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색'에서 '성모(聖母)의 색'으로 대반전이 일어난 파랑
파란 하늘은 하나의 파랑이 아니다.
"가을 하늘을 자세히 보니 서로 다른 파랑이구나!!!"
"맞아.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파랑이 짙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파랑이 연해지네!!"
가을이 깊어가면 태양은 지구에서 더 멀어진다. 햇빛은 높은 고도에서 파장이 짧은 색부터 먼저 산란한다. 같은 파랑이라도 파장이 짧은 짙은 인디고블루(indigo blue)가 저 높은 하늘에서 먼저 흩어진다. 다음에는 코발트블루(cobalt blue)와 울트라 마린 블루(ultramarine blue)가 늦은 가을의 층을 이룬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더 연한 파랑의 하늘이다. 그사이도 잘게 쪼개면 더 많은 파랑을 볼 수 있다. 하늘은 하나의 파란색이 아니다.
독일의 색채 심리학자 에바 헬러(Eva Heller)는 자신의 저서 『색의 유혹』 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파랑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의 46%가 파란색을 좋아하고 15%가 녹색을, 12%가 녹색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색깔로는 20%의 사람들이 갈색을 꼽았고. 17%의 사람들이 분홍을 꼽았다. 파랑을 싫어한다는 사람은 겨우 1%에 그칠 정도로 많은 사람이 파란색을 좋아한다.
자연에서 파란색을 얻을 수 있는 물질은 많지 않다. 고대에는 풀의 일종인 인디고(Indigo)에서 파란색 염료를 추출했다. 인도와 중국 원산의 마디풀과 식물인 쪽, 유럽산 겨잣과에 속하는 식물인 대청 등에서 만들어지는 색상이다. 인디고 염료의 식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인디고블루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색깔이다. 인디고 염료는 쉽게 구할 있지만, 햇빛에 바래기 쉬운 것이 단점이다.
가장 광채가 아름다운 파랑은 울트라 마린이다. 울트라 마린 블루는 중세 화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울트라 마린은 보석인 청금석을 갈아서 만들었다. 당연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중세의 화가들은 성모 마리아의 파란 옷을 칠할 때는 울트라 마린을 사용했다. 중세 화가들의 형편이 늘 쪼들린 데는 이런 사연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성모 마리아를 그릴 때 최고의 물감만을 고집했다. 파산하는 일이 있더라도 청금석으로 만든 울트라 마린 블루를 사용했다. 울트라 마린(ultramarine) 블루는 말 그대로 바다 건너서 온 귀한 몸인 청금석을 갈아 만든 파랑이란 뜻이다.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살비(Giovanni Battista Salvi: 1605-1689)의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에서 울트라 마린 블루가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자랑한다.
울트라 마린 다음으로 유명한 파란색은 코발트블루이다. 사람들은 코발트 광석을 사용해서 이 색을 만들었다. 코발트 광석은 페르시아에서 주로 생산됐다. 자연히 이슬람 모스크의 푸른 타일의 제조에 이용됐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아를에서 그린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생레미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서 코발트블루가 신비한 색채로 빛난다.
파랑, '죽음의 색'에서 '성모(聖母)의 색'으로
색깔 중 파랑만큼 역사적 부침이 심한 색도 없다. 중세 문자학 대가이자 색채 전문가인 미셸 파스투로(Michel Pastoureau)는 인류는 파란색을 아주 어렵게 그리고 뒤늦게야 재현하고 생산하고 다룰 수 있게 됐고 말한다. 이 때문에 서양 사회에서 파란색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회생활, 종교 예식, 예술 창조 활동에서 아무런 역할도 맡지 못했다. 그래서 파랑은 오랫동안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색으로 취급돼 왔을 것이다.
쇼베 동굴과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는 붉은색과 갈색, 검은색과 흰색으로 그려진 동물들이 등장한다. 파랑은 눈 씻고 찾아도 없다. 그때까지 인류의 조상은 파랑 염료를 찾지 못했다. 그 후로도 수천 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파란색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적어도 고대 로마 시절까지만 해도 파랑은 ‘보이지 않는 색’으로 외면받았다.
로마 시대는 파란색을 ‘죽음의 색’ 혹은 ‘야만인의 색’이라고 경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마의 변경에 사는 켈트족과 게르만족이 얼굴과 몸에 파란색 칠을 하고는 로마에 쳐들어왔다. 이들은 로마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했다. 그러니 로마인들은 파란색만 보며 이를 갈고 저주했다. 그들에게 파란색은 죽음과 시체의 냄새가 풍기는 불길한 색이었다.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중세가 시작되면서 켈트족과 게르만족이 유럽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들이 좋아하던 파란색은 로마의 붉은색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12세기에 이르자 귀족과 성직자를 중심으로 파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성모 마리아를 그린 성화에서 파란색을 사용했다. 이는 사람들이 파랑을 ‘색 중에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여기게끔 하는 계기가 됐다.
