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 1840~1924)의 시 '청춘'이다. 시가 조금 길지만, 먼저 감상하자. 그 후 나이 도둑인 짧아지는 텔로미어의 길이 이야기를 해보자.
청춘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를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이십의 청년보다
육십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고뇌, 공포, 실망 때문에 기력이 땅으로 떨어질 때
비로소 마음이 시들어 버리는 것이다.
육십 세이든 십육 세이든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놀라움에 끌리는 마음,
젖먹이 아이와 같은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
삶에서 환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이다.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간직되어 있다.
아름다움, 희망, 희열, 용기
영원의 세계에서 오는 힘,
이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그대는 젊음을 유지할 것이다.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냉소라는 눈에 파묻히고
비탄이란 얼음에 갇힌 사람은
비록 나이가 이십 세라 할지라도
이미 늙은이와 다름없다.
그러나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 세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이다.
짧아지는 텔로미어, 나이를 훔치는 도둑
하얗게 센 머리, 얼굴과 피부의 주름, 깜박거리는 건망증. 나이 들면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이것 말고도 나이 듦의 증상은 많다. 젊을 때는 팔팔했는데 나이가 들면 다리에 힘도 빠진다. 얼굴, 목 등 온몸의 피부가 쭈글쭈글해진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도 취약하고, 손등에도 검버섯이 핀다. 살짝 부딪쳐도 쉽게 멍들고, 한 번 다치면 회복도 더디다.
나이가 든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마음이 슬퍼진다. 어쩔 수 없다.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나이가 든다고 주눅 들거나 의기소침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냉소라는 눈에 파묻히고 비탄이란 얼음에 갇힌 사람은 비록 나이가 이십 세라 할지라도 이미 늙은이와 다름없다"는 사무엘 울만의 말을 새겨듣자. 정신이 맑고 영감이 넘친다면 여전히 청춘이라 할 수 있다.
왜 우리는 늙어갈까? 왜 나이가 들면 피부의 윤기가 사라지고 탄력이 없어지는 걸까? 피부 세포들이 더 이상 젊음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세포들은 스스로 재생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그것을 세포의 노화라고 한다. 세포가 노화하기 시작하면 주변의 건강한 세포나 신체 조직도 노화한다. 재생 불가능한 세포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인체는 사망에 이른다.
세포는 매일 분열한다. 늙은 세포는 죽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세포가 태어난다. 이 때문에 세포는 늘 팔팔하게 살아 있고, 인간은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언젠가 세포는 죽는다. 다시는 분열하지 않는 죽음을 맞는다. 세포는 일정한 시간 동안 분열하고 나면,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체의 죽음이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세포는 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세포 분열을 멈출까?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과학자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Blackburn), 캐럴 그래이더(Carol Greider), 잭 소스텍(Jack Szostak)는 그 이유가 텔로미어(telomere)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노화의 주범이자 우리의 젊음을 훔쳐 가는 범인은 바로 매일 길이가 짧아지는 텔로미어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면 우리는 늙는다.
텔로미어(telomere)는 그리스어 ‘끝(telos)’과 ‘부위(meros)’의 합성어다. 텔로미어는 세포 유전자의 끝부분으로 염색체와 DNA가 닳아 없어지는 것을 막아주기 위해 모자가 씌어있다. 텔로미어의 캡은 신발 끈 끄트머리에 달린 플라스틱 캡과 비슷하다. 신발 끝에 달린 플라스틱 캡이 없다면 신발 끈의 섬유 올이 쉽게 풀어진다. 세포의 끝도 캡에 쌓여있어 세포를 보호한다.
우리 몸에는 수십조 개의 세포가 있다. 이 세포들은 이 순간에도 열심히 분열하고 세대교체한다. 그 결과 우리 몸은 건강하고 신진대사도 활기차다. 세포 안에는 인체의 중요한 유전정보를 담은 DNA가 있다. 끝부분이 위 그림의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텔로미어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길이가 짧아진다. 이것이 일정 길이 이하로 짧아지면 세포는 늙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한다.
