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소나타 5
빛은 태양의 후예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이야기다. 별 헤는 밤은 애절하면서도 이국적이다. 시에는 많은 별이 등장한다. 시인은 계절이 지나는 가을 하늘에 가득한 별을 센다. 그러다 쉬이 오는 아침 때문에 가슴속에 하나둘 새는 별을 이제 다 못 새는 걸 안타까워한다. 시인은 아스라이 먼 북간도에 계신 어머님을 불러본다.
오늘 밤하늘에도 많은 별이 빛난다. 그 별 가운데는 윤동주 시인의 별도 있을 것이다. 별 가운데는 위치를 바꾸지 않고,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을 항성(붙박이별)이라 부른다. 태양계에서 스스로 빛나는 붙박이별은 태양 하나밖에 없다. 태양을 중심으로 돌며 빛을 내는 지구나 수성 같은 별들을 떠돌이별(행성)도 있다. 저 넓은 우주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붙박이별도 많다. 그보다 더 많은 떠돌이별이 오늘 밤하늘을 수놓을 것이다.
붙박이별인 태양의 빛에서 색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빛은 전자기파로서 다양한 종류의 파장을 띤 빛의 뭉치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는 통칭해서 빛이라 말하나 파장의 종류에 따라 빛의 이름과 성질도 다르다. 빛 가운데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가시광선이라 한다. 가시광선이 대기 중에 있는 분자 혹은 입자 등과 만나 산란하면서 색깔을 세상에 뿌린다.
빛은 태양에서 태어났다. 말하자면, 빛은 태양의 후예다. 태양의 내부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부글부글 끓는다. 그 뜨거운 열기가 세상을 밝히는 빛을 만들고, 그 빛으로 지구는 밝게 빛난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숨 쉬며 사는 것은 다 빛 덕분이다. 빛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소중한 존재다.
태양은 어떻게 해서 스스로 빛을 낼까? 본격적으로 빛의 근원을 찾는 여행을 수소 원자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자. 태양은 수소 원자를 융합해서 빛을 만든다. 만일 태양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수소로부터 무한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수소 원자는 양성자 1개, 전자 1개로 구성된 아주 깔끔하고 심플한 원자다. 수소뿐만 아니라 모든 원자의 중심에는 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불연속적으로 돌고 있다. 당연히 수소의 전자도 양성자 주위를 돌고 있다. 평소에는 양성자와 전자 사이에 강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 이 힘이 전자가 궤도를 벗어나거나 혹은 양성자로 빨려드는 것을 막아준다.
태양 내부의 수소의 원자핵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빛이 만들어진다. 수소의 핵과 핵이 융합이 빛의 탄생 비결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빛이 지구에 도착하면 색채를 뿌리고 생명체의 에너지를 제공한다. 태양 내부의 수소 원자는 색채를 만드는 주재료라고 할 수 있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원소로서 가장 흔한 물질이기도 하다.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 총수의 90%를 차지하며 전체 질량의 약 75%가 수소다. 태양은 수소 92%, 헬륨 8%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구의 물이나 화석연료,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 속에 수소가 포함되어 있다.
빛은 태양 내부의 핵융합으로 탄생한다.
그러면 이제부터 태양이 어떻게 스스로 빛을 만드는가를 알아보자. 이것을 이해하려면 핵융합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본격적으로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태양 내부는 수소로 가득하다. 수소 원자는 양성자, 즉 핵이 하나뿐이다. 4 개의 수소 핵을 합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개념을 생략하고, 간단하게 개별 수소 원자 4개를 융합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체한다.
수소 핵융합 반응을 위해서는 약 1억℃의 높은 온도와 엄청나게 높은 압력이 필요하다. 태양의 중심부 온도는 약 1,500만℃로 1억℃보다 낮지만, 태양 내부의 압력이 엄청나게 높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수소 원자가 플라스마(plasma) 상태가 된다. 플라스마 상태에서는 몸집이 가벼운 핵과 핵은 엄청난 압력 때문에 초고속으로 충돌한다. 그 충격의 강도가 너무 강해서 핵과 핵은 융합하게 된다. 이것을 핵융합 반응이라고 하다.
