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를 뜻하는 이 말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임진왜란 당시 최대의 전투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한 말이다. 이순신 장군의 비장함과 웅장함을 대변하는 말로 널리 회자된다.
기업 경영에서도 종종 인용되는 말이다. 경기가 침체하고 적자가 누적된 회사에서 조직을 축소하려 한다. 구조조정을 앞둔 상황 앞에서 고뇌에 찬 CEO가 이런 말을 한다. 가혹한 군살 빼기를 하면 기업이야 살겠지만, 종업원을 죽을 수밖에 없다. 대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개인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이순신 장군이 한 이 말의 원전은 따로 있다 손자병법과 함께 중국의 2대 병서(兵書)라 일컫는 오자병법(吳子兵法)에서 이 말이 유래했다. 오자병법의 저자인 오기(吳起)는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그는 전쟁의 천재로 알려져 있다. 오기는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의 원조인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라고 말하며 전쟁에 임했다. 죽을 각오로 하면 살고 요행히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고 했다.
오기를 오해한 사마천
지금부터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오기 이야기를 해보자. 사마천은 오기를 아주 나쁜 인물로 기록했다.
오기는 춘추 전국시대 위(衛)나라 사람으로 병사를 다루는 일을 좋아했다. 원래 오기의 집은 부자였는데 출세에 눈이 멀어 벼슬 사는 데 돈을 다 탕진했다. 정작 벼슬을 얻지 못해 동네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됐다. 여기에 악감정을 품은 오기는 자신을 비난한 마을 사람 30여 명을 살해했다. 그리고는 자기 어머니 앞에서 자기 팔을 깨물면서 한 나라의 재상이 되기 전에는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마을을 떠났다.
오기는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증자(曾子)에게 학문을 배웠다. 오기는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머니의 장례조차 치르지 않았다. 오기의 행실에 놀란 증자는 사제관계를 끊어버린다. 효자로 소문난 증자는 오기의 불효를 보고 크게 노했다.
그때부터 오기는 병법을 배우는 데 온 힘을 쏟는다. 한다면 하는 그는 기어코 병법의 높은 경지에 이른다. 어떻게 병법을 익혔는지 알 수 없지만, 끝내 그걸 해냈다.
만일 사마천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권력이 뭐길래 어머니의 장례도 치르지 않다니 인간 같지 않은 사람이다. 권력이 좋기야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말 그대로 어처구니가 없다. 계속 사기를 읽어보자.
오기는 원래 노나라의 장군이 되길 원했다. 제나라와 싸워야 하는 노나라는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여인이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자 오기는 아내를 죽여 자신이 제나라 편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그는 지은 죄가 커 제나라의 군사들에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여기까지가 사마천이 말하는 오기라는 인물평이다. 오기는 뛰어난 지략가이면서 전술가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오기를 둘러싼 역사의 기록은 극과 극을 달린다. 사마천은 오기가 출세를 위해 아내를 살해한 잔혹한 인물이며, 어머니의 장례도 주관하지 않는 패륜아로 묘사했다. 게다가 마을 사람 30명을 살해한 포악한 살인자라는 것이다.
악플 살인을 조심하자.
과연 그럴까? 심각한 의문이 든다. 그런 전력을 가진 인물을 과연 노나라에서 장군으로 발탁했을까? 유교 사상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그 시절에 이런 악랄한 인물을 장군으로 발탁할 제후는 없었을 것이다.
오기가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평가도 많다.
《한비자(韓非子)》, 《여씨춘추(呂氏春秋) 》등 전국시대 문헌에서는 오기를 권세와 재물에 초연한 현자(賢者)의 모습으로 그렸다. 한비자는 오기가 법치의 실현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아내와 헤어졌다고 말한다. 단지 그리 큰 이유도 아닌 것으로 아내와 헤어진 오기의 냉정함을 탓하는 정도다.
노나라는 병법에 뛰어난 오기를 노나라의 장군으로 발탁했다. 나라의 운명이 등불 앞에 선 노나라로서는 병법을 잘 아는 오기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오기는 병사들을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해 크게 무찌르고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버금가는 오자병법(吳子兵法)을 저술한 그로서는 전쟁의 승리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기는 병사를 다루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오기는 장수가 되자 신분이 가장 낮은 병사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잠을 잘 때도 자리를 까지 못하게 하고 행군할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았다. 자기가 먹을 식량은 직접 가지고 가는 등 병사들과 함께 나누었다.
한 번은 종기가 난 병사가 있었는데, 오기는 그 병사를 위해 직접 고름을 빨아주었다. 장군이 자기 입으로 부하의 종기를 빨아주는 일이 있을 법한 일인가? 병사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는 소리 내 울었다. 그녀의 남편도 똑같이 오기 장군이 종기를 빨아준 것에 감동해서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했다. 이번에는 아들도 그렇게 되리라는 걱정에 그녀는 슬피 울었다.
오기의 탁월한 생존전략과 병사를 다루는 재주를 알 수 있다. 병사를 위해 헌신하고 그들과 함께함으로써 자신을 믿고 따르도록 만들었다. 병사들은 오기를 믿고 용감하게 싸웠다. 장군이 자기를 믿어주고 아껴준다고 생각한 병사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니 오기의 군대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이렇게 극과 극의 서로 다른 평가를 받는 것도 드물다. 한편에서는 오기는 탁월한 병법의 대가이자 재물에 초월한 현자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는 출세를 위해 아내를 죽인 나쁜 사람으로 비난받는다. 만일 그가 진짜 선한 사람이었다면 이보다 더 억울할 수는 없다. 왜곡된 자료가 한 사람의 일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것이다.
그렇다고 사마천이 일부러 오기를 그렇게 묘사한 것도 아니다. 당시 오기에 관한 자료가 많이 없었다. 그나마 오기의 자료들이 그와 적대적 관계에 있던 나라의 문헌이 대부분이었다. 사마천이 오염된 자료를 보고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오기에 대한 악서(惡書)와 왜곡된 기록들이 그를 천하의 몹쓸 인간으로 만든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 공간에서 떠도는 잘못된 소문들이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무분별한 악플과 아무 근거도 없는 댓글이 사람을 극한의 고통에 빠뜨린다. 옛날에야 당사자가 죽고 난 후 역사 기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지금은 실시간으로 사람의 일생을 파멸로 이끈다. 그러니 이런 일을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괴롭고 힘들까.
아무리 익명의 공간이라고 당사자를 헤치는 일을 삼가야 한다. 부정확하고 잘못된 정보를 함부로 올리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무심코 쓰는 댓글이 당사자의 가슴을 예리한 칼로 후벼 판다. 정신적 고통으로 사람의 인생이 파탄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꼭 말을 해야 한다면 제대로 알아보고 정확한 근거를 갖고 해야 한다.
오기가 그렇게 악랄하고 나쁜 인물이 아니라면 얼마나 억울할까.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때도 그를 보는 보는 눈은 한둘이 아니었다. 진짜 그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다면 일국의 장군으로 발탁될 수 있었을까. 평판가과 명망을 중시하는 그런 사회에서 말이다. 오히려 그가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오기를 위한 나의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