염색체의 끝부분인 노란색의 길이는 ①, ②, ③ 그리고 ④로 갈수록 짧아진다. 이 노란색 부분이 텔로미어이고, 이 길이는 나이가 들면서 짧아지는 특징을 가진다. 나이가 많으면 세포가 세포 분열을 많이 했고, 그 때문에 길이가 짧아진다는 것이다. 그림 ③에서 보듯이 노란색 텔로미어의 길이가 무척 짧다. 세포의 노화가 그만큼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마지막 ⓸의 그림처럼 텔로미어가 완전히 사라지면 세포는 죽는다.
우리 몸 안의 텔로미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닳기 시작한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길이가 짧아지고 있다. 알고 보면 삶이란 죽음의 시작인 것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 역설인가.
20세기 뛰어난 철학자인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늙는다’는 것은 ‘피부의 탄력이 줄어든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각종 질병과 기억력 퇴화 등은 노화 현상이 들이닥친다. 길이가 0에 가까워지면 우리는 죽음 곁에 바짝 다가선다. 짧아지는 텔로미어는 나이를 훔치는 도둑이며, 노화의 스모킹 건(smoking gun)이다.
노화의 시계 늦추기
최근 의학자들은 텔로미어의 길이가 늘어날 수 있음을 밝혀냈다. 그렇다고 영원히 텔로미어의 길이를 늘어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노력하기에 따라 상당한 기간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세계적인 신경의학자 마이클 포셸(Michael B. Fossel)의 저서『텔로미어』(쌤앤파커스, 2013)에는 텔로미어가 무병장수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텔로미어에 관한 기본 개념과 우리의 생활방식이 텔로미어에 미치는 영향을 아래와 같이 보여주고 있다.
· 텔로미어의 길이를 늘이면 세포의 수명이 연장되고, 궁극적으로 인체의 수명도 길어진다.
· 세포가 분열하고 복제할 때마다 텔로미어는 조금씩 잘려나가 길이가 단축된다. 그러나 손상된 조직 복원
하려면 세포는 반드시 분열해야 한다.
· 텔로미어 길이가 너무 짧아지면 세포는 노화하여 죽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간 수명의 한계는 120세인 것
으로 알려졌다.
· 질병, 부상, 흡연, 음주, 비만, 수면 부족, 만성적 스트레스, 호르몬 불균형, 오래 앉아 있는 생활, 독소에 대
한 노출은 세포의 분열 속도를 높이고, 그럼으로써 텔로미어의 단축 속도를 높인다.
· 적절한 식생활, 충분한 수면, 운동과 명상, 보조제 프로그램을 실천하면 프리 래디컬(free radical, 활성산
소)과 산화, 당화, 비정상
메틸화의 작용을 감소시켜 텔로미어의 길이가 천천히 줄어들게 할 수 있다.
· 정상보다 짧은 텔로미어는 심장질환, 알츠하이머, 골다공증, 관절염 등을 포함한 노화 관련 질병을 일으
키는 원인이 된다.
· 건강한 세포의 텔로미어를 늘이면 면역체계가 강화되고 DNA가 안정되어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우리는 텔로미어가 노화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을 잘 관리하면 노화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텔로미어의 길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나쁜 생활 습관과 식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충분한 수면, 운동과 명상 등의 프로그램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이것들은 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을 위해 꼭 지켜야 할 습관들이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운동하고, 명상하고, 공부하는 일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불로장생의 명약은 없다. 길가메시가 찾아 헤매던 영생의 비법, 진시황제의 불로초,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가는 시계까지 우리는 갖고 있다. 나이 도둑 텔로미어의 길이를 조심하고 잘 보호하자. 그러면 얼마든지 노화의 시계를 늦출 수 있다.