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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Nov 25. 2022

빛의 소나타, 파랗게 멍든 하늘과 붉은 미소의 저녁노을

빛의 소나타 3

가을 하늘은 더 파랗다.

우주 비행사가 되어 칠흑 같은 우주 공간에 떠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 눈앞으로 한 줄기 빛이 지나간다. 우리는 그 빛을 볼 수 있을까? 지난번 쓴 브런치 글에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빛을 산란시킬 입자나 물체가 없는 공간에서는 빛의 존재를 볼 수 없다.      


"어 밝은 빛이 보인다."


우리는 초록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밝은 빛줄기를 보고 이렇게 소리친다. 비 그친 후 구름 사이로 환한 빛기둥이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빛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빛을 보는 것은 아니다. 우리 눈에 비치는 한줄기 빛은 빛이 지나는 길에 존재하는 먼지나 미세한 물방울의 흔적이다. 이 입자들에 닿은 빛이 자신의 하얀 속살을 살짝 드러낸 것이다.


공기도 없고, 물방울도 없고, 먼지도 없다면 빛을 볼 수 없다. 빛은 분명 우리 곁에 있지만,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다. 무언가에 닿아 부딪히고 흩어지는 산란 현상이 없다면, 우리는 빛이 있는지 모른다. 이처럼 대기 중에 아무것도 없다면, 완전한 진공 상태와 같다면 우리는 빛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다.


빛이 지구의 대기에 도달하면 가시광선보다도 짧은 파장을 갖는 빛들은 오존층에서 대부분이 흡수된다. 자외선을 뺀 가시광선과 적외선이 대기로 진입한다. 파장이 짧은 빛이 공기층의 작은 입자에 부딪혀 차례차례 산란한다. 파장이 긴 빛은 지표면에 가까이 와서 산란한다.


물감의 색을 다 합치면 검은색이 되지만, 여러 종류의 빛을 모으면 하얀색이 된다. 이것이 물감의 색깔과 빛의 색깔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백색의 빛 속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빛이 모여 있다. 색깔이 다른 빛은 길이, 즉 파장이 다르다. 이 파장의 차이 때문에 시시각각 서로 다른 색깔의 빛이 하늘에 뿌려진다. 각기 다른 파장의 빛이 시시각각 하늘에서 흩어지기 때문에 하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바꾼다.       


사진 출처 : https://m.blog.naver.com/rawlife125/221385335815


공중의 대기는 투명하고 눈에 띄지 않지만, 공기 분자들이 존재한다. 이들 공기 분자는 햇빛과 부딪히고, 빛을 미세하게 쪼갠다. 파장이 짧은 빛은 크기가 작은 공기 분자와 부딪혀 쉽게 산란한다.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파장이 짧은 보라색과 파란색 빛은 공기 분자와 부딪혀 산란한다.


반면에, 파장이 긴 빨간색 빛은 공기 분자를 건너 통과한다. 그래서 높은 하늘에서는 보라색과 파란색이 먼저 산란한다. 우리 눈은 보라색보다 파란색을 더 예민하게 반응해 한낮의 하늘이 파랗게 보인다. 하늘에는 산란하는 빛이 남긴 파란 멍자국으로 얼룩진다.   

   

가을 하늘은 다른 계절의 하늘과는 달리 유난히 더 파랗다. 가을에는 대기가 건조해져 대기 중 수증기의 양이 크게 줄어든다. 또 지표면에서 상승하는 기류도 약해져 하늘의 먼지도 많이 올라오지 않는다. 시야를 방해하는 것들이 사라지면 하늘에서 산란한 파란빛이 우리 눈에 잘 들어온다. 이 때문에 가을 하늘은 봄이나 여름의 하늘보다도 더 푸르고 더 높아 보인다.


본격적으로 찬 바람이 불면 하늘은 코발트 빛으로 변한다. 더 투명하고 더 선명한 파란빛을 뿜어낸다. 파랑들은 앞다투어 하늘 위에서 부서지고 산란한다. 처연한 그들의 빛깔이 눈부신 파란빛을 연출한다. 이때쯤이면 가을빛 아래 사과 한 알도 맹렬하게 향기를 뿜는다. 달콤한 꿀맛을 내기 위해 햇빛에 속을 태운다. 여름 태양에 익고 가을빛 아래 발효하면서 농염한 달콤함이 짙어 간다.


은행의 노란 잎이 거리를 풍성하게 만들 때면 가을은 처연해진다. 눈이 아려 제대로 올려보지 못할 만큼 하늘은 파란색으로 빛난다. 울트라마린(ultramarine)의 파란빛이 가을의 대미를 장식한다. 거리를 지나는 여인들은 옷깃을 여밀 채비를 차린다. 그녀들은 어느새 무릎 아래로 코트 깃을 내린다. 후드득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붉은 단풍잎이 애처로워진다.


노을만 불게 타는데

저녁 하늘이 왜 붉게 탈까? 그걸 알려면 태양의 고도와 빛의 거리를 알아야 한다. 태양은 그 자리에 있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는 하루 한 바퀴씩 돈다. 그때마다 태양의 고도는 서서히 높아졌다가는 또 서서히 낮아진다. 그만큼 태양을 떠난 빛이 달려오는 거리도 줄었다 늘었다 한다.


한낮의 햇빛은 머리 위에서 수직에 가깝게 짧은 거리를 이동한다. 이때 파장이 짧은 보라색과 파란색의 빛이 먼저 공중에 산란한다. 보라색 빛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파란색 빛이 눈에 잘 들어온다. 빨간색 계열의 빛은 산란할 시간이 없이 곧장 땅으로 내려온다. 그래서 한낮에는 붉은색 계열을 보이지 않고, 하늘은 온통 파란색이다.


사진 출처 : https://m.blog.naver.com/rawlife125/221385600651


해 뜰 무렵이나 해 질 녘 태양의 고도는 낮아지고 비스듬하게 나를 바라본다. 햇빛은 한낮보다 먼 거리를 달려온다. 달려오는 동안 파장이 짧은 색깔의 빛들은 공중에서 흩어진다. 어스름할 때쯤이면 긴 여행을 마친 붉은색 계열의 빛만 지표면 가까이 도착한다. 동트는 동트는 새벽과 해 지는 저녁, 하늘에는 끝끝내 살아남은 붉은색 빛이 장렬하게 산화한다. 무사히 도착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남은 붉은빛의 미소가 저녁 하늘을 수놓는다.



<강화도 장화리 일몰> 사진 출처: https://www.incheon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606


빛은 1초에 약 3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약 1억 5천만km의 거리를 달려왔다. 그 빛 가운데서 한낮의 파란색 빛은 공중에서 산산이 흩어진다. 멀리 남도를 걷는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에게도 지친 하루해의 붉은 노을이 진다. 뉘엿뉘엿 저무는 저녁 해는 술 익는 마을을 붉게 물들인다. 태양을 떠나 먼 길을 달려온 빛의 여정도 그렇게 끝난다. 그러나 아직 갈 길 먼  ‘구름에 달 가듯’  걷는 나그네의 수심은 깊다.                


저녁노을은 여정이 끝났음을 알리는 장엄한 서사시다. 태양을 출발한 백색광은 마침내 붉은 노을이 되어 산무리에 고단한 몸을 누인다. 인생도 그럴 것이다.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무수히 부딪히고 깨지고 흩어진다. 그 통이 때로는 가슴에 파란 멍울을 남긴다. 고통을 딛고서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을 태워야 한다. 훗날 삶의 여정을 마치는 순간에도 저 대답 없는 노을처럼 붉게 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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