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Nov 28. 2022

빛의 소나타, 빛의 여정과 독자생존(讀者生存) 전략

빛의 소나타 4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어도 물리학은 아름답다.

한때 색의 유혹에 빠졌다. 그것을 계기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다른 전공자가 그림을 공부하는 건 어렵다. 그림에 큰 소질이 없으니 그리는 시늉만 했다. 그 덕분에 아름다운 색의 세계를 만났다. 색의 역사와 의미도 알게 됐다. 화가들이 지닌 뛰어난 재능과 그것을 발현하기 위해 쏟은 그들의 노력도 봤다. 재능만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닌데 재능조차 없다면 슬픈 일이다.


그림 솜씨에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가 들었다면 건방지다고 지청구를 들을 법하다. 그리는 것도 좋지만, 관심은 점차 색과 화가의 삶으로 쏠렸다. 그러다 문득 색은 어디서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프리즘을 통해 빛을 구별한 뉴턴의 실험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다. 빛이 대기 중에서 산란하면 여러 가지 색의 빛을 뿌린다는 사실까지는 알았다.


문제는 빛이다. 빛은 어디서 왔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까짓것 책을 읽으면 알겠지, 고민할 게 뭐 있나. 그런 무모한 생각으로 덤볐다. 그러나 빛의 세계는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내게는 미지의 분야인 물리학과 화학의 영역이었다. 빛도 한 종류만 있는 게 아니다. 빛은 전기적 성질과 자기적 성질을 동시에 갖는 전자기파다.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갖는 빛의 이중 슬릿 실험까지는 그런대로 버텼다. 


너무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너무 많이 알려고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을 다쳤다. 정말 세상은 넓고 천재가 많다. 그들은 자연에 숨겨진 법칙을 찾아냈다. 처음에는 도대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면서 나의 무지와 머리의 한계를 느끼고 절망했다. 내가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의 무지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빛의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물리학과 수학의 거대한 장벽을 만났다. 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이라는 비전공자가 말만 들어도 난해한 학문과 맞닥뜨렸다. 고등학교 때 배운 문과 수학의 얕은 지식으로 들이댔다가 혼쭐이 났다. 불확정성 정리, 슈뢰딩거 방정식, 힐베르트 공간, 함수해석학, 리만 기하학 등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용어가 쏟아졌다.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복잡한 수식을 보고는 숨이 턱 막혔다. 


꼭 이런 걸 알아야 하나? 당연히 몰라도 된다.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나의 지적 허영심이 나를 외통수로 몰았다.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알 수 있는 것만큼만 공부하자고 결심했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다 목이 삐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수박의 겉이라도 핥아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날 이후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됐다. 


이해할 만큼만 이해하는 것도 비전공자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독자생존(讀者生存)이라는 비장의 전략을 세웠다. 읽고 또 읽다 보면 생존할 것이라고 믿었다. 최근에 나온 책은 사서 읽지만, 대개 학교 도서관이나 구청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그도 저도 안 되면 온라인으로 중고 책을 샀다. 그 와중에 간간이 유튜브의 과학 영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물리학을 제대로 전공한 사람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어렴풋이 깨치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갓 태어난 아기 코끼리의 걸음마라 할 수 있다.


수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생각의 실험실

지금도 나는 물리학과 화학의 문외한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집중적으로 읽고 봤다. 전공자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송구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내가 깨친 것이 있다면 물리학이 참 아름다운 학문이라는 사실이다. 세상과 만물을 지배하는 법칙을 찾아낸 것이 물리학자들이다. 신의 영역인 우주를 인간의 품으로 돌려준 뉴턴, 시공간과 블랙홀의 존재를 오직 사유로서 찾아낸 아인슈타인, 불확실성과 확률로만 존재하는 양자의 세계를 밝힌 닐스 보어와 리처드 파이만, 이들의 황홀한 이야기에 매료됐다.


도대체 이들의 뇌 구조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조차 궁금해졌다. 아마 수학과 물리학의 원리를 이해하는 시냅스가 엄청나게 발달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그들의 뇌 구조는 일반인과 다르다. 게다가 그들은 평생 공부했다. 생각하고, 사유하고, 실험했다. 처음부터 머리가 뛰어난 것도 맞지만, 이렇게 노력했으니 천재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원래 천재였잖아" 그렇다고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 것이 용서될까.


아인슈타인만 해도 그렇다. 그가 살던 1900년 초반에는 우주를 나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달을 탐사한다 어쩐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그런데도 아인슈타인은 질량이 큰 별 주위의 시공간이 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우주와 우리의 세상을 지배하는 힘, 즉 중력이 왜 생기는지를 시원하게 설명했다. 스위스 특허청 말단 공무원인 그가 오직 생각의 실험실에서 해낸 위대한 업적이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이라는 사유의 망원경을 들고 우주의 질서를 본 것이다.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나 리처드 파이만(Richard Phillips Feynman)은 또 어떤가. 당시에는 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현미경으로도 절대 볼 수 없었던 원자 내부를 이렇다 저렇다 말했다. 전자는 불연속적으로 움직이고 위치를 확정할 수 없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한 것이다. 물리학계의 거인 아인슈타인조차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그들을 핀잔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수학이라는 사유의 현미경으로 원자 내부의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이들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말 그대로 수박의 겉을 열심히 핥은 거나 다름없다. 감히 비전공자가 그들의 복잡한 공식이나 방정식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가끔 수학을 좀 더 알았으면 이들의 방정식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다. 내가 수학을 안다고 해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어쨌든 다른 많은 석학의 친절한 해석을 통해 그들이 무얼 말하고자 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수학과 화학, 심지어 경제학, 심리학, 경영학 등 어느 학문인들 위대하지 않은 학문은 없다. 그 가운데서도 물리학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력을 비전공자가 감히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138억 년이라는 장구한 우주의 역사와 비교하면, 인간의 삶은 찰나라는 사실에 고개 숙일 수 있는 것도 물리학이 찾아낸 법칙 덕분이다. 그러니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지만 물리학이 아름답다는 생각만큼은 떨칠 수 없다. 


빛의 근원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좌충우돌한 경험을 적었다. 빛의 소나타라는 제목으로 지금까지 3편을 글을 올렸다. 이번이 4편째 글이다. 앞으로 두 편 정도 더 올리고 마무리할 생각이다. 참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새로운 것을 아는 즐거움이 크다.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부지런히 발품을 하는 것 말고는 용빼는 재주가 없다. 그래도 요즘은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잘 마련되어 있어 참 다행이다. 


두뇌의 기본 구조와 기능을 공부하고 브레인 트레이너 자격증을 딸 때도, 또 한 번 혼이 났다. 그때도 독자생존(讀者生存) 전략을 이용했다. 필요한 책을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덕분에 우리나라의 지적 인프라도 잘 갖춰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역의 구청 도서관에서 대출증을 만들면 다른 구청 소속 도서관도 이용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구청 도서관에서 각각 5권까지 책을 3주 동안 빌릴 수 있다. 내가 사는 시의 구청 도서관들은 야간 대출도 가능해 얼마나 편리한 줄 모른다. 


따지고 보니 틈틈이 유(튜브) 선생님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럼 시자생존(視者生存) 말을 덧붙여야 하나. 발음이 영 어색하다. 역시 입에 착 감기는 맛은 독자생존(讀者生存)이 으뜸이다. 이보다 나은 공부 전략을 찾기 힘들다. 그러니 앞으로도 부지런히 읽고 또 읽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지나치게 꾸짖지 말고, 너무 고상하게 가르치지 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