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Nov 22. 2022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도..

사진 출처: https://www.incheon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606


일모도원(日暮途遠)     

오자서(伍子胥)는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와 형이 모함을 당해 오나라 평왕(平王)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위해 몸을 숨긴다. 오자서를 추적하는 병사들도 그를 붙잡으려고 바짝 따라왔다.      


"이거 잘못하면 잡히겠는데.. "


오자서가 강가에서 걱정했다. 다행히 그는 어부의 도움으로 무사히 강을 건넜다. 그는 가는 길에 병에 걸리기도 하고, 밥을 빌어먹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오나라에 당도했다. 긴 시간을 인내한 후 마침내 오자서는 오나라의 행인(行人: 외교부 장관급)으로 중용된다.      


오나라의 관리가 된 오자서는 왕 합려(闔閭)를 도와 정사를 돌본다. 때가 되어 합려와 함께 오자서는 초나라를 공격해 수도를 함락한다. 이때 오자서의 원수인 평왕은 이미 죽었고, 그의 아들 소왕(昭王)은 도망가고 없었다. 분이 풀리지 않는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을 가했다.     

 

한편 초나라 시절의 오자서와 친하게 지냈던 신포서(申包胥)라는 사람이 있었다. 초나라가 쳐들어오자 산속으로 도망간 신포서는 오자서가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채찍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포서는 오자서의 복수가 너무 지나치고, 천리(天理)에 어긋난 일이라는 말을 전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오자서는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

“나를 대신해서 신포서에게 사과하고,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 천리(天理)를 따를 수 없었소’라고 말해 주게.”     


이것이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라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유래다. 뭔가 도모하고 이루기 위해서는 남은 시간이 부족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뭔가 알 만할 때면 나이가 들어 물러갈 때가 됐다는 말로도 쓰인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는데 끝내야 할 시간이 된다면 누구나 ‘일모도원’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더구나 나이가 많아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속이 탈까. 어쩔 수 없는 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다.      


옛날에 비하면 사람의 평균 수명은 한참이나 늘어났다. 평소 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신체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게 유지할 수 있다. 60~70대도 꾸준하게 운동해 자기 나이보다 10~20살 더 젊은 체력을 갖는다. 게다가 열심히 책 읽기에 몰입하고 다양한 지적 활동을 하는 사람의 두뇌는 아직 팔팔하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할 일도 많고 그걸 해낼 시간도 많다’라고 말할 만하다.     


어느 때라도 즐거움과 환희를 즐길 수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소네트(sonnet)」에서 계절마다 지닌 고유한 환희를 이렇게 말했다.


"5월의 싱그러운 환희 속에서 눈을 그리워하지 않듯, 크리스마스에 장미를 갈망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장미꽃이 피는 5월에는 5월의 기쁨과 행복이 있고, 크리스마스에는 흰 눈이 내리는 기쁨과 행복이 있다. 우리 삶도 그렇다. 삶의 어느 순간이든 그 순간의 환희가 있고 즐거움이 있다. 지적인 호기심과 열망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이 점에서는 공자가 『논어(論語)』에서 한 말도 새겨들을 만하다. 공자는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에게 미치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에게 미치지 못한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공자는 제자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하면서 이 말을 했다. 사람이 공부하면 알게 된다. 그것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런데 좋아하면서 공부하면 더 잘 알게 된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즐기면서 공부하는 것이다. 공자의 이 말을 우리 삶의 전반에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즐기는 것을 찾아서 하는 것이 무얼 하더라도 으뜸이다.           


셰익스피어도 공자가 하는 말은 지금 내가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그 환희와 즐거움에 빠지라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핑계에 불과하다. 지적 활동과 규칙적 운동은 뇌와 신체의 노화를 늦춘다. 체력이 받쳐주고 머리가 핑핑 돌아가면, 물리적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 중에 이미 뇌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오히려 그런 사람을 늙었다고 해야 한다.

 

독서는 뇌를 젊게 한다.    

우리가 젊다는 것은 신체가 건강하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뇌가 건강해야 진짜 젊게 사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뇌과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뇌세포가 하루에 10만 개씩 죽어 나가는 줄 알았다. 최근 뇌과학은 인간의 뇌가 훨씬 탄력적이고 생명이 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특히 기억을 다루는 해마는 사용할수록 발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뇌세포가 재생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이자 카블리 뇌과학연구소장인 에릭 캔델(Eric R. Kandel)은 뇌에 기억이 저장되는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당시만 해도 인간의 기억 경로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다. 그는 군소(바다달팽이)를 대상으로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금방 잊히는 단기 기억이 오래 존속하는 장기기억으로 어떻게 전환되는지를 연구했다. 그러면서 기억상실증 같은 정신질환도 모두 뇌세포의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 공로로 2000년 노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했다.      


약 70여 년 전 심리학자 도널드 헵(Donald Olding Hebb, 1904 ~1985)은 시냅스에 기억이 저장된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학습하면 시냅스의 변화가 일어나고, 이것이 기억을 만드는 물리적 실체라고 말했다. 대단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깝게도 당시는 뇌과학이 발달하기 전이라 햅의 주장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것을 에릭 캔델이 증명해 낸 것이다.    

  

켄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공부하면 뇌는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운동을 통해 근육을 단련하듯, 뇌도 공부라는 운동을 통해 단련할 수 있다. 뇌의 근육, 말하자면 정신의 근육을 단단하게 하는 데는 독서가 최고다. 독서는 시냅스와 뇌세포를 단련해 뇌의 신경회로를 재배선한다. 동시에 독서를 통해 축적한 지식은 의식의 수준을 높인다.


이만하면 일모도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로 충분하다. 해가 저문다고 해도 눈이 밝고 기억이 생생하다면 걱정할 게 없다. 어두운 밤길 짚어 갈 밝은 눈과 산길을 헤아릴 수 있는 총명한 두뇌가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 텔레비전 드라마만 보고 스마트 폰에만 너무 빠지지 말자. 뇌가 움직이고 생각하도록 책을 읽자. 더 늦기 전에, 뇌가 굳어지기 전에 지금 당장 뭔가라도 읽자.

작가의 이전글 빛의 소나타, 색은 빛의 고통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