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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Nov 16. 2022

빨강, 파멸로 이끄는 팜 파탈의 매혹적인 체리 레드

사랑과 증오, 열정과 분노의 빨강



정복감과 원초적 본능의 색깔

팬튼 색채연구소 'cherry tomato'



“와!! 대지는 온통 붉은색이다!!”     


최초의 지구를  사람은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지구 표면에 가장 넓게 분포한 안료는 산화철이다. 산화철은 공기와 접촉하면 붉게 변한다. 지구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 땅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지금도 많은 문화권에서 붉은색 흙을 대지의 굳어버린 피로 여긴다. 프랑스의 고고학자이자 미술관 큐레이터인 안느 바리숑(Anne Varichon) The Coler』에 나오는 내용이다.     

 

붉은색 혹은 빨강은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불린 색채의 이름이다. 가장 먼저 이름을 가졌기에 가장 오래 불리고 있다. 대지의 붉은색이며 사냥감이 흘리는 피의 색이다. 인간은 선홍빛 붉디붉은 빨강을 제일 먼저 만났다. 프랑스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자 색채 전문가 미셸 파투스(Michael Pastoureau)는 수천 년 동안 서구 사회에서 빨강은 색이라 불리는 유일한 색이라고 한다. 인간은 빨강을 통해 처음으로 색 체험을 했고, 성공을 맛보았으며, 자신의 채색된 우주를 개척했다고 말을 이었다.      


아득한 옛날, 인간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사냥을 나섰다 사냥터에서 만난 짐승들과 목숨 건 사투를 벌였다. 창끝이 우람한 들소의 가슴을 찌르자 붉은 피가 용솟음쳤다. 사냥꾼은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핏빛 들소 고기에 행복했다. 사람들은 동굴에 모여 축제를 벌였다. 들소의 붉은 피를 제단에 바쳐 다음 사냥의 풍요와 무탈함을 기원했다. 이처럼 빨강은 사냥의 정복감, 배고픔의 원초적 욕망의 충족, 신을 향한 신성함을 뜻하는 색깔이다.      


프랑스 남동부 쇼베 동굴에는 약 3만 년 전 인간이 그린 그림이 있다. 사자를 포함한 많은 동물의 그림과 함께 사람의 속과 손바닥이 그려진 동굴 벽화다. 검은 숯으로 칠해진 동물과 달리 사람의 손과 손바닥은 붉은색이다. 동물의 붉은 피로 물들인 손과 손바닥은 사냥의 성공과 축제의 기쁨을 뜻한다. 거친 들소와 싸우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붉은 들소


기원전 15500~13500년경의 알마티라 동굴의 변화는 또 어떤가? 지금도 동굴 천장에 그려진 붉은색 들소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벽화에는 붉은 들소, 말, 사슴 멧돼지가 등장한다. 동굴 천장의 굴곡을 이용한 그림 속 동물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을 준다. 동굴 사람들은 덩치 큰 붉은 들소를 사냥해 축제를 벌였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는 지상 최대의 과제다. 그런 그들에게 들소의 붉은 피는 풍요와 수확의 상징이었다.      


연지벌레의 죽음에서 얻는 아름다운 빨강

인간은 본격적으로 붉은색으로 옷을 물들이고, 붉은 장신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많은 염료를 어떻게 구했을까?      


영국 캐임브리지 대학 회화 복원 전문연구소 ‘해밀턴  연구소(Hamilton Kerr Institute)’ 수석 연구인인 스파이크 버클로(Spike Bucklow) 저서  『빨강의 문화사』에 붉은색 염료의 재료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인도 (Indian Lack), 아르메니아 레드(Armenian Red). 지중해 케르메스(Keremes), 폴란드와 아메리카 코치닐(Cochineal) 연지벌레의 일종인 곤충으로부터 구하는 붉은색이다.


예전부터 사람들은 여러 식물에서도 붉은색 염료를 구했다.  가운데서 가장 붉은색이 선명하고 질이 좋은 빨강은 서양 꼭두서니와 브라질 나무에서 구했다.  외에도 열매나 광물, 붉은 흙에서도 빨강의 염료를 구할  있었다.

     

화학 염료가 발병되기 전 붉은색 염료를 많이 구한 것은 붉은 흙, 꼭두서니 나무, 연지벌레, 브라질 나무, 헤나 등이다. 이 가운데서도 독성이 없고 색감이 뛰어난 빨강 염료는 연지벌레와 꼭두서니 나무에서 구했다. 자연 이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이들의 빨강 염료는 지금도 옷감을 물들이거나 약재로도 사용되고 있을 정도다.      


