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Nov 27. 2022

지나치게 꾸짖지 말고, 너무 고상하게 가르치지 마라

지나치게 꾸짖지 말고, 너무 고상하게 가르치지 마라

'남의 잘못을 꾸짖을 때는 너무 엄하게 하지 마라.     

 그가 받아들여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좋은 말로 남을 타이를 때에는 너무 고상하게 하지 마라.     

 그가 알아듣고 따를 수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 명나라 말기에 문인 홍자성(洪自誠, 1573~1619)이 쓴 이 책은 지금부터 약 600년도 더 전의 책이다. 그때도 남을 가르치는 일은 어려웠나 보다. 이 이야기를 자녀 교육에 적용하면 당시 사람들의 교육관이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너무 엄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르지도 않게 자녀를 교육하는 일은 참 어렵다. 자녀 교육을 말처럼만 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모든 부모가 갖는 고민이다. 너무 심하게 혼내면 자신감을 잃고, 너무 고상하게 말하면 혼나는 줄도 모른다. 엄마가 우아하게 말을 해도 아이가 한 번에 알아듣고, 야단쳐도 상처받지 않으면 참 좋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아이들 공부만 생각하면 부모들은 늘 마음을 졸인다. 부모는 허리띠를 졸라가며 아이가 원하는 걸 다해준다. 어디서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득달같이 달려간다. 이렇게 부모는 애지중지 아이를 키운다. 그런데도 오히려 마음이 아픈 아이는 더 많아진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아이의 강박증이 문제다. 


부모는 아이가 경쟁에서 조금만 뒤떨어져도 노심초사한다. 경쟁에 밀리지 않을까? 혹시 우리 아이만 낙오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아이가 조금만 이상해 보여도 병원을 찾는다. 그냥 지켜만 봐도 나아질 일을 견디지 못한다. 넘쳐나는 설익은 정보에 익숙한 부모가 오히려 조급증에 빠진다. 아이를 믿고 느긋하게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지만, 막상 부모가 되면 그게 잘 안된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헌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훌륭한 자녀 교육의 3요소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다. 최근에는 할아버지의 재력은 어떨지 몰라도 아빠의 정보력도 만만치 않게 좋아졌다. 아빠들도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고 검색하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문제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얻는 교육 정보가 다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글링(Googling)해보니 답이 나오네. "바로 이거야!!"

미국의 국제학술 전문가 톰 니콜스(Tom Nichols)의 『전문가와 강적들』(2018, 오르마)에서 말했듯이, 인터넷의 오염된 정보들이 부모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니콜스는 인터넷의 범람하는 정보는 모든 사람을 얼치기 전문가도 만드는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구글 검색이나 네이버 검색을 통해 얻은 자녀 교육 정보를 마치 진짜인 양 믿는 순간 문제를 키우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인터넷 검색 순위가 높은 정보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은 다수의 의견이 ‘사실’과 마찬가지라는 잘못된 인식을 만들어 낸다. 생각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주고받는 SNS 정보가 정설도 둔갑하는 일도 일어난다. 몇 번의 구글링(Googling)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으면 "바로 이거야!!"라고 소리친다. 자칭 전문가가 되는 순간이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사람 중에는 특정 분야의 지식이 풍부한 사람도 있다 취미생활로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한 사람이다. 문제는 그들이 아는 것은 부분이고 전체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종합적으로 연구한 전문가들이 볼 때, 깊이가 얕고 사실 확인조차 불가능한 말들도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전문가의 의견보다 아마추어 강적들의 신랄한 비판에 더 열광한다. 나름 이론으로 무장한 아마추어 강적들은 사람의 궁금증을 화끈하게 해소해 준다.


세상이 빛의 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른들이라고 중뿔난 재주가 있는 건 아니다. 어른들조차 무엇이 중한지 분간하기 힘든 세상이다. 한때는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멀리했다. 지금은 그보다 더 강력하고, 더 빠르고, 더 감각적인 동영상 스트리밍이 세상을 점령했다. 사람들은 유튜브가 무슨 정보의 보고인 줄 안다. 정작 부도는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이 아이들의 뇌를 바보로 만든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인터넷은 뇌 구조를 바꾼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이자 IT 미래학자인 니콜라스 카(Nicholas G. Carr)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2020, 청림출판사)에서 인터넷은 우리 뇌 구조를 바꾼다고 말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그 어느 때보다도 쉽고 빠르게 정보를 검색하고 획득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인터넷의 링크 기능은 문서와 문서, 정보와 정보 사이를 건너뛰게 해 주었다. 니콜라스 카는 웹에서 검색할 때는 우리는 숲을 보지 못하고, 심지어 나무조차도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잔가지와 나뭇잎에 보고 전부를 아는 양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일 마우스를 앞뒤로 스크롤 해 키워드를 찾고, 시도 때도 없이 이메일을 확인하고, 시답잖은 뉴스를 보느라 정신없다. 스마트 폰과 구글은 우리가 뭔가를 깊이 생각하고 진득하게 기다리는 습관을 버리게 했다. 우리의 뇌는 점점 단순화되고 심지어 생각하는 뇌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인터넷, 구글, 스마튼 폰이 우리의 삶에 새로운 질감과 속도를 선사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리의 뇌 구조가 바뀌는 비용을 지불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 덕분에 우리는 정보는 더 빠르게, 더 많이, 어디서든 얻을 수 있다. 길을 가면서도 스마트폰에 눈길을 주고, 앉으나 서나 손에서 놓지 않는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의 옮음과 다름을 생각할 겨를 없이 그곳으로 빨려든다. 어른들도 주체하지 못하는 현대 기기의 악마적 매력 앞에 아이들은 한없이 취약하다.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정보에 노출됐다. 


아이들이 머리를 덜 쓰는 만큼 뇌의 신경회로는 버려진다. 사용하지 않는 전선이 삭아 끊어지듯, 사용하지 않은 시냅스도 끊어진다. 뇌세포가 하나둘 소멸하기 시작한다. 현대 뇌과학은 시냅스의 단절은 끝내 뇌세포를 소멸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특히 단기 기억을 관리하는 해마의 시냅스가 끊어지면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뇌에서는 이런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한 기념으로 스마트폰을 사준다고 해보자. 어쩌면 더 어릴 때 이미 선물했을 수도 있다. 아이는 유튜브의 빠르게 변하는 화면을 좋아한다. 사고력과 분별력이 완성되지 않는 아이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화려한 영상의 홍수에 빠져든다. 스트리밍 동영상의 빠르고 화려한 화면은 아이의 머리에 가볍고 경쾌한 즐거움을 폭포수처럼 선사한다. 아이에게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고 그럴 필요가 없도록 만든다. 


생각이 사라진 아이의 뇌는 당황한다. 그동안 엄마가 읽어준 동화책, 여러 곳을 다닌 여행 등 수많은 지식과 경험으로 연결된 뇌 신경회로가 헝클어진다. 촘촘하게 자라던 논리와 사고의 시냅스는 하나둘 끊어진다.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오락물들이 아이들의 시냅스를 기형적으로 만든다. 물론 첨단 기기들도 아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아직 두뇌가 여물지 않은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삼매경(三昧境)이 주는 쾌락에 빠져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