15세기가 되면서 중세가 무너지고 세상은 요동쳤다. 경건함과 검소함을 강조하는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러자 경건함과 겸손함의 색깔인 파랑은 성모(聖母) 마리아의 색채로 존중받았다. 미셸 파스투로(Michel Pastoureau)는 저서 『파랑의 역사』에서, 파랑이 빨강과 대조를 이루는 ‘도덕적인 색’으로 인식되면서 파랑의 지위가 더욱 상승했다고 말한다. 종교개혁의 성공은 화려한 색조를 배격하고 파랑을 '정중한 색'으로 평가하게 했다.
18세기 이후 산업자본주의가 성립하면서 파랑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20세기에 접어들어 파란색은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즐겨 입는 옷 색깔이 됐다. 1950년대 이후 인디고로 염색한 청바지가 파란색의 유행에 큰 역할을 했다. 청바지의 면직물이 너무 두꺼워 파란 염료를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청바지의 색이 변하고 날아갔다. 이것이 오히려 젊은이들이 청바지에 열광하게 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파란색 우수(憂愁)와 피카소의 청색 시절
런던 대학교 저널리즘 교수인 개빈 에번스(Gavin Evans)는 『컬러 인문학』에서 ‘feeling blue(우울하다)’의 먼 뱃길의 항해에서 유래됐다고 소개한다. 선장이나 장교가 항해 중 사망할 경우 푸른색 깃발을 게양하고 배가 부두에 정박하면 선체에 파란색 줄을 칠했다. 그는 ‘feeling blue’가 사는 데 너무 지친 나머지 불행한 느낌이 든다는 것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말한다.
괴테의 소설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샤를로테(샤롯데)라는 여인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수 차례의 구애는 실패로 끝난다. 갈등과 번민에서 방황하던 그녀는 베르테르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로테에 대한 사랑을 체념한 베르테르는 죽음으로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려 한다. 끝내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한 베르테르는 파란색 연미복을 입은 채 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한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고독과 우수에 찬 얼굴로 파란 재킷을 입었다. 방황하던 젊은이들은 베르테르처럼 연이어 자살했다. 훗날 사람들이 '베르테르의 효과'라고 부르는 동조 자살 현상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파랑은 대중적으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여담이지만, 롯데그룹의 이름은 이 소설의 여주인공 샤롯데(Charlotte)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화가로 칭송이 받는 피카소도 우울한 '청색의 시절(1901~04)'을 보냈다. 무명 시절 피카소는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더구나 스페인을 떠나 같이 파리로 와 함께 생활하던 절친이 자살했다. 이 시기에 그는 차가운 인디고와 코발트블루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땔감이 없어서 자신의 그림을 태우며 파리의 겨울을 견뎌야 했다. 그의 우울하고 고독한 파랑은 삶에 찌든 사람들의 얼굴과 온몸에 투영되었다.
1903년 그린 <삶>(La Vie (Life)은 피카소의 청색 시대에 작품 중 인물의 표정이 복잡하고 미묘하다. 창백한 느낌을 주는 짙은 청색으로 색칠한 탓에 그림 전체에 허무가 묻어난다. <삶>에서 핏기 없는 여인은 역시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자에게 기대고 있다. 공허한 얼굴을 한 남자가 자살한 피카소의 친구라고 한다. 등장인물들의 얼굴에는 삶에 대한 열정과 따뜻함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을 수 없다.
파랑은 지식 산업이나 첨단 IT 기업의 로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파랑이 가진 차분하고 지적 이미지를 잘 활용한 것이다. 대부분 산업에는 파랑을 사용하지만, 유독 음식산업에서는 파랑을 사용하지 않는다. 파랑은 식감을 죽이는 색이라 그렇다. 2001년 르네 젤위거, 콜린 퍼스, 휴 그랜트가 주연했던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는 파란 수프가 등장한다. 식감이 별로인 파란 수프는 두 사람의 사랑을 연결하는 촉매제로 사용될 뿐이다.
파랑은 지적이지만, 고독한 색이다. 이성적이면서도 우울한 색깔이다.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는 빨강에 비해 유약한 여성의 느낌이 난다. 화려한 여성 편력에다 성공한 화가로 이름난 피카소도 우울한 청색 시절을 보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시절을 한 번쯤 겪는다. 인생은 화려하지도 않고 밝은 것만은 아니다. 우울의 파랑과 밝음의 오렌지색의 격자무늬가 우리의 삶이다. 어느 무늬가 더 많은가에 따라 밝을 수도 있고, 고독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