독일의 색채 심리학자 에바 헬러(Eva Heller)는 『색의 유혹』에서, 지중해의 사철 푸른 떡갈 나뭇잎에 붙어사는 연지벌레의 암컷에서 질 좋은 빨강을 얻었다고 말한다. 연지벌레의 암컷은 빨간 액이 가득 든 알을 낳고는 그 위에서 죽는다. 사람들은 알에 붙어 죽은 연지벌레를 나무주걱으로 긁어낸다. 이렇게 구한 연지벌레의 시체를 건조해 분말로 만든다. 이것을 갈아서 만든 빨강은 선명하고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안나 바리숑은 페루를 중심으로  남미와 중남미에서도 연지벌레의 일종인 코치닐 분말을 빨강의 염료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코치닐은 노팔 선인장(nopal cactus) 기생하는 연지벌레라고 보면 된다. 코치닐의 빨강이 옷감에  착색되는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것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코치닐의 분말은 옷감의 연료와 화장품 재료로도 사용됐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연지벌레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수출함으로써 엄청난 금과 은을 획득했다.      


연지벌레로부터 붉은 색소를 얻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아름다운 붉은 색소 1kg을 얻으려면 최소 수만에서 수십 마리의 연지벌레가 필요했다. 그러니 그 많은 붉은 염료를 만들기 위해 죽어간 연지벌레의 숫자는 천문학적이다. 햇볕에도 색이 바래지 않아 대대로 물려줄 줄 값비싼 의복에는 연지벌레의 빨강을 사용했다.

     

꼭두서니 나무에서도 연지벌레에 버금가는 질 좋은 붉은색을 구할 수 있었다. 노란 꽃이 피는 꼭두서니의 뿌리에서 붉은 염료를 채취했다. 이 뿌리를 햇볕에 잘 말린 후, 잘 빻아 가루로 만들면 오래 보관하면 더욱 아름다운 빨강이 된다. 꼭두서니의 붉은색 염료는 물감과 옷의 염료, 화장품의 재료로 널리 사용됐다.      


서양에서는 가장 고귀한 보라색(purple)은 오직 황제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귀족들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색이다. 대신, 그들은 붉은색을 즐겨 입었다. 자연히 붉은색 연료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평민들은 감히 생각도 못하고, 귀족과 왕족이 붉은색을 차지했다. 로마 시대에는 원로원과 군단장이 붉은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중세 유럽의 지체 높은 왕족과 귀족들도 붉은색 옷을 즐겨 입었다. 가톨릭 추기경의 입는 붉은 옷은 순교자들이 흘린 붉은 피를 뜻한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왕들은 곤룡포라 불리는 용이 새겨진 붉은 옷을 입었다. 동양권 국가에서 붉은색은 왕의 색을 뜻한다. 특히 중국 사람들은 붉은색을 행운을 가져다주는 색으로 좋아한다. 지금도 중국 사람들의 붉은색 사랑은 극성맞기로 유명하다. 특히 구정을 전후한 명절에는 가게와 상점 등 온 나라가 붉은색으로 물들 정도다.      


열정과 분노의 색깔

붉은색에서는  냄새와 함께 폭력과 잔인함이 묻어난다. 분노에  사람의 얼굴이 붉게 변하듯, 빨강은 치밀어 오르는 () 색이다.  사람의 뜨거운 열정과 강력한 욕구를 표현할 때도 붉은색을 사용한다. 말하자면, 빨강은 열정과 분노, 사랑과 증오의 양극단을 오가는 색이다. 로마 신화의 전쟁의  마르스(Mars) 붉은색을 뜻하고, 오늘날 붉은색 행성인 화성의 영어 단어로 사용된다. 이처럼 붉은색은 전쟁과 살육의 현장에서 흘리는 피의 상징이다.      


붉은색은 사람의 본능을 강하게 자극한다. 사람을 흥분시키고, 에너지를 넘치게  준다. 붉은색은 호흡과 심장 박동 수를 높이는  우리 몸을 활성화한다. 온몸의 근육을 긴장하게 만들어 금방이라도 싸울 듯한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 빨강은 두려움을 없애주고 용기를 주는 색이다.          

 

빨강의 강렬함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혁명의 현장에서 붉은 깃발이 등장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의 열정과 용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이처럼 빨강은 열정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분노와 증오를 자극하기도 한다. 혁명은 분노와 증오를 먹고 자라며, 열정과 용기로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붉은색은 식감을 자극한다.  익은 과일의 붉은색과 붉은 밫이 도는 고기를 보면 식욕이 동한다. 사람들은 입으로 음식을 맛보기 전에 먼저 눈으로 맛을 본다. 식감을 돋우는 붉은색은 식품회사의 로고에도 많이 사용된다.      


미국의 미술사학자이자 색채학자인 비버 비렌(Faber Birren) 그의 저서 Color Functional』에서 “빨강은 성직자와 범죄자, 애국자와 무정부주의자, 사랑과 증오, 민과 전쟁을 동시에 나타내는 격렬하고도 열정적인 이라고 말했다.  말은 문화예술 기획자가 소개한 내용으로,  글에서 재인용한다. 빨강은 사랑과 증오, 열정과 분노의 양극단을 오가는 색이다. 특히  파탈(femme fatale) 매혹적인 체리 레드(cherry red) 입술은 치명적인 파멸로 이끈다. 이처럼 격렬하면서도 극단적인 빨강은 균형을  잡으면 멋지고 아름다운 색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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