋다. 꽃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지고지순한 삼매의 경지가 아니면 어떤가.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을 얻고 행복을 느끼는 것도 값진 일이다. 자주 몰입하다 보면 기쁨을 느끼는 시간도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고승의 지혜까지는 아니라 해도 삶의 작은 지혜를 얻고 작은 삼매에 빠질 것이다.       


독서의 계절 가을도 지났다. 오죽 책을 읽지 않으면 독서의 계절까지 만들었을까 안타깝다. 하긴 일상이 워낙 바쁘다 보니 마음 편히 책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온종일 일에 시달리다 보면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된다. 너덜너덜해진 영혼에 글자가 제대로 들어오기 쉽지 않다. 그래도 잠시 짬을 내어 짧은 글 한 편 읽고, 시 한 편 읊으면 작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책 읽는 데 계절이 뭐 중요한가. 마음만 먹으면 사시사철이 독서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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