사실 핵융합으로 만드는 에너지는 핵분열이 만드는 에너지보다 훨씬 인체에 안전하고 에너지의 양도 많다. 핵분열은 방사능을 내뿜고, 이것이 생명체의 DNA를 파괴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핵분열 원자력보다 핵융합 원자력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맞는 이야기다. 그것을 위해 과학자들이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핵과 핵을 융합하려면 먼저 핵(양성자)과 전자를 결합하는 강한 힘을 해체해 둘 사이를 떼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양성자에서 전자가 떨어져 움직이는 물질의 상태를 플라스마 상태(plasma)라고 한다. 플라스마 상태가 돼야 몸이 가벼워진 핵들이 고속으로 충돌해 융합할 수 있다. 원자의 내부를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1억℃의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온도를 1억℃로 올렸다 해도 그것을 담을 그릇을 만드는 것까지 감안하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핵과 핵이 융합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원자 내부를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플라스마(plasma), 이게 무슨 말인가? 자연과학 전공자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지만, 비전공자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여기서 플라스마 상태가 뭔지 알아보고 이야기를 계속하자.
물질의 상태는 고체, 액체, 기체 그리고 플라스마의 네 가지가 있다. 고체는 분자(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단단히 결합한 상태고, 액체는 분자(원자)들이 고체보다 느슨하게 결합했다. 기체는 분자(원자)들이 떠다니는 불안정한 상태지만, 원자 내부의 양성자와 전자는 강한 힘이 작용한다. 수소 원자 내부의 핵(양성자)과 전자의 강한 힘을 해체해 수소 원자핵을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려면 1억℃의 온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태양 내부의 엄청난 고압으로 온도가 1,500℃에서도 수소 원자는 플라스마 상태가 유지된다.
드디어 만난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E=mc²)
자, 이제 태양 내부의 수소 핵융합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중심부의 1,500만℃의 온도와 높은 압력으로 4개의 수소 원자핵이 융합하여 헬륨(hellum) 원자로 변한다. 이때 합쳐진 수소 4개 핵의 질량은 합쳐진 헬륨 핵을 합친 질량과 크기가 같아야 한다. 신기하게도 개별 핵의 질량을 합한 것보다 합해지면 핵의 질량이 감소한다. 그 감소하는 질량이 엄청난 에너지를 생산한다.
물리학계의 영원한 슈퍼스타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는 크기가 같다는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를 말했다. 말하자면, 질량이 줄어든 만큼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때 줄어든 질량이 내는 에너지가 얼마일까?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 방정식, ‘E=mc²(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빛의 속도)’으로 줄어든 질량이 만드는 에너지 값을 계산할 수 있다. 핵이 융합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크기는 사라진 질량(m)에다가 빛의 속도(c)의 제곱을 곱한 값이다.
그림에서 4개의 수소 원자핵의 질량을 합하면 4.032다. 이것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헬륨 원자핵의 질량은 4.003이다. 둘 사이에는 약 0.029(약 0.7%)의 질량 차이가 생겼다. 이 감소한 만큼의 질량이 에너지와 빛을 만든다. 이때 만들어지는 에너지의 크기는 0.029에다 빛의 속도(초속 약 30만 킬로미터)의 제곱을 곱한 값이다. 태양 내부에서는 매초 7억 톤의 수소가 헬륨으로 변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태양은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와 빛을 방출한다.
자, 다시 정리해보자. 태양 내부의 수소 원자는 플라스마 상태다. 전자와 분리된 핵이 빠르게 움직인다. 태양 내부의 엄청난 압력은 핵과 핵을 정면으로 충돌하게 만든다. 초고속으로 충돌한 핵은 융합한다. 이 과정에서 감소하는 질량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빛을 만든다. 이렇게 탄생한 빛은 우주 공간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태양의 핵융합으로 탄생한 빛은 8분 뒤면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에 도착한다. 대기권으로 들어온 가시광선은 공기 분자와 충돌하고 산란한다. 드디어 파란 하늘이 보이고 해 질 녘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든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빛의 축복에 싸인다. 빛은 식물의 광합성 작용을 가능하게 하고, 지구 생명체의 생존을 가능하게 만든다.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움직이고 인간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빛의 선물이다. 윤동주 시인이 애절하게 노래한 그 많은 별도 태양의 빛을 받아 반짝인다. 태양계 밖의 별들은 또 어느 다른 붙박이별이 핵융합으로 만든 빛을 받아 반짝일 것이다.
볕이 좋은 날에는 태양의 후예들이 쏟아지는 분부신 거리를 걷자. 온몸 가득 따스한 햇볕을 받으면 행복에 젖는다. 그러다 밤이 오면 밤하늘을 올려보자. 태양 빛으로 빛나는 별들을 세다 보면 어느새 시인을 닮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